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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02. 2023

배트맨! 외치며

          

“스트레칭하시는 건가요?”

물리치료를 마쳤을 때 물리치료사가 물었다.

“네, 그럼요.”

대답이 술술 나왔다. 기지개를 켜고, 깍지 낀 손을 머리 위까지 올리기도 했으니까. 그걸 스트레칭이라고 생각했다.

“해보세요, 어떤 걸 하셨나요?”

물리치료사는 실제로 한 것인지, 제대로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나 보다.

“이렇게요.”

내가 시범을 보였다.

물리치료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무슨 손 스트레칭이냐고, 전혀 안 해본 것 같다면서.  


물리치료사가 시범을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전혀 해본 적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생경한 동작이었다. 따라 해 보란다. 해봤다. 안 된다. 치료사는 유연하게 하는데 나는 안 된다. 손바닥을 뒤집어서 벽에 대고 손목이 위로 향하게 한 다음, 팔꿈치를 직선으로 뻗는 동작이다. 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손 근육을 늘려주는 스트레칭이란다. 어찌나 아픈지 못하겠다고 했다. 치료사는 이 동작을 유연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하란다. 동작을 한 후 1분 정도 멈추고 다시 또 위로 올리고 내리라고.


그 외에도 두 가지 방법을 더 알려줬다. 아프긴 오지게 아프지만 손목 아픈 것과 거의 비등해서 할만했다. 손바닥을 벽에 대고 손목과 팔꿈치를 굽히지 않는 동작도 있는데, 그건 쉬웠다. 배트맨 동작도 있다. 그것은 쉽지 않았다. 이와 같은 손 스트레칭 방법이 있다는 걸 전혀 생각지 못했다. 처음부터 알려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알려준 게 고마워 아무 말하지 않았다. 물리치료사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후 시도 때도 없이 손 스트레칭을 했다. 벽만 있으면 어디서나 가능하니까. 나중에는 벽이 없어도 되었다. 공중에 대고 그 동작을 했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올리고 팔꿈치를 굽히지 않으면 되니까. 또 오래 버티기를 하면. 버티는 시간은 적어도 1분이다. 1분이 그렇게 길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멈추고 버티는 게 쉽지 않다. 겨드랑이부터 팔 전체에 통증이 가해진다. 거기다 손목은 또 얼마나 아픈지. 그래도 해야 한다. 빨리 좋아진다고 하니까.


하루 이틀 꾸준히 손 스트레칭을 했다. 신기했다. 이틀이 지나자 조금 나아졌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끔 책꽂이 기둥에 손바닥을 뒤집어 대고 스트레칭을 한다. 말할 수 없이 아프다. 생각하면 엊그제보다 통증이 덜하고 손목이 더 높이 올라간다. 신기한 일이다. 손목을 주무르는 것보다 스트레칭이 효과적이었다. 몸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스트레칭하는 거야 그렇다 해도, 손까지 스트레칭한다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어릴 적 가위바위보 놀이를 할 때 두 손을 엇갈리게 잡고 비틀던 동작, 그것도 알고 보니 손 스트레칭의 하나였다. 세상에나.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이리도 지혜로웠을까. 그 동작을 한 후 손바닥 속을 보았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그 동작을 하는 이유가 지금까지 수수께끼였다. 이제야 풀었다. 그건 손 스트레칭이었다는 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지 그 이유에서. 재밌지 않은가. 알고 보니 모든 게 이유가 있다는 게.


잠시 쉬면서 또 손 스트레칭을 했다. 배트맨 동작도 했다. 아직도 배트맨 동작은 잘 안 된다. 되는 데까지만 했다. 이제 하다 하다 별의별 짓을 다 한다. 어릴 적에도 해본 적 없는 배트맨까지 되어보다니. 예전에 아들딸이 그 동작을 하며 배트맨!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목소리까지. 그걸 이 나이에 내가 하다니, 세상 참 요지경 속이다.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가 되어 어린애다운 짓을 해보지 못한 내가 아니던가. 그것 보면 모든 것에 총량이 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손 스트레칭을 한다. 어디서 때늦은 배트맨!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최 아무개가 틀림없을 거다. 언제 적 배트맨인가 싶다가도 이상하게 그 동작을 하면 배트맨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동심을 잃지 않아서일까. 철이 덜나서일까. 아, 모르겠다. 손목만 아프지 않다면 그보다 더한 거라도 할 것 같다.


혹시 손 스트레칭을 해본 적 없다면,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위의 세 가지 동작을 해보시길. 마지막에 배트맨 동작하면서 꼭 배트맨! 하고 외쳐보시길. 그러면서 가을 햇살처럼 해맑게 웃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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