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앞에 개울이 있다. 개울을 따라 복정을 지나면, 한강이나 탄천으로 가는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개울가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계절을 알리는 꽃이 핀다. 봄에는 개나리와 양지꽃 봄까치꽃 창포. 여름에는 원추리와 부처꽃 여우팥 메꽃.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등. 코스모스와 벌개미취는 여름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 문턱에서 절정을 이룬다. 개울가에 지천으로 핀 꽃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하루 중 어느 때고 마음이 내킬 때 그 길을 걷는다.
개울에는 몇 군데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건너 마을이나 위례로 갈 수 있다. 네모진 넓적한 돌이 가지런한 징검다리다. 가끔 재미 삼아 그 징검다리를 한 번씩 건너보기도 한다. 그러면 물아래로 송사리 떼 노니는 것이 훤히 보인다. 저녁나절 산책할 때는 물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저녁 햇살에 비쳐 유난히 반짝이는 물고기들의 몸. 그 싱싱하고 빛나는 몸체를 보면, 나도 싱싱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징검다리에 서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기도 한다.
고향에도 징검다리가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우리는 작은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거기에 놓인 징검다리였다. 비가 많이 내렸다 하면 영락없이 다 떠내려가, 등하굣길 우리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했던 징검다리. 누런 흙탕물이 넘실대며 흘러가는 물속으로, 위 학년 오빠나 언니들이 책보를 먼저 개울 저편에 갖다 두고, 아래 학년 동생들의 손을 잡고 건너 주던 개울이었다. 그러고 보면 징검다리로 놓은 돌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듯하다. 비만 오면 떠내려간 걸 보면.
장마철에는 아침 일찍 논의 물꼬를 보고 온 동네 어른들이 등굣길의 우리를 업어서 건너다 주었다. 아저씨들 두서넛이 개울 앞에 서서 우리 동네로부터 윗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업어서 건너 주었다. 그중에 우리 삼촌이 가장 키가 크고 몸집이 있어, 나는 괜스레 우쭐하는 마음이 들었다. 윗동네 정희에게 우리 삼촌이다 하면서 자랑했다.
하굣길에도 개울에 도착해보면, 아저씨들 몇이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애 남의 애 할 것 없이 모두 업어서 건너다 주는 어른들. 그때 나는 어른들은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놀다가 동네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더라도, 그게 서운하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어른들에게 혼나는 게 당연했다. 또 우리를 보호하고 보살펴주는 게 어른이라 생각했고.
개울에 시멘트 다리가 놓인 것은 70년대 중반이었다. 우리는 회다리라고 불리던 그 난간에 앉아 별을 보고 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이 모여 처음 소주와 콜라를 섞어 맛을 본 것도 거기였다. 회다리 한쪽으로 넓고 편편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이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여름밤에는 거기 앉아 풀벌레 소리 들으며 끝없이 조달댔다. 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산책하다 본 징검다리는 옛날 우리 마을의 징검다리와 너무 달랐다. 튼튼하고 넓적한 돌을 고르게 자르고 다듬었다. 들쭉날쭉하지 않고 가지런하게 잘 정돈된 징검다리. 돌을 헛디딜까 걱정할 일 없는 넓적한 돌. 어린이들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하게 놓인 다리. 아주 안전한 징검다리다. 물에 빠질 일이 전혀 없다.
그런데 왜, 비만 오면 물에 잠기고 떠내려가던 그 징검다리가 그리울까. 건너다 개울에 빠질까 봐 염려할 때가 많았다. 새 고무신을 사서 신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넓적한 돌도 간혹 있지만 되똑하게 놓인 작은 징검돌 때문에, 툭하면 건너다 고무신이 벗겨져 물에 떠내려가곤 했다. 신발을 한두 번 안 떠내려 보낸 애들이 없을 정도로. 그러면 언니나 오빠 혹은 용기가 있는 아이가 뛰어들어 건져주었다. 물론 영영 못 찾아 맨발로 학교에 가는 아이도 있었다. 간혹 아랫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하다 건져 놓기도 했다. 그 신발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아 가져다주기도 했고.
이제 우리는 징검다리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징검다리가 놓였더라도 예전 것은 아니다. 편리하고 안전하며 모든 게 좋아졌다. 그래도 눈물 나게 그리운 건, 우리를 업어 건너 주던 아저씨들의 넓은 등, 언니 오빠들의 조금 큰 손과 힘, 회다리 위 난간 옆 넓적한 우리들의 아지트다. 등에 업혀 어른의 마음을 배웠고, 언니 오빠들 손길에서 배려를 배웠으며, 밤새 조잘대던 아지트에서 우정을 배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 못지않게 관계 속에서 체험 속에서 더 많이 배웠다.
변화해서 편리하고 좋은 것도 많지만 그것 이상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도 사라졌다. 오늘 나는 그것이 아쉽다. 잘 다듬어진 징검다리 위에서 촌스럽게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연보라색 구절초꽃이 산들바람에 흔들렸다. 내 마음을 아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