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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20. 2023

이제 두 자녀도 다자녀다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기

   

이제 두 자녀도 다자녀로 인정된단다. 세 자녀부터 다자녀였는데. 다자녀에게 제공되는 몇 가지 혜택도 있단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기억하는 표어가 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든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같은 것이다. 그중에, 최악의 표어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이다. 어릴 적에도 그 표어를 보고 눈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거지꼴’이라는 불편한 어휘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불과 50여 년 전의 일이다. 50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게 얼마나 기막힌가. 누구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근시안적인 사고밖에 할 수 없는 게 나 자신이기도 하니까.


우리 사회의 저출생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교육, 취업, 주택, 결혼 등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것으로부터 발생되었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거기에는 빈부격차,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경쟁구조 등이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이상적인 사회는 예로부터 많은 정치가와 철학자들이 고민하고 추구해 왔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상에 머무르고 마는 게 보통이었다. 물론 조금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옮겨진 부분도 있지만. 


정치 현실과 저출생의 문제는 유기적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누구라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홍수를 다스려 하나라를 연 우임금처럼 되지 않을까. 그만큼 이 문제는 심각하다. 저변에는 숱한 요인들이 먹이사슬처럼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하나만 해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인 것에 대하여 위정자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두 자녀를 다자녀로 보고 몇 가지 방안을 발표한 것 같다. 


자녀 하나를 만 18세까지 기르고 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3억이라고 하던 때가 옛날이다. 지금은 더 들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에 입학한 만 18세 이후에는 더 들어간다. 거기다 결혼 자금 조력까지 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다. 지레 겁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혼도 쉽지 않고 아이를 낳는 건 더 쉽지 않다. 집 마련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들딸을 출가시킨 부모는 부모대로 아들딸은 그들대로 산 넘어 산이 기다리는 격이니, 어디 쉬운가. 


하나하나 문제를 거론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이러할진대, 그 문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야 머리 아플 일이다. 위에서 거론했지만 여러 가지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한 가지만 개선되어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유난히 높은 우리의 교육열과 교육비, 높은 취업의 문턱,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연봉 차이,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결혼 준비금.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이런저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우리의 의식까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은 진정 없는 것일까. 정부가 두 자녀도 다자녀로 보고, 몇 가지 정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것도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은 노력이다. 


뉴스를 보고 딸에게 전화했다. 이제 다자녀니까 무슨 혜택이 있나 살펴보라고. 딸이 웃는다. 그거 다 별것 아니란다. 이미 알고 있다며.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아니라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딸이 말했다. 다 필요 없고, 아기가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고, 온이들과 있다 보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고. 힘들어도 자라는 모습 보며 잊는다고. 우리 딸이 단순한 건가. 그 말에 맞장구치고 있는 내가 어리석은 건가. 


불과 사십 년 전만 해도 남의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신혼을 시작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냉장고는 물론 텔레비전도 없이 시작했고, 거기서 아이들을 낳아 길렀다. 하나씩 살림이 늘면서 뿌듯함을 느꼈고 심지어 접시 세트만 사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핀잔 들을 일이다. 그때도 정책적으로 아이를 둘 만 낳으라고 성화하는 바람에 둘만 낳았지, 안 그랬으면 더 낳았을지 모를 일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삶에 충실했던 날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지금은 대부분 다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이제 두 자녀도 다자녀다.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정책과 그것의 실행이 요구된다. 조금씩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옮겨가기를 바란다. 우리의 의식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의 삶과 비교하는 순간 내 삶은 비루해지므로. 


더불어 잘 사는 사회, 누구나 꿈꾸는 그런 성숙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날은 요원한 걸까. 그 복잡한 원인은 무엇일까. 딸처럼 아기가 예쁘고, 그 기르는 재미가 무엇과 비교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행복하다면, 복잡한 일도 아닌데 말이다.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며 실소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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