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글쓰기를 위하여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을지라도

by 최명숙


누구라도 참신한 글을 쓰고 싶으리라. 다른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은 참신하고 재밌는 글을. 그게 쉽다면 무슨 걱정이랴. 그렇지 못해 이리 고민 저리 고심한다. 써놓고 보니 누군가가 이미 쓴 것 같고 어디서 본 듯한 글이라면 얼마나 힘 빠지는 일일까. 흔히 말하길, 해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학의 영원한 테마가 사랑과 이별이라고 할 때, 별의별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이미 남들이 하도 써서 쓰지 않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그러니 참신한 글이 어디 쉬운가.


참신한 글쓰기,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고심했던 부분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볼 때, 놀라곤 했다. 아니, 허탈하곤 했다.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을 이미 누군가가 썼을 때다. 나보다 훨씬 전의 선배작가가 그것도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문장과 형식으로. 열등감을 넘어 허탈했다.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슬며시 사그라지기도 했다. 불씨처럼 남은 마음이 계속 잡고 늘어졌기 망정인지, 아니었으면 포기했을 거다.


어떻게 하면 참신한 글을 쓸 수 있을까. 흔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글감으로 작문한다면,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물론 그 두 단어만큼 어머니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어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냥 사무치는 게 우리의 정서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니까.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고정관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도 어머니를 소재로 참신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이니까.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해도 쓸 수 없었다. 진부한 이야기를 쓰고 말 것 같은 날, 나의 비루한 문장력을, 예민하지 않은 감각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숨만 쉬고 말았다.


고민하다가 ‘발상의 전환’을 하기로 했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쓰리라. 나도 어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른 모습이 무엇이 있을까. 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 하나 색다른 것을 하나 발견했다. 한마디로 나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어미라는 사실이다. 그 이야기를 썼다. 약간 망설임이 있었다. 너무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하는.


선뜻, 쓰기 저어 되기도 했다. 내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써야 한다. 물론 쓰기 싫은 거라면 안 써도 된다. 쓰고 안 쓰는 것은 글 쓰는 이의 몫이다. 가끔 묻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하게 쓰는 게 수필인데, 안 쓰고 싶은 부분은 어떻게 하느냐고. 당연히 쓰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쓰기 싫은 것을 쓸 필요는 없다. 단, 꾸며서 허구로 쓰는 것은 금물. 수필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발설하긴 싫지만 쓸 만한 글감이면 소설로 쓰면 된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만 표현할까. 쓸쓸하다고만 할까. 수확의 계절이라고 쓸까. 이미 남들이 다 써버린 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쓴다면 그 글은 참신할 수 없다. 글을 쓰면서 궁지에 빠질 때가 그런 때이다. 이미 다 써버린 닳고 닳은 글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한다고 해도 그게 쉽지 않다. 쉽지 않으면 나는 쓰지 않기로 했다. 쓸 수 없는 것을 써야 꼭 작가라는 생각, 버려도 된다.


자기가 경험한 것이 가장 참신한 소재일 수 있다. 그건 사람의 삶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처럼 참신한 게 있을까. 문제는 그 참신한 나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어려워한다는 데 있다.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정도 차이가 있을지라도. 남과 다르게 보이는 본인의 삶이 비루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를 꺼린다. 참신한 글을 쓰려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게 가장 쉽다는 것을 잊지 말자.


참신한 글쓰기, 평생 고심할 것 같다. 그래야 한다. 해도 또 해도 안 되더라도 해봐야 한다. 그러다 온 세상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참신하고 좋은 글이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아니나, 많이 써야 그 가운데 읽을 만한 글이 하나 나오는 것 아닌가. 칠 때마다 안타나 홈런이 나오는 것 아니잖은가. 글도 그렇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리라. 참신한 글쓰기를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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