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Apr 29. 2023

이어폰

산문시

  

그들은 모두 귀를 막고 있었어 그것으로, 어릴 적 멱 감을 때 콩잎으로 귀를 막았던 날이 생각났지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 그들도, 그날이, 그리워서, 그랬을 거야 유년엔 그리워할 게 많잖아 밥을 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지 더 높은 자리로 가려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지 숙제만 하면 놀아도 되지 그날이, 그리워서 청소년이나 청년이나 중년남자나 중년여자나 심지어 노인까지 귀를 막고 있는 거야 그것으로, 지하철역이나 거리나 카페나 심지어 집안에서도 그렇게   

   

세상 소리를 거부하는 것일지 몰라 욕망 경쟁 이기심 질투 비교가 비빔밥처럼 버무려진 그 소리에 벽을 친 거지 벽을 치고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거야 거긴 유토피아일지 몰라 아니 그걸 꿈꿀지도 몰라 꿈꾸면서 현실을 잊는 거지 아, 갑자기 비빔밥을 먹고 싶어 욕망 경쟁 이기심 질투 비교 같은 채소를 다 넣고 계란프라이를 넣고 찹쌀고추장을 넣고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다 먹어버리는 거야,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도록 그렇게     

 

그것으로 귀를 막아본 적 없는 자는, 모르는 

세계가 웅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없지

그것으로 귀를 막아본 적 없는 자는, 함부로 

황홀함을 알 수 없는 자는, 마음대로 

그것을 견고한 벽이라고 불통의 벽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매거진의 이전글 대물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