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 아직은 괜찮다

by 최명숙


언제나 난 괜찮았다, 혼자 먹는 밥이. 어렸을 적에는 먹을 것이 있기만 해도 다행이었다. 혼자면 어떻고, 둘이면 어떤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하긴 그때는 대부분 온 식구가 함께 먹었으니까, 두레반이라고 하는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객지 생활 할 때도 혼자 먹는 밥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때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밥이었으므로. 먹고살만한 사회가 되었을 때, 혼자 밥 먹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대중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도,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밥이라는 게 배고프면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밥에 대해 너무도 기초적인 의미만 갖고 있었던 건, 그만큼 내 삶이 여유롭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아무튼 혼자 먹는 밥, 일명 ‘혼밥’이 난 괜찮았다.


요즘 거의 혼자 밥을 먹는다. 온 가족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던 시절이, 지금은 먼 옛날처럼 생각된다. 이제 그런 일상을 살게 될 가능성은 없다. 아이들이 오면 가끔 한 번씩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혼자 먹는 밥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아니, 두지 않으려고 한다. 혼밥이 싫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것에는 빨리 손드는 게 마음 편하다. 공연히 붙잡고 고민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아무튼 혼자 먹는 밥에 너무도 익숙하다.


엊그제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아들 딸 사위 손자까지. 모처럼 집안이 북적댔다. 밖에 나가서 먹자는 걸 거절하고, 집에서 조촐하게 준비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음식 준비를 하느라 땀이 줄줄 흘렀다. 혼자 간단하게 먹을 때와 달리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도 마음은 즐거웠다. 식구들이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식사 준비를 하는 게 얼마만인가. 쌀과 잡곡을 적당하게 불려 밥을 짓고, 참깨를 새로 볶아 빻아 나물을 무쳤다. 사위가 잘 먹는 계란말이를 하고, 딸이 잘 먹는 갓김치를 새로 꺼냈다. 아들이 좋아하는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중심 음식이 되는 수육도 알맞게 삶았다.


밥상에 앉아 수저 드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왜 이제야 밥상 차리는 어미의 마음을 알게 된 걸까. 모르진 않았지만 그걸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늦돼도 너무 늦되는 나다. 너무도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다 놓쳐버리고 만 것 같다. 물론 상황이 그랬다. 늘 바빴으니까. 그리고 당면한 문제들 때문에,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급급했으니까.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걸 생각하며 정성껏 밥상을 차릴 날을 이제 거의 놓쳐버렸다. 이렇게 어쩌다 한 번씩은 있겠지만.


결혼을 해 가정을 갖고 곧이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끼니때마다 밥상을 준비하는 게 조금씩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일은 바빠졌고 주부의 역할과 직장인의 역할을 함께 감하는 게 힘에 부쳤다. 그러면서 학업까지 시작해 시간을 쪼개 쓰는 지경에 이르자, 내가 줄일 수 있는 건,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제대로 식사를 못한 것이.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차 안에서 김밥이나 빵을 먹었다. 어쩌다 집에서 먹게 되어도 혼자 먹는 일이 잦았다. 식구들 모두 각자의 일로 바쁘고 식사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으니까.


“엄마, 시금치나물 진짜 맛있네요. 어떻게 무친 거예요?”

감기 때문에 입맛이 없다던 딸이 나물을 맛있게 먹으며 물었다.

“깨소금 갓 볶아 무친 거야. 좀 줄까?”

“네!”

망설이지 않고 얼른 대답했다.

“음식은 정성이야. 너희들 먹이려고 어제 시장 보며 좋은 재료만 골랐어. 고기도 그렇고.”

“엄마, 대단한 거 산 것 같지 않은데요. 시금치나물쯤이야. 푸훗.”

아들의 말장난과 어설픈 유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는 모두 웃고 말았다. 시답잖은 말에도 웃으며 밥을 먹었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런 걸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배가 그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맛에 밥상을 차리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오후 새참 때쯤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먹고 가라고 잡지 않은 건, 아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랬다. 친정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저녁 먹고 가라, 자고 가라, 하며 나를 붙잡곤 하셨다. 그때마다 뿌리치고 오는 마음이 힘들고 속상했다. 그런데 이제야 어머니의 그 마음도 확실히 이해된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어떨지 모르나 지금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마음이라도 편하도록,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저녁에 또 혼자 밥을 먹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가끔 아이들이 찾아와 밥상 차리는 맛을 느끼게 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을 것 같다. 그마저 힘들면 먹고 싶은 것으로 사주리라. 밥상을 차리든 사주든, 같이 먹는다는 게 더 중요하므로. 하지만 그런 일이 아주 자주 있을 것 같지 않다. 너무도 독립적인 아이들과 나여서. 어쨌든 혼자 밥을 먹게 되면 그렇게 하고, 같이 먹게 되면 또 그렇게 하리라. 아들까지 결혼하고 손주들이 더 많이 생기면 달라질 거라는 어떤 이의 말이 희망적으로 들리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 어쨌든 혼자 먹는 밥, 아직은 괜찮다.


창문을 열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래도 내일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올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임 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