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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보조개

또온이

by 최명숙

나에게 보조개가 있다. 그것도 인디언보조개. 얼굴 근육이 짧아지면서 생기는 기형이 보조개란다. 솔직히 내게 있는 게 보조개의 한 종류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관심이 없었다. 그저 눈 아래 광대뼈 부근에 약간 들어간 부분이 있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저 난 그렇게 생긴 얼굴이구나 하는 정도로. 볼에 살짝 들어가는 귀여운 보조개가 아니고, 왜 거기에 그런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안 했다.


한두 번 누군가 말한 적 있었다. 이것도 보조개인가요?라고. 글쎄요, 난 이상하게 여기가 약간 들어갔어요. 말할 때와 웃을 때 표시가 나요. 그냥 이렇게 생겼나 보다 했는데, 보조개는 아닐 겁니다. 세포가 거긴 죽었나 봐요, 라며 후훗 웃곤 했다. 보조개라고 생각한 적 없다. 가족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이 없었고, 집안 어느 누구에게도 없으며, 주위에도 없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둘째외손자 ‘또온이’ 때문이다. 영아 때는 몰랐는데, 또온이가 자라면서 나타났다. 나와 똑같은 부위에 약간 들어가는 부분이. 신기했다. 웃을 때 말할 때 나처럼 눈 아래 광대뼈 부위가 살짝 들어간다. 또온이를 안고 거울을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딸도 그게 신기했나 보다. 그전에 내게 말했다. 유전자의 힘이 무섭다고.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또온이 얼굴에 보조개가 있는데 엄마랑 똑같다고 하는 거였다. 그래서 또온이를 안고 거울을 봤던 거였다.


그게 인디언보조개란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우리 선조가 인디언인가, 퍼뜩 스치는 생각이었다. 먼먼 머언 옛날 인디언보조개를 가진 우리 선조의 유전자가 그 후손의 또 후손의 유전자에 내재돼 있다가 내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고. 인디언보조개는 인디언 분장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귀엽거나 발랄한 인상을 주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특징이 있단다. 그럴까. 우리 또온이를 보면 귀여운데 나는 썩 그렇지 않다. 그것도 전체적인 얼굴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딸로부터 인디언보조개라는 말을 듣고 나는 왜 인디언을 떠올렸을까. 옛날 멀고 먼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알류샨열도 또는 베링해협을 지나 북미대륙이나 남미에 정착해 인디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나는 흥미로웠다. 아마 내 유전자 속에 그 선조들의 유전자가 장착돼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인디언보조개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인디언을 떠올렸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인디언 분장과 같은 느낌이 들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말이다.


나 닮은 또온이를 보면 괜히 흐뭇하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보조개는 유전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단다. 인위적으로 성형을 해서 만들기도 하고. 하지만 또온이의 보조개는 분명히 나로부터 유전된 게 틀림없다. 닮았다는 건 친밀감과 함께 이상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크다. 그것을 굳이 증명할 필요 있을까. 나의 유전자를 가졌고 그것이 드러난 손자이니 더 말할 이유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닮았다. 체형까지도. 동글동글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그건 우리 친정 쪽의 유전자다. 기골이 장대한 체형 역시. 또온이 친가 쪽엔 그런 체형이 없단다. 온이는 친가 쪽 체형인데, 또온이는 우리 친정 쪽이다. 쉽게 말하면 또온이는 나를 닮았다. 딸의 친가인 내 시댁 쪽에도 그렇게 골격 큰 사람이 없다. 외가의 외가 유전자를 쏙 빼닮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외할머니의 유전자를 보통 25% 닮는다고 한다. 우리 온이와 또온이가 나를 25% 닮았다는 말이 된다. 온이는 나의 정서적인 면을 닮은 것 같다. 감성적이고 예민하며 감각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을 잘 살펴주고 공감해야 좋아한다. 그런데 또온이는 나의 외형적인 면을 닮았다. 웃거나 말할 때 들어가는 인디언보조개까지. 두 외손자가 공평하게 나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닮았으니 이보다 더 흡족한 게 있을까.


사위는 외할머니의 유전자를 왜 25%만 닮느냐며, 더 많이 닮았으면 좋을 거란다. 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듣기 좋다. 그냥 하는 말일지라도. 어쨌든 유전자의 힘은 강하다. 그러니 후손들의 못마땅한 행동을 보고, 저 애가 누굴 닮아서 저런가 하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누군가를 닮았으리라. 부모 또는 조부모, 혹은 외조부모를. 아니면 머언 먼 옛날 어느 선조의 유전자가 후손의 몸에 잠재되었다 지금에야 나타난 것일 수도.


그런 유전자만 유전되는 것은 아닐 터다. 선한 성품, 남에게 하는 행동 등의 일정 부분도 유전될 것 같다. 엄밀하게 유전은 아니지만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 그러니 후손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반성할 일이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므로. 부정적으로 보이는 현 세태를 보고도 통탄만 할 일이 아닌 것도 그래서다. 우리들의 의식과 생활양식을 후손들이 보고 배운 것이므로.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의 인디언보조개를 보며, 오늘 아침에 드는 생각이다. 하늘이 맑다. 녹음 짙은 앞산이 가깝게 보인다. 이제 여름이다. 계절이 깊어가듯 우리의 삶도 깊어간다. 긍정적인 좋은 요소들을 후손에게 남기는 삶이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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