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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갓 한 움큼

두 여인

by 최명숙


쑥갓 한 움큼을 얻었다. 산책길에 생면부지 여인에게서. 향이 진하다. 손수 농사지은 거란다. 농사랄 것도 없는 텃밭에서. 그것도 친구네 땅인데 심심하면 해보라는 바람에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주말농장에서 몇 년 채소 재배를 해봤다. 보기엔 별 것 아닌데, 실제로 농사를 지으려면 쉽지 않다. 지금은 하지 않는다. 처음엔 쑥갓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건 농사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한 움큼 얻었다.


어스름이 내리기 직전 밖으로 나왔다. 산수유나무 앞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연두색 셔츠를 입었다. 무엇이 잔뜩 담긴 하얀 비닐봉지를 옆에 놓고. 지친 듯 보였다. 말을 걸었다. 타인에게 말 걸기다. 우울감에 시달릴 때 한동안 내가 스스로 한 프로젝트가 ‘타인에게 말 걸기’였다. 지금은 그것과 상관없이 타인에게 말 걸기를 잘한다. “피곤하세요? 어머! 쑥이 이렇게 있던가요?” 여인은 빙긋 웃었다. 쑥이 아니고 쑥갓이라며. 들여다보니 과연 쑥갓이었다. 여인이 대뜸 말했다. “좀 드릴까요?” 내가 손사래를 쳤다. “아유, 아니에요. 말씀은 고맙지만 식구가 단출해서요.” 여인이 또 빙긋 웃었다.


언제나처럼 개울가를 걸었다. 이상하다. 자꾸 쑥갓 향이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 좀 얻을 걸 그랬나, 괜히 욕심냈다가 못 먹게 되는 것보다 나아, 마침 상추도 있는데 같이 쌈 싸 먹으면 좋았을 건데,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서 좀 사지 뭐, 산책 마치고 다시 그곳에 갔을 때도 그대로 앉아 있으면 좀 얻을까, 직접 농사지은 거라잖아 등등. 쑥갓을 놓고 별 생각을 다하며 걸었다. 찰나에도 백팔번뇌가 생긴다더니 그 말이 맞지 뭔가.


전환점을 돌아 산수유나무 앞에 왔을 때, 여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친구로 보이는 흰 셔츠 입은 여인과. 등 뒤에 개울을 두고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긴 나무의자에 앉은 두 사람은 다정해 보였다. “아직도 계시네요.” 여인은 여전히 빙긋 웃더니 말했다. 이 친구가 텃밭을 줬다고. 인상이 유난히 좋은 흰 셔츠 여인이 방긋 웃었다. 한 사람은 빙긋, 한 사람은 방긋. 둘이 잘 어울린다.


나이 들면 좋은 게 이거다. 어디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만나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 이말 저말 하다가 나이와 사는 곳까지. 거기다 누구와 사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고향은 어딘지, 어디서 살다 왔는지, 20여 분 동안에 모든 신상정보가 털리고 있었다. 아니다. 모두 스스로 털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갑이고 나보다 다섯 살 위며 서로 산책하다 만난 사이였다. 겨우 1년밖에 안 됐는데 흰 셔츠 여인이 선뜻 농토를 내주었으며, 자기네 농사지으며 연두색 셔츠의 여인 밭도 관리해주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려고 하자 흰 셔츠 여인이 붙잡는다. 저녁까지 먹고 나왔으니 이야기나 좀 하잔다. 인상이 좋은데 특히 하관이 발달하고 예쁘니 노년이 참 괜찮을 거라며. 관상까지 들먹이며 붙잡으니 뿌리치기 민망해서 더 이야기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아이들 이야기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우리 여인들의 수다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흰 셔츠 여인은 우리 아들의 나이까지 묻더니 중매를 하고 싶단다. 그것만큼은 정중히 거절했다. 중매해서 결혼할 아들이 아닌 것을 잘 알기에. 굳이 남의 힘까지 빼게 할 이유 없잖은가.


어스름이 사위를 덮을 때까지 세 여인의 수다가 이어졌다. 하지만 만남이 있다면 헤어지는 게 인생의 법칙이다. 내가 먼저 일어서자 두 사람도 일어섰다. 그때 연두색 셔츠 여인이 다시 권했다. “이 쑥갓 조금만 드릴게요. 맛이 다를 거예요.” 나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리고 고백했다. 사실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계시면 조금만 얻으려고 했다고. 두 여인이 또 웃었다. 빙긋, 방긋. 흰 셔츠 여인이 가방에서 봉지 하나 꺼냈다. 마침 있다며.


“조금만, 아주 조금요.” 여인이 한 움큼 집어 봉지에 담았다. 농사지은 걸 누구에게 준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선뜻 주겠노라고 한 아름다운 마음을 거절했던 게 민망했는데. 나도 흐뭇했다. 잘 먹겠노라고, 실은 쑥갓을 좋아한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쑥갓 한 움큼이 물질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는가. 일이천 원도 안 될 거다. 하지만 물질로 따질 일이 아니다. 스치는 이웃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 그게 귀하다. 물질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므로. 사실, 우리 문화에서 이것은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 게 이웃의 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넣기 전 쑥갓 향을 다시 맡아보았다. 쌉싸래하며 향긋한 내음. 다음날은 상추와 함께 제육볶음을 해서 싸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각박하고 포슬포슬한 도시의 삶에서 쑥갓 향을 느끼며. 쑥갓 한 움큼에 겹쳐지는 두 여인의 미소, 빙긋 방긋. 곱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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