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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구름으로, 햇살로

스승님, 아 스승님

by 최명숙


서종, 언제나 풍광이 좋은 곳. 그날도 풍광은 여전했다. 다른 날과 달리 가슴이 먹먹하고 한숨이 쉴 새 없이 나왔다는 것 말고. 한숨은 집에서 떠날 때부터 그랬다. 스승님께 올릴 차를 준비하고 찻잔을 챙기면서 혼잣말했다. 선생님, 메밀차 좋아하셨죠? 녹차도요. 오늘은 녹차를 올릴게요. 이 찻잔, 생각나시나요? 홍천으로 여행 갔다가 가평도요에 들렀을 때, 사주셨잖아요. 휴, 또 한숨이 나왔다. 그리워서다.


스승님이 내 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었다. 제자들과 지인 몇이 서종에 잠들어 계시는 스승님을 뵈러 갔다. 아직도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양수리를 지났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은 고요했다. 내 마음과 달리. 그날은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날도, 산들거리며 부는 바람도,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도, 투명한 햇살도. 끊임없이 혼잣말을 했다. 맑은 하늘 저쪽에 계신가요? 바람으로, 구름으로, 햇살로, 저를 보시나요? 그러다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불혹의 나이로 들어간 대학에서 소설론과 소설작법, 작가연구와 작품연구를 가르쳐주셨고, 문학의 참맛을 알게 해 주셨으며, 이십여 년 전부터 국내 곳곳을 함께 여행하며 스승으로 동료로 친구로 함께 해주셨던 분. 공저로 교재를 쓰고 산문집도 네 권 함께 출간하며 동기간보다 더 가깝게 지냈는데. 이제 함께 했던 날들로만 추억하게 되다니. 세상에 갖가지 이별이 있지만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내 마음은 복잡하고 답답하며 아프기만 한데, 스승님은 고요하게 계셨다. 유고집과 출간한 책들을 올렸다. 찻잔에 녹차를 따랐다. 모두 한 잔씩. 다른 제자가 준비한 차도 올렸다. 연구실에 찾아가면 차를 우려 따라주고 또 따라주던 스승님. 명패를 손수건으로 닦고, 자라고 있는 잡풀을 뽑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정말 여기 계신 건가요, 이게 현실인가요,라고.


재작년 이른 봄이었다. 출간한 내 책을 스승님께서 읽었다며 만나자고 연락하셨다. 우리는 남한산성 자주 가는 음식점으로 갔다. 책에 대한 감상과 평을 말씀하셨다. “내 제자답네, 이제 마음대로 써. 그래도 돼. 어떤 장르라도. 내가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는 게 기뻐.” 스승님의 눈에 눈물이 괴었다. 왜 우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기특해서란다. “최 선생, 고생은 이제 끝났어.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고생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잖아.” 스승님은 내게 선물을 주셨다. 울 코트다. 책을 읽으면서, 따뜻한 코트를 하나 사주고 싶으셨단다.


그날 그 평이 마지막이 될 줄 스승님도 나도 몰랐다. 내가 책을 낼 때마다 가장 먼저 읽고 평을 해주시곤 했는데. 우리는 맛있게 점심을 먹었고, 책 이야기를 했으며, 여행을 계획했다. 또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고 다시 책 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 내 모습을 읽고 깊이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며, 엷게 웃으셨다. 제자이지만 한 살 어린 내게, 이제 친구처럼 지내자고, 퇴직하면 같이 여행과 맛 집이나 다니며 살자고 하셨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퇴직을 한 학기 남겨두고, 아프게 되었다.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앞날을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라 해도, 그럴 수 있는 걸까. 스승님이 아프셔도 그렇게 가실 거라곤 더더욱 생각 못했다. 나으려니 했다. 삶의 희망을 내려놓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이면, 울면서 사정했다. 저를 두고 가시지 말라고. 그러면 스승님도 목이 메었다. 그래도 내 욕심만 차린 제자였다. 돌아가시던 날, 전화로 마지막 인사할 때도, 가시면 안 된다고 붙잡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모두 이제 편히 가시라고 하는데, 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럴까. 끝까지 나를 안타깝게 여기셨을까. 입관할 때 참여한 내게로 고개를 돌리시는 스승님을 뵈었다. 환각일까, 착각일까. 하지만 확실히 그랬다. 우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바로 하셨다. 그때 나는 성경의 나사로처럼 살아나신 게 아닐까 싶어, 순간 가슴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모든 게 내 바람일 뿐이었다. 그렇게 스승님은 내 곁에서 떠나, 하늘로 가셨다. 보시던 책과 갖은 물품들을 내게 유품으로 남기시고. 그렇게 받은 사랑과 우정을 어떻게 갚을 수 있으랴. 없다. 그리워하는 게 다다. 스승님 바람대로 마음껏 거침없이 쓰는 것도 유지를 받드는 것일까.


스승님은 바람으로, 구름으로, 햇살로, 내 곁에 계시는 걸까. 산책로를 걷다가도 바람이 불면 중얼댄다. 선생님이신가요,라고. 하늘에 뜬 구름을 보고도 말한다. 저를 보시는 거죠,라고. 주신 책을 읽다가 여행 계획 쪽지가 나오면, 여기 저와 가고 싶으셨나요,라고 묻는다. 누구는 이제 보내드려야 하니 그만 생각하라고 한다. 글쎄,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마음먹은 게 있다. 심상(心喪) 3년을 입기로. 상복을 입는 것은 아니나, 마음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기로 말이다. 말이 3년이지 실제론 만 2년이다. 예로부터 제자들은 스승이 세상을 뜨면 심상 3년을 입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떠나면 이승의 모든 인연이 끊어진 거라고 말한다. 어찌 그리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생각은 다르다. 잊히기 전까지는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모습이다. 아직 그렇다. 여행을 가도 함께 갔던 곳에 주로 간다. 같이 갔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한동안 스승님과 함께 했던 날과 시간을 떠올린다. 상처에 소금 치는 것처럼 고통스러워도 그러는 게 낫다. 조금씩 내성이 생기고 있으니까. 물론 내 호흡이 있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잊지 말아야 한다. 내게 최고의 사랑과 신뢰를 주신 스승님이고, 동료고, 친구고, 동기간 같은 분이니까.


그날, 종일 서종에 있었다. 스승님 가까이만이라도 있고 싶어서. 울컥울컥 가슴이 요동치고 한숨이 나도, 그러고 싶었다. 바람으로, 구름으로, 햇살로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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