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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Sep 08. 2023

우리 다시 만나는 날

기대 

     

그녀를 보았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 팔 종아리가 건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얼마나 반가운지 와락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찾아오다니, 꿈만 같았다. 포옹하면서 벌떡거리는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서로의 등을 다독거리며 한참 그렇게 있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 집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먼 나라에서 왔으니까. 시차 적응에 약간 힘들어하는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꿈만 같았다. 


그녀는 그곳에 있는 문학단체의 회장이었다. 4년 전, 당시 회장이던 그녀는 나를 문학 강연에 초청했다. 일주일 간 거기서 지내는 동안 살뜰히 살펴주었고, 며칠간 여행까지 함께 한 작가다. 그 여행 일정과 경비까지 모두 그 문학단체에서 담당해 주었는데, 그 중심에 회장인 그녀가 있었다. 얼마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지, 지금도 아니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곳에 갔을 때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가 벌써 호텔 로비에 와서 기다렸다. 나의 아침 식사 때문이었다. 안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또 내가 사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그녀는 수행비서처럼 깍듯이 그렇게.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맥도널드에 갔고, 거기서 듬뿍듬뿍 따라주는 커피와 햄버거를 먹었다. 시내와 시장 구경을 했으며, 점심을 먹으러 맛있는 식당으로 운전해 데리고 갔다. 잠시도 차가 없이는 움직이기 힘든 곳이 그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녀는 내 일정의 모든 움직임에 함께 했고 운전을 맡아주었다. 하루가 저물면 나를 다시 호텔에 데려다주었다. 


강연이 끝난 후, 하루에 열 시간씩 운전하며 여행한 것을 잊을 수 없다. 몇 명의 작가와 그녀까지. 물론 운전과 일정은 그녀가 맡았다. 식사할 곳과 숙소 그리고 여행지까지 꼼꼼하게, 그렇게 엽엽할 수 없었다. 숙박했던 콘도에서 먹은 아침식사, 진수성찬이었다. 바비큐로 구운 갈비와 갖가지 나물, 과일. 모두 그녀의 솜씨였다. 라일락 닮은 나무 아래 차려진 야외 식탁, 산들 불던 바람, 푸짐한 아침, 한가로운 풍경들. 


태평양을 끼고 달리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던가. 이민자들의 애환을 들으며 또 얼마나 공감했던가. 울먹이기도 했고, 눈물이 흐르기도 했으며, 숱한 역경을 헤치고 오늘에 이른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다. 고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든지 이민자가 되는 순간 접시닦이와 같은 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것을 이겨내고 단단히 자리 잡은 사람들. 어머니 품과 같은 고국을 떠나 타국에 이민해 사는 것, 그것은 모험 같았다.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때 말했다. 우리나라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우리 집에서 묵어도 되고, 안 되면 만나기라도 하자고. 그만큼 우리는 밀착된 관계가 되었다. 일주일 만에. 그녀도 꼭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삶에 감동했고 나는 그녀의 삶에 감동했다. 그 감동으로 우리가 그렇게 금방 가까워진 듯했다.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서로를 대하느냐에 달렸다는 걸. 


그곳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마중 나왔던 그녀는 돌아갈 때도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배웅했다.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내 옆에서 일일이 살펴주었다. 그녀, 김 작가. 그때 받았던 호의와 배려를 잊을 수 없다. 그 후에도 우리는 가끔 메시지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고,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워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려던 그녀의 계획은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러는 새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그녀가 오다니 꿈만 같지 않겠는가. 지난봄에 그녀가 인편에 보낸 선물과 편지를, 엊그제 다시 꺼내 보았다. 올해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 부각되었다. 마음이 설렜다. 쓰기 아까워 간직만 하고 있던 선물을 이제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낌없이 베풀어준 그녀, 김 작가. 사람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도움과 호의를 받으며 산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기회가 되면 나누는 게 마땅하리라. 김 작가와 함께 지낼 날이 기대되어 잠든 그녀를 한참 쳐다보았다. 꿈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가 불쑥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오다니. 


나도 그녀 곁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깼다. 옆을 보았다. 그녀가 없다. 아, 꿈이었다. 허탈한 느낌도 들었지만 흐뭇했다. 보고 싶은 그녀가 나를 찾아왔으니. 그것도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평온한 모습으로 내 침대에서 잠이 들었으며 나도 옆에서 잤으니까. 잠에서 깨어나 한참 멍하니 있었다. 함께 했던 지난날을 추억했다. 그날이 더욱 소중해졌다. 


편지에 쓴 대로 그녀가 올해가 가기 전에 올까.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것일 텐데, 나를 만날 시간이 있으려나. 그래도 꼭 만나자고 졸라야지. 아니야, 그래도 나를 만날 시간은 비워둘 거야. 그녀도 나를 보고 싶어 하니까. 잠 깬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와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읽었다.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꿈에서라도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오늘 아침 나는 행복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내 마음도 맑음이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이 글도 함께.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뜨겁게 포옹하리라. 그리워한 시간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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