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며칠 째 오이를 먹고 있다. 그것도 날로. 과일보다 더 맛있는 오이. 오이가 이렇게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나 먹고 나면 또 먹고 싶다. 오이소박이나 오이지 아니면 먹을 일이 없는 채소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적게는 두 개, 많게는 다섯 개를 먹는다. 이러다 내가 토끼가 되는 건 아닐까. 토끼가 오이를 먹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친구 ‘현’이 오이를 보내겠다고 연락이 왔다. 식구가 단출해 먹을 사람이 없으니 그만두라고 했다. 조금 보낼 테니 그런 줄 알란다. 다시 나는 괜찮으니 보내지 말라거니 보낸다거니, 한동안 실랑이했다. “글쎄, 그냥 보낼 테니 오이지 하고, 소박이 하고, 날로도 먹어. 맛이 다르다니까.” 그래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이유를 말했다. 그건 친한 벗이 오이농사를 짓는데, 팔아주느라 그런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아름다워서 더 이상 아무 말 못 했다. 내가 오이 값을 내겠다고 하니, 그럴 거면 말도 하지 않았을 거란다. 그럼 조금만 보내라며 전화를 끊었다.
현은 남녀공학인 중학교 동창생이다. 사실, 학교 다닐 적엔 말도 거의 해본 적 없다. 그 친구는 과묵했고 나는 새침데기였으니까. 졸업 후 수십 년이 지나 어느 해 동창회에서 처음 보았다. 누군지 몰랐다.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인가 했을 정도로. 그때도 인사만 나누고 말았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도, 학창 시절에 전혀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동창생과 나눌 이야기는 없었다.
작년에 내가 퇴직하던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깜짝 놀랐다. 퇴직을 축하한다는 문구와 현의 이름이 적힌 리본이 붙은 난 화분이 놓여 있었다. 활짝 핀 꽃이 나비처럼 보이는 호접란이었다. 화환이나 화분을 보내기 위해 전화한 몇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한 터였다. 어떻게 알고 보냈을까. 동창회 명부에서 주소를 알았으리라. 퇴직하는 것은 한 라디오방송사에 보내 방송된 내 편지 때문이었을 테고.
며칠 후 오이가 왔다. 한 박스인데 이건 보통 박스가 아니다. 한 접이다. 백 개. 거기다 어찌나 실한지 웬만한 오이 두 접 분량은 될 것 같다. 하나 씻어서 먹어보았다. 놀랍다. 과일보다 더 맛있다. 상큼하고 싱싱하다. 거기다 아삭아삭하고 부드럽다. 이름 있는 오이라더니 맞았다. 하나 먹고 나니 입맛이 더 당긴다. 아예 두 개 씻어서 잘라 접시에 담아 탁자에 놓고 뉴스 보며 먹었다. 저녁 대신으로.
저녁 식사 후, 30개를 씻어 오이지를 담갔다. 오이지야 대단히 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잖은가. 깨끗이 씻어 소금물만 끓여 부으면 되므로. 그렇게 하고 돌로 꼭 눌러놓았다. 돌은 몇십 년 전 친정 마을 냇가에서 주워온 거다. 가끔 이렇게 요긴하게 쓴다. 며칠 지나면 먹을 수 있을 거다. 오이지를 잘 담그지 않는데, 올해는 얼떨결에 담갔다.
토요일에 딸네 집에 가면서 물었다. 몇 개 줄까 하고. 딸은 20개 정도만 달란다. 오이소박이 한다고. 20개 들고 가서 딸에게 건넸다. 어머! 오이가 길쭉하면서 통통한 것이 맛있겠어요, 한다. 하나 먹어보더니 맛있단다. 더 가져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현에게 딸네와 나눠 먹겠다고 했더니, 딸 주소 보내달라고 하는 걸 간신히 말렸는데, 그 정도로 맛을 자신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다른 면에서 감동했다.
친구가 농사지은 것을 자신 있게 권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믿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보내줘도 맛있다고, 싱싱하다고, 말할 수 있기에. 현은 그 오이를 싫다는 내게 굳이 보낸 것이리라. 일단 먹어보면 그 진가를 알 테니까. 오이를 받던 날, 바로 현에게 전화했었다. 친구 말이 맞는다고. 맛있고, 싱싱하고, 부드럽고, 세상에서 처음 먹어보는 오이라고. 현이 전화기 저편에서 웃었다. 글쎄 그렇다니까, 라며.
내가 쓴 책도 그래야 하리라. 누구라도 읽고 자신 있게 추천하는 그런 작품이어야 하리라.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이 좋은 책이라고 홍보하는 그런 책. 내가 책을 내면 그렇게 몇 십 권 또는 몇 권씩 사서 지인에게 보내는 친구들이 있다. 새삼 그 친구들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 쉬운 일 아닌데 말이다. 내가 그 친구들에게 그만큼 한 것이 없는데, 늘 받기만 한 것 같다. 보답하는 길은 좋은 글을 쓰는 것뿐일 터다. 그게 작가의 사명이다.
요즘 오이를 과일처럼 먹고 있다. 오이의 효능이 다양하단다. 혈당수치도 떨어지고 있다. 하루에 다섯 개 정도씩 먹는다. 아침에 두 개를 견과류와 함께 먹는다. 거기다 우유 한 잔과 삶은 계란을 곁들이면 훌륭한 식사가 된다. 산에 갈 때도 오이 두 개 가지고 간다. 저녁에 식사하며 또 하나 먹는다. 그렇게 보통 다섯 개를 먹는 셈이다. 놀라지 마시라. 나는 위대하니까, 위가 크니까 말이다.
지금 20개 남짓 남았다. 오일만 지나면 다 먹을 것 같다. 냉장고에 신경 써서 아주 잘 보관해 두었으니 그때까지 무사할 거다. 이웃에게 오이소박이 해 먹으라고 15개 주고, 딸에게 20개 주고, 오이지 30개 담고, 나머지는 내가 생으로 다 먹고 있다. 토끼도 아닌데, 잘도 먹고 있다. 딸은 놀랍단다. 하루에 어떻게 다섯 개씩 먹느냐고. 웃고 말았다. 위가 다르다며.
오이를 먹으며 계속 생각하고 있다. 아, 나도 이렇게 잘 읽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먹다 보면 하나가 아쉬워 다시 하나 꺼내는 것처럼, 읽다 보면 또 읽고 싶어 또 읽도록 써야 하는데. 오이가 요즘 나를 다시금 깨우치게 한다. 이 오이는 보통 오이가 아니다. 내 친구 현은 그걸 알고 보낸 건 아닐 텐데. 현의 친구는 얼마나 농사에 전문가가 되었기에 이런 오이를 생산하는 걸까.
나도 그만큼 글쓰기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아삭아삭 오이를 씹으며 생각한다. 오이 즙이 입안에 상큼하게 고인다. 꿀꺽 삼키며 어느새 또 베어 문다. 내 글도 이렇게 읽히도록 써야 하는데 하면서. 이 오이가 보통 오이 아닌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