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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24. 2023

그때의 선택은 옳았다

양심 따라 살기

   

외부 대학에서 강의할 때였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이 한 학기에 150명에서 200명 정도 되었다. 강좌는 똑같았다. 그 수업에서 나는 어떤 단체에서 집필한 교재를 쓰고 있었다. 집필자 중에 이름만 들어본 교수가 둘 있었지만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하는 강의에 웬만큼 맞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부족한 것은 보완해 가면서 사용했다. 여기서 부족하다는 것은 내가 강의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그 교재를 3년 정도 썼을 때였다. 출판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계좌번호를 불러달란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인세를 나눠주고 싶단다. 이건 집필자들의 생각으로, 꾸준히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벼운 인사라며. 출판사 대표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달라고 했다. 아울러 앞으로도 그 교재를 사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정중했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학기에 그만큼의 교재를 3년 동안 사용했으니 그들 입장에서 볼 때 고마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인세를 나누어 줄 필요는 전혀 없었다. 내가 필요해서 사용한 교재이므로. 나는 그 교재가 합당하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앞으로 내가 계속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그걸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재 선택은 강의 내용에 얼마나 합당한가 여부에 달린 것이지, 어떤 조건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출판사 대표 아니 집필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이 많이 나갔고 그것이 고마웠을 것이다. 집필자들 모두 교수들이었으므로, 자기들이 집필한 교재를 소비하는 나에게 동료의식 같은 걸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인세를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열다섯 명의 집필자들이 한 단원씩 썼기 때문에 들어오는 인세를 나누어봐야 얼마 되지도 않아, 차라리 많이 소비한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주고 싶었던 걸까.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냈는데 팔리지 않으면 그것처럼 답답한 노릇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인쇄한 것의 반은 나가야 출판사에 면목이 선다. 또 웬만큼 소비가 되어야 집필자로서 만족감도 들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일면식도 없는 내가 담당하고 있으니, 출판사나 집필자들은 고마웠을 터다. 그 마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인세를 내게 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또 다른 문제다. 교재를 소비한 것은 내 필요에 의한 것이고, 집필자도 아닌데, 인세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더구나 살아가면서 나에게 서서히 자리하게 된 문제 해결 방식들이 있다. 내가 노력하여 얻은 것 외에, 아무리 많고 좋은 것이라 해도 눈길조차 두지 않는 것이, 그중의 하나다. 그런데 내가 인세를 받을 수 있겠는가. 단지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런 것은 내 사전에 없다. 합당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듣는 말이 있다. 고지식하다는 말이다. 나의 선택과 행동이 정녕 그러할까. 전혀 아니다. 고지직의 의미는 ‘성질이 곧아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합당치 않은 것을 받지 않는 것이 융통성 없는 것일까. 그것은 융통성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으로 충돌될 때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다수의 가치와 충돌될 바로 그때다. 그 대상이 일대일이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다수일 때는 힘들다.


출판사 대표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단번에 거절했다. 내가 집필한 것이 아니니 인세라는 게 맞지 않고, 필요해서 사용한 것인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집필자들의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대표는 여러 번 나를 설득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는 내게 참 고지식하시네요, 라며 마무리했다. 그건 고지식이 아니고 정당한 것이라고 따지려다 그만두었다. 그 마음만은 내가 알기 때문에. 또 대표가 부정적인 의미로 쓴 게 아닌 듯했고, 습관적으로 쓴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바쁜 사람 잡고 가르칠 일이 있겠는가. 더구나 수강료도 받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그건 아주 잘한 일이다. 그 인세를 받는다고 내 삶에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 아니고, 일어난다 해도 떳떳하지 못했을 테니까. 더구나 앞으로 계속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겠으나 부담스러웠다. 앞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교재를 내가 집필해 사용할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으므로. 그것이 아니라 해도 절대 받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때의 선택은 옳았다. 이렇듯 삶의 순간순간 선택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이루고 내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나는 늘 생각한다.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세상의 법도 참고하지만 내가 더 믿는 건 양심이다. 양심은 신이 내 가슴에 심어놓은 법일 테니까. 세상의 법은 필요에 의해 바뀌지만 양심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튼 고지식하다든 말든 양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내 선택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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