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의 스캔들

그리움

by 최명숙


나도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다. 딱 한 번. 스캔들, 사전적 의미로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라고 하니, 나의 경우와 결은 다르다. 내게 ‘충격적’이었으니 주객이 전도된 것도 다르고, 절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니 그것도 다르다. 일종의 ‘헛소문’이 적절할 것이고, 내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도 굳이 ‘스캔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글을 쓸 때 독자의 관심을 확 끄는 제목을 짓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명 낚시 글이 되면 안 되지만. 글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거나, 글쓴이의 의도 즉 주제가 내포된 제목이 좋다. 거기에 독자로 하여금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면 금상첨화다. 어쨌든 나도 연예인 또는 유명인들이나 휘말리는 스캔들에 휘말려 본 적이 있다. 누군들 이런 스캔들에 한 번쯤 휩쓸려 본 적 없으랴마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침에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나를 보고 킥킥 웃고 수군거렸다. 가장 친한 친구 연이가 내게 뛰어왔다. 이만저만, 이러쿵저러쿵, 쫑알쫑알.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이야기인즉, 아침에 학교 오다 보니, 우리 교실 벽에 분필로 크게 쓰여 있단다. ㅇㅇㅇ은 최명숙을 좋아한다,라고. 지금 ㅇㅇㅇ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갖고 가서 지우고 있는 중이라고. 내 이름을 확실하게 쓴 것은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내가 땡땡땡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인할까 봐서다.


연이가 내 손을 이끌었다. 연이 손에 이끌려 문제의 교실 벽에 다다랐다. 땡땡땡은 있는 힘을 다해 대걸레로 벽에 쓴 글자를 지우고 있었다. 교실 벽에 한 문장만 쓴 게 아니고 거의 도배하다시피 해놓았다. 높은 곳 빼고 온통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우리를 본 땡땡땡은 계면쩍은 표정이었다. 싫었다. 내가 저 애를 한 번도 좋아한 적 없고, 저 애도 나에게 아무런 내색을 해 본 적 없다. 내 기억에는. 연이 손을 뿌리치고 교실로 돌아와 책상에 엎드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서러운 것도 아니고, 속상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못된 것들, 알지도 못하면서!


반 친구들이 다 싫었다. 연이만 빼고. 누가 그랬을까. 어떤 ‘숭악한’ 인간이. 이건 ‘흉악한’이 아니고 숭악한이 맞다. 아주 사악하고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짓은 아니라고 보니까. 사전에 숭악하다는 어휘가 흉악하다의 방언으로, 그 의미가 약화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것을 보면, ‘숭악한’이 적절하다.


땡땡땡은 연이네 동네와 우리 동네 사이에 살았다. 학교 오고 갈 때 중간쯤까지 거의 같이 만나 오가게 된다. 그렇다고 말을 하거나, 같이 나란히 걸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갈 뿐이다. 땡땡땡이 앞서 가다가 간혹 힐끔 뒤를 돌아보는 적은 있다. 왜 돌아보는지 난 전혀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본 척하지 않고 내 길만 타박타박 걸어갈 뿐이다. 그런데 그런 숭악한 스캔들에 휘말리다니.


헛소문나는 것처럼 억울한 게 없다. 무척 억울했다. 이상한 것은 누가 그랬는지 그 당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억울하기만 했다. 땡땡땡이 좋아하는 것이지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나쁘고 억울했다. 선생님께 고자질할 수도 없었다. 연이만 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위로해 주었다. 그 친하다고 생각했던 애들이 입을 삐죽거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회에는 절대 가고 싶지 않다. 이 숭악한 것들!


어머니한테도 말 못 하고 억울해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땡땡땡의 어머니가 우리 집에 마실 와 계셨다. 나를 보더니 대뜸 “명숙아, 너 우리 며느리 하자. 우리 땡땡이 어떠니?”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주 쌩한 목소리로 “싫어요!” 하면서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버릇없다며 나를 꾸중하셨다. 농으로 하시는 말씀인데 왜 그러냐며. 나는 땡땡땡의 어머니가 가실 때까지 건넌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후 결혼하고 신행 갔을 때였다. 친정 집에 도착하니 우리를 본다고 동네 어른들도 와 계셨다. 아랫동네 사는 땡땡땡의 어머니까지. 우리를 보자마자 또 그러셨다. “얘야, 난 네가 우리 며느리 될 줄 알았다.” 어머니가 질색하셨다. “아주머니도 참, 농이 심하시네요. 우리 사위 오해하게.” 땡땡땡의 어머니는 워낙 장난기가 많은 것으로 소문난 분이었다. “땡땡이가 저 싫다고 하던데요.” 내 말에 남편은 호탕하게 웃는데,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왜 없는 말을 지어서 하냐며 눈을 살짝 흘기셨다.


내 결혼식 사진에 남자 동창생들 중 유일하게 땡땡땡이 찍혀 있다. 대부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오지 못했는데, 그 친구는 휴가 중이어서 참석했다. 남편은 그가 나의 첫사랑이라고 심심하면 놀렸다. 절대 아닌데. 그래도 땡땡땡과 같이 만나면 형님 동생 하며 아주 잘 지냈다. 왜 놓쳤느냐고, 그때 그 스캔들은 자작극 아니었냐고, 땡땡땡을 만날 때마다 남편이 그를 놀렸다. 땡땡땡은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지나고 보면 웃고 말 일이, 그거 하나뿐일까. 물론 그 스캔들은 나에게 무용하지 않았다. 살아가는 동안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경계해서 삼가는 태도로 살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래도 허물이야 여전히 많지만 조금은 줄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딱 한 번의 스캔들이 내 삶의 여정에 약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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