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전가

by 최명숙


시인하면 될 일이었다. 여차여차해서 이렇게 됐다고. 그게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아니면 세금 더 내는 일일까. 그것도 아닌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건 쉽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자랄 때도 정직하게 고백하면 꾸중하지 않았다. 어떤 실수나 잘못이라도. 누구라도 잘못한 일로 질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고 책임 전가나 거짓말을 할 때는 심한 질책을 당해야 했다.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게 당연했다. 언젠가 아들이 말했다. 우리는 ‘엄모 자부(嚴母慈父)’ 분위기에서 성장했다고.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 건데 엄한 엄마로 인식되었다는 걸 알고 약간 충격받았다.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직하면 불이익을 당할 때가 많다는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야 교양처럼 생각되는 것도 적지 않다고. 그게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으로 호도되는 것 역시. 그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정직한 이가 고지식한 사람으로 비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정직은 바르고 곧다는 의미이고, 고지식은 성질이 곧아 융통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곧다’는 의미는 정직과 고지식의 공통점이다. ‘융통성이 없다’는 부분은 다르지만. 아무튼 정직한 것과 고지식한 것을 올바르게 변별하지 않고, 정직한 행동이 고지식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제 정직과 융통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정직이 지나치면 고지식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게 맞다. 그래도 책임 전가는 비겁한 짓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남에게 책임을 씌우는 격이니까. 그것을 별 의식 없이 말하는 게 요즘 추세인 듯도 하다.


내가 고민스러웠던 것은 정직과 선의의 거짓 사이의 처신이었다. 성적평가 후 학생이 성적 수정을 요구할 경우 같은 때다. 한 단계만 올려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며 학생이 성적 수정을 요청할 때, 솔직히 나는 고민스러웠다. 정직하지 않다며 거부하는 내게, 학교에 못 다니고 휴학을 해야 한다고 하면, 안타까우면서도 속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성실히 하지 못한 본인 잘못인데, 성적 준 내 잘못으로 책임 전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대부분 학생은 수용했다. 하지만 끝까지 떼를 쓰는 학생이 더러 있었다. 그러면 교육자의 정직한 양심이 알량하게 취급되는 것 같아 속이 부글거렸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게 어떤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한 사람이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그 일을 다른 이와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괜찮다. 사람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고,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민망할 것 같아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는 어정쩡한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잘되었다고, 그럴 수 있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내가 바쁜 것 같아서 그랬단다. 나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좋게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내가 바쁜 것 같아 그랬다는 말이 자꾸 거슬렸다. 결국 내게 책임 전가를 한 것 아닌가. 미안하게 되었다든지, 사정이 있었다든지, 정직하게 말하면 되었을 텐데. 심호흡을 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민망할까 봐 배려한 것이 기분만 나쁘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도 불편할 것 같았다.


애써 마음을 정돈했다. 말이 그렇지 미안해서 그랬을 거라고. 표현 방법이 서툴러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예기치 못하게 전화를 받으니 준비가 안 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등등. 그러다 보니 실소가 나왔다. 왜 이리도 쓸데없이 배려하나 싶어서. 그래도 이해하기로 했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혀 마음 쓰지 말라고, 잘 되었다고, 말한 대로 요즘 유난히 바쁘다고, 그 일 잘 마무리하고 만나자고. 그도 내게 문자를 했다. 사실은 마음이 개운치 않아 망설이다 연락을 못했다고. 넓게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됐다. 이쯤에서 더 이상 언급하지 말고 넘어가는 게 좋다. 함께 살면서 늘 봐야 할 가족도 아닌데. 임기응변에 능하지 못해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잠시나마 책임 전가하는 것처럼 들려 불편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시시콜콜 따지며 살다간 내가 더 피곤해질 것 같기도 해서. 정직도 좋고 선의의 거짓말도 좋으니 이제 좀 따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속에서는 그게 잘 안 되니 문제다.


이제 덜 듣고 덜 보고 덜 말하는 것도 좋으리라 싶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 남의 잘잘못이 더 명료하게 보이는지. 그래서 생각과 달리 갈수록 더 까다로워진다. 내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만 보는 격이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사람 되기 그른 것 같다.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도 넘겼는데, 나는 덜 돼도 무척 덜된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걸 어떡하느냐고 스스로 위로하다 깜짝 놀란다. 나도 책임 전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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