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고백은 힘이 세다

아들

by 최명숙


그가 전화를 했다. 저녁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안마의자에 몸을 대고 마사지하다 잠이 들락 말락 하던 시점. 졸린 음성으로 폴더를 열었다. 왜? 저녁은? 내 물음은 단순하다. 그는 먹었다면서 뭐 하고 있느냐고 했다. 왜 물어, 내 사생활을. 건조한 대답에 그는 흐흣 웃었다. 그냥 묻고 싶단다. 언제부터 내게 관심이 있다고. 관심 끊으셔, 아주 잘 지내니까. 그는 아예 큰소리로 웃는다.


그는 무슨 일인지 말이 길어진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는데. 길어야 20초가 다였는데. 아무래도 술을 마신 것 같다. 재우쳐 물어도 아니란다. 하긴 거짓말할 그는 아니다. 무엇이든 정직하게 말하는 게 특성이라면 특성이니까. 왜 전화했느냐는 물음에 그가 약간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워서’라고. 그리우면 찾아올 것이지 무슨 전화냐고 내뱉고 싶었다. 참았다. 속을 너무 다 들킬 필요는 없으니까.


다시 또 묻는다. 뭐 하는 중이었느냐고. 안마 중. 짧게 대답했다. 그는 또 흐흣 웃는다. 흐뭇한 웃음이다. 그 이유를 안다. 안마의자를 사준 당사자니까. 잘 쓰고 있어 기분 좋다는 거겠지. 그렇지 않은가. 가족을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을 때, 잘 먹어준다면 그보다 더 흐뭇한 게 없듯. 누구에게 선물한 머플러나 장갑 또는 브로치를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 기쁜 것처럼. 그는 그런 기분이리라.


왜 이 밤중에 전화를 했을까. 궁금해도 묻지 않는다. 내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으므로. 밀당을 잘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이겼다. 그는 그리워서 전화했다고 고백하지 않았나. 좀처럼 없는 일이다. 워낙 속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어서, 내 속을 태운 적이 얼마나 많던가. 옷이라면 뒤집어 보겠는데, 도대체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그여서 답답할 때도 있었다. 장난기 서린 말이지만 ‘그리워서’라는 어휘에 설레고 벅차다.


그리움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것이면 된다. 사랑고백까지 원하는 건 욕심이다. 그래도 사랑고백 한 번 듣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고백을 잘하던데, 나도 듣고 싶다.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리워서’ 전화했다는 말도 아마 술의 힘을 빌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말랑하고 촉촉하며 따뜻한 어휘를 사용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극구 부인하지만 내 촉수는 마신 쪽으로 기울고 있다. 더듬이를 더 뻗어본다. 이말 저말 시켜본다. 어휘 선택이나 통사 구조 별 문제없다. 어조나 존칭어 사용도 그만하면 통과. 약간 들뜬 듯한 어투가 의심스럽다. 술을 좀 마셨다고 해도 별 상관없다. 내가 언제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한단 말인가. 술기운을 빌려하는 말인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데까지 간 것인지, 그게 나의 관심사다.


사랑도 생물이다. 시작되고 자라고 소멸한다. 그것의 유효 기간이 길어야 3년이라지 않던가. 그것을 아는 나는 사랑에 목숨 걸고 싶지 않다. 시작될 때 이미 이별을 잉태하고 있는 게 사랑이다.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두 사람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다. 그래서 싸우는 연인이 오래간다지 않던가. 싸우면서 조율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게 되므로. 생각해 보면 그와 나는 꾸준히 싸우고 화해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긴 하다. 사랑 고백 한 번 받지 못한 채.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지만.


나이 들면서 싸우기 싫어졌다. 싸우고 화해할 때 그 낯 뜨거운 것을 다시 되풀이하기 싫다. 그래서 그에게 갖고 있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들인 지 오래다. 그가 나의 그 마음을 읽은 걸까. 그리워서 전화했다는 간질거리고 말랑한 어휘를 입 밖에 내다니 말이다. 그럴 사람이 아니므로, 그걸 잘 앎으로, 그만해도 큰 용기를 냈으리라 믿는다. 사랑고백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됐다. 이만하면 나를 밀당의 고수라고 일컬어도 되리라.


전화는 계속되었다. 20초면 끝나던 전화 통화였는데, 두 시간이 넘고 있다. 이렇게 전화할 시간에 여기로 오는 게 낫지 않아? 견디다 못해 내 속내를 드러냈다. 할 일이 있어서 안 된단다. 그 할 일이 무엇일까, 이 밤중에. 말랑해지던 마음이 다시 싸늘해진다. 그럼 전화 이만 끊자고 했다. 그는 아니란다. 더 이야기를 하잔다. 잠이 온다고 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잊고 있었다. 그는 본래 수다쟁이였다는 걸. 말 수가 준 것은 성인이 되면서부터였다는 걸.


고흐선배가 참으로 외로웠을 것 같단다. 다빈치선배는 어쩌고 저쩌고, 루벤스선배는 또 이러고저러고, 르노와르선배는 또 어떻고 저떻고. 세계적인 미술가들을 그는 모두 선배로 지칭했다. 우스웠다. 아주 친하게 엊그제도 만났던 사람처럼 당연하게 선배란다. 그렇다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호프, 세르반테스, 빅톨 위고, 헷세 등은 내 선배란 말인가. 어이없는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고흐선배가 동생 테오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고 또 쓸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그의 말 끝에 외로움이 배어 있다.


외롭냐고 물었다. 아니고 외로움을 즐긴단다. 더구나 이렇게 말이 통하는 내가 있어 행복하단다. 그는 내가 자기의 ‘멘토’란다. 듣느니 처음이다. 멘토를 넘어서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알고 있다며, 그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고흐선배만 생전에 그림 한 점 팔지 못했고 다른 선배들은 모두 잘 살았단다. 그것도 듣느니 처음이다. 그림쟁이들은 다 가난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고흐선배의 가난이 워낙 널리 알려져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할 뿐, 아니란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신념을 갖고 있었다. 믿어달라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꼭 보답하겠다고,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물감이 굳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고흐선배가 떠올라 그가 동생에게 편지를 썼듯이, 내게 전화를 한 거라고. 자기의 예술세계를 공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단다. 그게 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처음 듣는 말이다. 공연히 눈가가 촉촉해졌다. 갑자기 왜 그래? 너 필요한 것 있니? 내 물음에 그는 또 외쳤다. “엄마, 사랑한다고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들에게 처음 듣는 사랑고백이다. 춥다, 어서 그만 들어가 쉬어. 통화한 지 두 시간도 넘었어. 그는 또 웃었다. 내일 그릴 물감 짜놓고 들어갈 거란다. 내일 쓸 물감을 왜 짜놓아야 하는지 나는 이해가지 않지만 알았다며 그만 끊자고 했다. “네, 엄마!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우리 엄마! 사랑해요.” 조금 높아진 톤이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잠이 저만치 달아났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제 아들을 믿으리라. 아들이 나를 믿고 사랑하듯 나도 더욱. 아니, 나는 늘 아들을 믿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다음에는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하리라.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돕고 기도하리라. 혹시 아들이 노린 것은 그것일까. 그렇더라도 어미니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니까 그래야 하리라. 사랑 고백은 이렇게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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