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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09. 2024

나의 루틴 두 가지

습관

    

요즘 언중에서 자주 사용되는 외국어 가운데 ‘루틴’이 있다. 우리말로 볼 때, 흔히 습관이라고 해석하지만 그 습관과 엄밀히 말하면 다른 부분이 있다. 습관은 오랫동안 해와 몸에 굳어진 개인의 행동이라고 본다면, 루틴은 그 의미에다, 판에 박힌, 정해 놓은, 꼭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강박감이 있는 등의 의미가 더해진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습관이 강박감이나 불편함까지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해온 행위나 말을 오랫동안 하거나 사용해 그대로 굳어져 자연스럽게 표출된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루틴은 벽(癖)이다. 


나에겐 습관이 있고 루틴이 있으며 습관과 루틴이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하루 세끼 밥을 먹은 게 습관이긴 하지만 루틴은 아니다. 하루에 두 끼를 먹거나 한 끼만 먹어도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육십 년 이상 해온 오래된 것인데. 지인 중에 한 사람은 하루에 세끼 밥을 꼭 챙겨 먹는단다. 한 끼라도 덜 먹으면 평생 찾아먹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고 만다는 거다.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으나,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강박감이나 마음의 불편함을 든다면 그건 루틴이다. 이렇듯 어느 한 행동이나 말이 누구에게는 습관이고 누구에게는 루틴일 수 있다. 


나는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경계한다. 글 쓰는 사람은 우리말과 글을 잘 사용하고 보존하며, 잊혀가는 적확하고 좋은 어휘를 살리는데 기여하는 게 의무라고 본다.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 내지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게 우리의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우리말은 창제자가 알려진 세계 유일무이한 문자다. 무엇보다 이 문자로 표현 못할 게 거의 없다. 이렇듯 훌륭한 한글, 우리글을 잘 사용하고 보존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가 되고 또 사람의 행위와 감정이 세밀해지면서 우리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고 복잡한 경우가 있다. 복잡하다고 말한 건 표현할 수 있으나 긴 문장이나 설명이 곁들여져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쿨하다’라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루틴’도 마찬가지다. 길게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여 쓸 수 있으나, 매번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 길게 쓰기 어렵다. 


아무튼, 꼭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강박감을 느끼는 게 루틴이라고 본다면, 내겐 두 가지 루틴이 있다. 하나는 ‘글쓰기’ 요, 또 하나는 산책을 포함한 ‘걷기 운동’이다. 스트레칭도. 하루에 이 두 가지를 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불편하고, 가슴이 두근대며, 강박감을 느껴, 잠이 오지 않는다. 일어나 짧더라도 글을 써야 하고, 채워야 하는 운동 시간을 위해 어두운 길을 걷는다. 이 정도면 루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는 새벽이나 오전 또는 밤에 주로 한다. 푸르스름하고 어둑한 새벽빛을 받으며 글 쓰는 시간은 진정한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때론 황홀하고 때론 음울하며 때론 평안하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또 오전 강의가 없을 땐 오전에 쓰고, 오전에 일이 있을 땐 오후에 쓰며, 오후에 일이 있으면 밤에 쓴다. 손목이 다 낫지 않아 조심조심 자판을 두드린다. 그 시간도 나름대로 괜찮다. 


손목이 아파 도저히 자판을 칠 수 없을 때 두어 달 가까이 매일 글을 쓰지 못했다. 견디다 못 견디면 아픈 손목을 몇 번이나 주무르며 며칠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요즘 매일 한 편씩 쓰고 있는데, 웬만큼 나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써야 마음이 편하고 다른 일을 할 때 능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러니 루틴이 아닌가. 진즉 이런 글쓰기 루틴이 생겼다면 나는 지금과 달라졌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이 정도면 벽(癖)이지 않은가. 


운동 루틴의 시작은 정확히 2020년 1월 1일부터다. 날짜까지 기억한다. 이제 꼭 4년 되었는데, 언젠가부터 루틴이 되었다. 하루에 적어도 칠천 보 이상 만보 사이 걷는다. 등산할 때 있고 대체로 명상의 길을 걷는다. 또는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까지 걸어갔다가 도서관에 들르기도 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도 한다.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사실, 예전부터 등산에 취미가 있었다. 서른 살 되기 전이다. 시간만 나면 산에 오르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무릎 보호를 위해 걷기를 선택했다. 등산은 가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숙제 못한 학생처럼 불편해 견딜 수 없다.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나의 운동은 실행된다. 루틴이 되기 전엔, 비 오고 눈 오면 이 핑계로 운동 안 하면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곤 했는데, 이젠 그러거나 저러거나 운동하러 나간다. 일정이 빠듯해 도저히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잠자리에 든 적 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자정이 다된 시간인데 일어나 걸었다. 아파트 정원을 빙빙 돌며, 이거 참 벽(癖)이구나 싶었다. 


그 두 가지 루틴 덕분에 18개월이 안 돼 사백 오십여 편의 길고 짧은 글을 썼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살면서 또 다른 루틴에 내게 생겨날지 모른다. 그래도 이 두 가지 루틴은 오래오래 지속될 거라고 믿는다. 모두 내가 즐겨하는 것이므로. 루틴은 즐겨야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벽(癖)이라도 선한 벽이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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