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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09. 2023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용기’다.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거다. 단언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비교적 용기가 있었다.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앞이 캄캄해 막막할 때, 꿈을 이루지 못해 답답하고 조급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힘든 말을 해야 할 때 등에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 ‘굳세고 씩씩한 기운’이라는 사전적 의미, 생각만 해도 힘이 난다. 


열일곱 살짜리 내가 객지로 나갈 때,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용기였다. 할머니와 어머니 울타리 속에서 안온하게만 살 수 없는 현실이 두렵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미 객지로 나가 생활하던 몇몇 친구들이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집에서 나갈 때 할머니와 어머니를 바로 볼 수 없었다. 애써 씩씩한 척 대문을 벗어나며 입을 앙다물었다. 문 밖에 나서자 벌써 찬바람이 내 몸속으로 엄습해 왔다. 


그 이후 숱한 어려움이 닥쳤고, 절망했으며, 휘청거렸다. 그래도 노력했다. 절망하다가도 힘을 냈고, 휘청거리다가도 똑바로 걸으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의 바탕엔 용기가 있었다. 그때 그 용기로 오늘까지 살아왔다. 내 삶의 원동력. 그 후로 그 용기가 필요할 적 얼마나 많았던가.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각자 다른 상황이 빚어내는 삶의 무게를 견디려면 꼭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전폭적으로 나를 인정해 주던 삼촌이 돌아가셨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읜 우리 형제들에게 또 다른 아버지가 되어주었던 삼촌. 그 삼촌이 돌아가시자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내게 말했다. 이제 학교를 그만두라고. 이런 형편에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라고. 그때 난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내가 소리쳤다. 나에게 왜 간섭하느냐고. 우리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얼마나 단호하게 소리쳤던지, 그 어른은 얼굴이 벌게져서 돌아갔다. 


그 후 온 동네에 소문이 났다. 당돌한 아이라고. 어머니는 말이 없었고,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쓸어주셨다. 삼촌이 돌아가시자 나는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할머니가 밥을 지으면, 식구들 중 가장 먼저 퍼주었다. 그건 가장 예우였다. 어머니도 할머니 진지를 푼 다음엔 내 것을 퍼주었다. 남동생이 있었는데도. 그 모든 상황을 나는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다.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때 집안어른에게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늘 삼가는 자세로 살았다. 객지생활 할 때, 많이 울었고 힘들었는데, 막상 집에 갈 때는 굳세고 씩씩한 기운을 안고 갔다. 내가 연약해지면 식구들이 어떻게 될까 걱정했다. 겨우 열일곱 살인데도. 그런 마음과 태도가 용기인지는 모르겠다. 그 용기는 나를 지키고 성장시켰으며, 당면한 문제에 부딪쳐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했던 것 같다. 


인생에서 다 좋기만 한 것이 어디 있으며, 다 나쁘기만 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게 더하기 빼기라고 생각한다. 흔히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희망을 갖는 것도 용기다. 삶의 구메구메 필요치 않은 곳이 없다. 그것만 갖고 나아간다면 못할 게 없을 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저어 되는 부분들이 많은 것 또한 인생이니까. 


긴 세월이 흐르고 다시 나를 만난 집안어른은 내게 용감하다고 말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더냐고 옛날을 회상하며 껄껄 웃었다. 나도 술 한 잔 따라드리며 웃었다. 그 후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 어른에게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하고 싶은 말을 했던 용기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따지고 보면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는 게 헛말이 아니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용기는 필요하다. 용기를 내기 전에 오는 건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 필요한 것도 용기다. 굳세고 씩씩한 기운을 가지고 사는 건, 삶을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사는 자세다. 요즘 같이 살기 힘든 세상에 더더욱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삶의 원동력이 되므로. 


이 글을 마칠 즈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옛날이 회고되어서다. 자기 연민, 그렇다. 그래도 괜찮다. 이런 모습도 나니까. 자기 연민에 빠질 정도로 연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것도 용기다. 굳세고 씩씩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흔할까. 나는 용기도 연약함도 가진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인정. 그런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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