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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Sep 27. 2023

참신한 글쓰기를 위하여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을지라도


누구라도 참신한 글을 쓰고 싶으리라. 다른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은 참신하고 재밌는 글을. 그게 쉽다면 무슨 걱정이랴. 그렇지 못해 이리 고민 저리 고심한다. 써놓고 보니 누군가가 이미 쓴 것 같고 어디서 본 듯한 글이라면 얼마나 힘 빠지는 일일까. 흔히 말하길, 해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학의 영원한 테마가 사랑과 이별이라고 할 때, 별의별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이미 남들이 하도 써서 쓰지 않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그러니 참신한 글이 어디 쉬운가. 


참신한 글쓰기,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고심했던 부분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볼 때, 놀라곤 했다. 아니, 허탈하곤 했다.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을 이미 누군가가 썼을 때다. 나보다 훨씬 전의 선배작가가 그것도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문장과 형식으로. 열등감을 넘어 허탈했다.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슬며시 사그라지기도 했다. 불씨처럼 남은 마음이 계속 잡고 늘어졌기 망정인지, 아니었으면 포기했을 거다. 


어떻게 하면 참신한 글을 쓸 수 있을까. 흔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글감으로 작문한다면,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물론 그 두 단어만큼 어머니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어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냥 사무치는 게 우리의 정서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니까.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고정관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도 어머니를 소재로 참신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이니까.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해도 쓸 수 없었다. 진부한 이야기를 쓰고 말 것 같은 날, 나의 비루한 문장력을, 예민하지 않은 감각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숨만 쉬고 말았다. 


고민하다가 ‘발상의 전환’을 하기로 했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쓰리라. 나도 어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른 모습이 무엇이 있을까. 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 하나 색다른 것을 하나 발견했다. 한마디로 나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어미라는 사실이다. 그 이야기를 썼다. 약간 망설임이 있었다. 너무 드러내는 것 아닌가 하는.  


선뜻, 쓰기 저어 되기도 했다. 내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솔직하게 써야 한다. 물론 쓰기 싫은 거라면 안 써도 된다. 쓰고 안 쓰는 것은 글 쓰는 이의 몫이다. 가끔 묻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하게 쓰는 게 수필인데, 안 쓰고 싶은 부분은 어떻게 하느냐고. 당연히 쓰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쓰기 싫은 것을 쓸 필요는 없다. 단, 꾸며서 허구로 쓰는 것은 금물. 수필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발설하긴 싫지만 쓸 만한 글감이면 소설로 쓰면 된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만 표현할까. 쓸쓸하다고만 할까. 수확의 계절이라고 쓸까. 이미 남들이 다 써버린 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쓴다면 그 글은 참신할 수 없다. 글을 쓰면서 궁지에 빠질 때가 그런 때이다. 이미 다 써버린 닳고 닳은 글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한다고 해도 그게 쉽지 않다. 쉽지 않으면 나는 쓰지 않기로 했다. 쓸 수 없는 것을 써야 꼭 작가라는 생각, 버려도 된다. 


자기가 경험한 것이 가장 참신한 소재일 수 있다. 그건 사람의 삶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처럼 참신한 게 있을까. 문제는 그 참신한 나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어려워한다는 데 있다.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정도 차이가 있을지라도. 남과 다르게 보이는 본인의 삶이 비루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를 꺼린다. 참신한 글을 쓰려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게 가장 쉽다는 것을 잊지 말자. 


참신한 글쓰기, 평생 고심할 것 같다. 그래야 한다. 해도 또 해도 안 되더라도 해봐야 한다. 그러다 온 세상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참신하고 좋은 글이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아니나, 많이 써야 그 가운데 읽을 만한 글이 하나 나오는 것 아닌가. 칠 때마다 안타나 홈런이 나오는 것 아니잖은가. 글도 그렇다고 본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리라. 참신한 글쓰기를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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