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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깨자

유 작가

by 최명숙


몇 년 전 해외초청 문학 강연에 갔을 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시작되기 전이었다. 꿈같은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설렜고, 두려웠으며, 놀라웠다. 살면서 가끔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해외초청 강연도 그랬다. 출간한 책이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인쇄물이 넘쳐난다고 해도 출간하길 잘한 일이었다. 안 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요청 주제는 인문학과 글쓰기 강연, 각각 1회씩 2회 차였다. 크게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다. 늘 하는 분야이므로. 다섯 달의 여유도 있었다. 차근차근 준비했다.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역시 내가 체험한 것들이다. 그것들 위주로, 소박하지만 진심을 담아 전하리라 생각했다. LA,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많은 것이 어설펐다.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초청한 문학단체 임원들이 빠듯하지 않게 일정을 짰는데도.


맡은 일을 시작할 때 초인간적인 힘이 나오는 법이다. 약간 불안감이 있었지만 나는 나를 믿었다. 스스로를 믿는 건 언제나 힘이 된다. 이틀간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은 물론 성공적이었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건 민망하지만. 그랬다. 그들의 환호와 반응이 지금도 현재인 듯하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해외에서 고국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갈급함 때문이었을까. 무명작가나 다름없는 나의 이야기에 몰두하던 작가들이었다.


후일담으로 들었는데, 일부 회원들이 임원들에게 물었단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냐고, 어떤 책을 출간했느냐고. 그때 난감했으리라. 책이야 몇 권 냈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얼굴이 몇 번 나온 적 있다. 행인 1, 행인 2처럼 아무런 존재감 없이. 심지어 껄끄러운 일로 나온 적도 있다. 그것 역시 별 존재감 없었다. 행인 1,2와 다를 것 없는. 그러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서설이 길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그때 있었던 일이다. 강연이 성공적이 끝나고, 문학단체에서 나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깜짝 놀랐다. 내가 한 일이 무엇이 있다고 공로패를.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털로 된 패였다. 그게 놓여 있을 때, 내게 주는 것인 줄 생각지 못했다. 임원 중 누구에게 주는 것이리라 짐작했을 뿐이다.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민망했다. 먼 곳까지 와준 것을 고마워하는 마음인 듯했다. 어쨌든 공로패를 받았다.


단체 사진을 찍고 소규모로 사진을 찍으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웬만큼 사진을 찍었고 마지막 사진을 찍으려고 몇몇이 자리를 잡을 때였다. 중앙에 섰던 내가 조금 비켜서면서, 들고 있던 공로패를 놓치고 말았다. 쨍그랑라랑 와자장창!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강연장에 울려 퍼지며 크리스털 패가 깨졌다. 난감했다. 미안했다. 속상했다. 당황해서였으리라.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렸다. 모였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래도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실수해도 미소를 잃지 않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했던 미인들처럼. 손을 흔들진 않았지만 미소만은 나도 잃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것은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성심성의껏 대우해 주는 표징일 수 있는 공로패를 깨뜨리다니, 민망한 마음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렇게 미소를 띨 수밖에.


그때였다. 원로작가 한 분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우와! 우리 접시를 깨자!” 그 말에 모두 “와! 접시를 깨자.”라며 와르르르 웃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히 상패가 깨지자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혹시 집에 돌아갈 때 비행기 사고가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이렇게 나의 상상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게 치닫는다. “선생님,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서양에서는 접시를 깨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긴대요.” 역시 원로작가는 유연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게 그렇게 뜻하지 않은 순간에 발현되고 있었다. 상패가 접시가 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들었지만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더 흥겨워했다.


얼마 전 일이다. 전화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나는 모르는 번호도 받는다. 필요해서 오는 전화가 있으니까. 제자들도 그렇고. 역시 받길 잘했다. 대뜸, LA에서 왔단다. 그곳 문학회장의 부탁으로 전해줄 게 있다며. 아, 공로패리라. 주소를 불러주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만나자고 했다. 내가 가겠다고. 그 작가는 중간쯤에서 만나자고 했고, 우리는 만났다. 공로패는 물론, 회장의 편지와 함께 선물까지 전해주었다.


지금 장식장 안에는 다시 만들어준 크리스털 상패가 빛나고 있다. 햇살이 비치면 얼마나 반짝반짝하는지. 내 실수에도 접시를 깨자며 웃고 손뼉 치던, 그곳 작가들의 아름다운 마음처럼 그렇게 반짝인다. 생각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을 타박하고, 잘못이 있으면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쁜 세상이다. 남의 실수에 접시를 깨자고 웃으며 손뼉 칠 수 있는 사람들, 그곳의 작가들. 나도 그런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나를 꿈꾸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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