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Nov 15. 2023

그대들이 웃는다면야


펌을 했다, 뽀글이로. 뽀글 머리로 해달라고 주문한 건 나였다. 예전에 어머니께 물은 적 있다. 왜 꼭 뽀글뽀글하게 하느냐고. 어머니는 그냥 미소만 지으셨다. 이제 알 것 같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정수리가 자꾸 비어져서다. 숱이 자꾸 빠진다. 그것도 정수리만. 흰머리까지 금세 길어져 나와 휑한 것이 영 보기 싫다. 그렇다고 가발을 쓰기도 번거롭고. 뽀글 머리로 펌을 하면 그나마 좀 나아 보일 것 같았다. 


짧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뽀글 머리는 짧을 수밖에 없단다. 미용실 원장이 괜찮겠느냐고 두어 번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본래 외모에 관심이 적은 나다. 특히 머리는 그렇다. 얼마 후면 길어져 나올 텐데,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더구나 이번엔 비어지는 정수리가 문제 아닌가. 염색 후 일주일이면 하얗게 나와 빈 정수리가 더욱 빈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 


펌을 하고 나니 외모에 관심을 두지 않던 나도 좀 거슬렸다. 뽀글뽀글. 이거야 원!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이니 뭐랄 수도 없는 일이다. 금세 길고 또 풀리겠지 스스로 위무했다. 이런 머리는 생전 처음이다. 단발머리만 하고 펌을 하지 않다가 머리숱이 적어지면서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열 번이 채 될까 말까다. 그만큼 펌을 자주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파격적이다. 뽀글이 머리는. 어쩌랴! 벌어진 일이니. 


저녁에 아들이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왜, 웃기니?” 

“네, 귀여워요, 뽀글 머리. 파격적인데요. 이런 머리 처음이시죠?”

“웅. 귀여워? 그럼 됐다.”

내 말에 아들은 다시 또 웃어댔다.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다시 날 쳐다보고 또 키득거렸다. 아무래도 어색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었다. 씻고 나와서 또 웃었다. 아니, 도대체 왜 자꾸 웃는 거냐고, 그렇게 이상하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귀엽단다. 귀여우면 귀여운 거지 그렇게 웃을 것까지야 뭐 있느냐고 눈을 하얗게 흘겼다. 처음 한 머리모양이라서 그러는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사람은 변화가 있어야 지, 늘 같을 필요 있느냐고 스스로 경쾌한 척했지만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아뿔싸! 이럴 수가! 머리카락이 온통 다 일어서서 사자머리, 아니 사자대가리 저리 가라다. 하루 동안 머리를 감지 말라고 원장이 당부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머리를 감았다. 이젠 온통 뽀글뽀글. 머리 손질을 잘하지 못하는 나다. 아들이 보더니 또 웃기 시작했다. 눈을 또 하얗게 흘기면서도 나 역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대가 웃는다면야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냐.’ 속으로 웅얼댔다. 


줌으로 하는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강생들이 모두 들어왔다. 비디오를 켜지 않다가 수업 시간이 되어 비디오를 켰다. 화면 속 사람들이 모두 키득키득 웃어댔다. 어떤 수강생은 아예 입을 막고 웃었다.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내 머리 모양이 그렇게 우스운가. 순간, 의아심이 생겼다. 아마 새로운 모습이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게 영 안 어울려서 그럴지도 모른다. 덕분에 수업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그대들이 웃는다면야’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펌을 한 지 꼭 일주일이다. 가는 곳마다 인사를 받았다. 펌 하셨네요, 아주 짧게 하셨군요, 귀여우십니다, 뽀글이 펌인데요.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이 뽀글 머리 덕분에 어딜 가든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펌은 내가 했는데, 보는 사람들이 즐거운가 보다. 대부분 미소부터 띄고 본다. 그래, 그대들이 웃는다면야 그것도 좋은 일이지. 더구나 웃을 일 없이 포슬포슬한 삶의 현장에서. 생각하다가 나도 웃는다.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내 머리를 보고 웃는다. 처음엔 파안대소하더니 며칠 지나니까 실실 웃는다. 싱겁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하얗게 흘기니 이러다 내 눈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웃는 걸 보고 가만히 있기가 좀 그렇다. 뭐라도 대거리를 해줘야겠는데, 딱히 할 것도 없다. 내가 봐도 우습긴 하니까. 하지 않던 머리 모양이라 그렇겠지만. 


웃을 일 없는 요즘, 내 뽀글 머리 때문에 아들이 웃고, 제자들이 웃고, 만나는 이들마다 웃고, 나도 웃는다. 다행스러운 건 뽀글뽀글한 머리 때문에 빈 정수리가 덜 빈 듯하다. 또 흰머리도 덜 보인다. 이제 이 뽀글 머리가 나의 머리모양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일도 못하는데, 내 머리를 보고 그대들이 웃는다면야 어떠랴. 우스꽝스러워도 좋고, 안 어울려도 좋다.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웃음 한 바가지 선사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배트맨! 외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