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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10. 2023

어느 결혼식장에서

    

지인 아들의 결혼식. 북적이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객들 틈에 서서 결혼식을 보고, 혼자 연회장으로 와서 밥을 먹었다. 지인이 밥을 꼭 먹고 가라며 손잡고 당부했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지인은 아마도 혼자 먹을 걸 염려해서 하는 말이었을 터다. 괜찮다. 혼자 먹는 밥. 간혹 결혼식장에서 혼자 먹는 사람과 마주 앉게 되는 경우 있다. 그것도 괜찮다. 약간 머쓱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 먼저 말을 건다. 함께 식사하게 되었네요. 맛있게 드세요,라고. 난 약간 친화력이 있는 편이다. 상대방은 씩 웃거나 역시 맛있게 드세요 하는 게 보통이다.


이날은 혼자 먹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많은 하객들 틈에서 그것도 키 큰 젊은이들 틈에 까치발을 하거나 이리저리 휩쓸리며 결혼식을 보는 게 불편했다. 신랑이 입장하는 것까지 보고 연회장으로 향했던 터다. 대형스크린이 설치된 곳에서 결혼식 장면을 화면으로 보며 식사를 했다. 내겐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결혼식에 갔으면 꼭 끝날 때까지 보고 식사를 했는데, 이 날은 많은 하객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답답했다. 더구나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시기에.


연회장은 비교적 조용했다. 음식은 맛있었다.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결혼식을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유는 모르겠다. 결혼식에만 가면 눈물이 난다. 내 경험과 겹쳐서 그런 걸까.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장면에선 급기야 참을 수 없이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화면에서 딸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아버지의 표정은 묵중해 보인다. 결의에 찬 모습 같기도 하다. 결혼식장에서 웃는 신부의 아버지를 본 적 거의 없다.


내가 결혼하던 날이었다. 결혼식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도 울어서 여동생이 다가와 귀에다 대고 말했다. 그만 울라고. 사람들이 수군댄다고. 무슨 이유로 수군댔는지 알 수 없다. 억지로 혼인하는 거라고 수군댔을지, 아버지를 일찍 여읜 신부라 우는가 보라고 했는지. 하도 울어서 화장이 지워졌다. 내가 우는 걸 보고 친정 식구들 모두 울어서 급기야 결혼식장의 한쪽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런 중에도 울지 않는 사람은 할머니와 어머니였다.


부모님 자리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앉았다. 나를 데리고 입장한 사람은 작은할머니가 낳은 작은아버지였다. 나를 데리고 입장만 하고 아버지 자리에는 할머니가 앉으셨다. 누구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할머니와 어머니의 표정에 결기를 느낀다. 내가 이만큼 키웠다,라는 것인지, 이 아이의 뒤에는 우리가 있다는 것인지. 남편도 그 사진을 보고 그랬다. 어딘지 엄숙하고 결의에 차 있는 모습 같다고.


나와 식구들, 하객들까지 울어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아들이, 남편이 생각나지 않은 건 아닐 터다. 두 분마저 운다면 결혼식장이 초상집 같을까 봐 그랬을까. 물어보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울면 내 결혼생활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봐 경계하느라 그랬을 것 같다고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속으론 울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 울음을 참느라 저리도 결의에 찬 표정이 연출된 것 아닐까.


결혼식에 참석하면 늘 그 두 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참고 참으려 해도 멈춰지지 않던 눈물도. 다 지워져 버린 화장도. 그래서 눈물이 날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리라. 누구의 결혼식이든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가지고 결혼식에 참석한다. 결혼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으면 가슴이 벅차면서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하게 된다. 부득이한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꼭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이날도 그래서 혼자 참석한 거였다.


신부는 환하게 웃었다. 묵직한 아버지의 표정과 대조적이다. 꿈을 안고 시작하는 신부, 결혼생활의 진면목을 아는 아버지. 기쁜 일인데 걱정도 동반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그런 표정들이 연출되는 게 아닐까. 할머니와 어머니의 표정 역시 그런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것이리라. 수저를 놓고 잠시 기도했다. 저 신혼부부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부디 행복하기를.


눈을 떴을 때 축가가 시작되었다. 신랑은 노래에 맞춰 몸을 약간씩 흔들었다. 신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들었다. 요즘 결혼 풍속도는 예전과 다르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약간 산만한 부분도 있지만 자유롭고 신선하다. 내 결혼식 때 축가는 급조되었다. 어찌 알고 왔는지 스무 명 남짓한 친구들이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축가 부를 친구들을 구성하여 <즐거운 나의 집>을 불렀다. 테이프에 녹음된 걸 재생시키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축가 부르는 친구들의 음성이 고스란히 실려 나온다. 순수하다.


천천히 음식을 먹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 밖으로 나왔다. 어두웠다. 내비를 작동시켰다. 어두워서 방향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결혼한 두 부부에게 양쪽 부모와 주위 어른들이 내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시 속으로 기도했다. 이날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신혼부부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함께 하기를.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가로등과 지나는 자동차 불빛으로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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