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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13. 2022

나는 웬만해서 책을 증정하지 않는다

책은 작가의 분신


시집이 한 권 왔다. 가까이 지내는 J시인이 출간한 책이다. 출간 소식을 전하며 책을 보낸다기에 거절했다. 사서 보겠다고. 그런데 보내왔다. 책 한 권에는 글쓴이의 우주가 들어 있다. 사유의 편린들이 정제되어 문장으로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고뇌하고 매만졌는지 아는 나로서, 무상으로 책을 받는 게 고마우면서 민망하다.


책을 받으면 꼭 읽는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또 솔직히 흥미가 떨어져도 결사적으로 읽는다.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잘 알기에, 고마운 마음과 축하하는 마음이 앞선다. 바로 읽지 못할 정도로 당면한 일들이 있을 경우, 책의 포장을 풀지 않는다. 급한 일이 끝나면 가장 먼저 풀어 읽는다. 면밀하게. 


책을 보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문학단체나 문인협회 또는 출판사를 통해 오기도 하니까. 그럴 경우, 책을 받자마자 잘 받았다는 메일 또는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 대개 봉투에 전화번호나 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그런 후, 책을 읽고 며칠 내로 감상문 내지 소감을 적어 보낸다. 책을 보낸 누구에게나. 


그 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 관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한다. 아는 사람의 책이든, 전혀 모르는 작가의 책이든. 희망도서 신청을 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구입해 놓는 경우가 많다. 강의 중에 필요에 따라 추천하기도 한다. 또 독서모임이나 독서회 수업 때 읽을 도서 목록에 넣는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내 소견에 따라. 그렇게 책을 보내준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홍보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풍토가 있다. 그것은 책을 증정받으려는 태도다. 물론 인사하기 위해서나 책 품앗이를 하기 위해, 주고받는 경우는 있다. 그래야 할 필요성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책을 증정받기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다. 으레 거저 받으려 하거나, 읽어주는 게 어디냐고 말하는 사람도 간혹 보았다. 


책을 증정하는 사람의 태도도 문제다. 자기 책을 받고 읽어주는 것에 감읍해하는 사람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겸손한 마음의 표현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 없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증정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전에 출간할 필요가 있을까. 일단 출간했으면 당당해야 한다.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힘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견딘 것만으로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식당을 개업했다고 하면, 축하하기 위해 가서 밥을 사 먹고 음식 값을 지불하지 않는가. 그런데 책은 음식 한 그릇 값보다 비싼 경우가 많고 노력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거저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받았다면 고맙고 기꺼운 마음으로 읽고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혹시 감동이 없는 책이라 할지라도,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이라도, 그 책을 증정한 사람의 마음만은. 


나는 웬만해서 책을 증정하지 않는다. 언젠가 어느 거대한 문학단체에 문학 강연 초청을 받아 간 일이 있다. 가자마자 임원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갖고 온 책이 어디에 있느냐고. 없다고 했다. 단 한 권도. 의아해했다. 다른 작가들은 한 박스씩 가지고 와서 나눠준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책을 사서 줘야 하는데, 100명에게 증정한다면 저자 가격으로 해도 책값이 150만 원 가까이 든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원하면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명확하게 말했다. 나는 책을 증정하지 않는다고. 물론 책을 사 가지고 와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의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출간 후, 어떻게 알고 밥이나 차를 사겠다며 만나자는 사람이 늘었다. 그럴 경우 책을 한 권 가지고 가기도 하는데, 먼저 책을 내놓으며 사인을 부탁할 때, 글쓴이로서 뿌듯함과 고마움이 밀려온다. 예전에 처음 책을 냈을 때보다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그만큼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까. 지인 중에는 내가 책을 출간할 때마다 상당한 부수를 사는 사람이 몇 있다. 선물용으로 그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나는 사랑의 빚이라 흔쾌히 진다. 내가 작가로서 보답할 길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다짐하며.


증정받은 책을 성의껏 읽는 경우, 많지 않다고 본다. 어떤 것도 공짜로 받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적은 법이다. 나는 아들과 딸에게도 무엇을 사줄 경우, 일정액을 부담하게 한다. 내 책의 표지와 삽화를 아들이 그려줬는데, 딱 한 권만 증정했다. 사인해서. 아들이 그림 값은 평생 무료라고 했기 때문에, 따로 지불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부시켜 준 것에 대한 보답이란다. 하지만 후에 아들이 전시회 할 때는 작품을 한두 점 살 생각이다. 


내가 증정하는 경우는 스승님, 어머니, 아들, 책 품앗이하는 작가들 외에 없다. 심지어 딸도 산다. 아, 사부인께 한 권 보내드린다. 제자들이나 연구실 선생님들에게도 처음에 몇 번 증정했으나 지금은 안 한다. 책이 나올 때마다 증정할 필요 없다고 본다. 책을 받고 나서 아무 말도 없는 사람에게는 다음부터 증정하지 않는다. 품앗이하는 작가라 할지라도. 심지어 스승님이라도.  


또 꼭 증정하고 싶은 사람이라 해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 한다. 평소의 태도를 보아 알고 있다. 안 읽는 사람을. 아무리 증정하고 싶어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줄 필요 없다. 책은 내 분신이나 다름없다. 분신이 어디 가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좀 달라지고 있다. 딸을 시집보내 놓고 너무 간섭하면 안 되듯, 내 손을 떠난 분신에 대해서 너무 연연하지 말자고. 


책을 주고받는 데에 이렇게 복잡한 생각들이 있기에, 책을 보낸 J시인의 마음이 한없이 고맙고 민망하다. 요즘을 출판물의 공해시대라고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책을 낸다는 것은 분신을 낳는 일이기에 의미 있고 숭고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웬만해서 책을 증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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