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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26. 2024

암기력과 건망증, 자리바꿈 하다

암기력

     

나의 특기를 말하라면 암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건망증이 특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암기력과 건망증이 자리바꿈 한 걸까. 아무튼 난 암기력이 뛰어난 축에 속했다. 학창 시절 이전부터도. 어머니가 그러셨다. 어릴 적부터 어찌나 한번 알려주면 잘 암기하던지, 아버지는 그걸 보고 내가 영특한 아인 줄 아셨단다. 내 암기력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1학년 국어책 한 권 다 외운 걸 시작으로 빛을 발했다. 그 이야기는 어느 글에 쓴 적 있다. 글자를 한 자도 모르면서 줄줄 끝까지 다 외워버린 책. 옆집 아저씨가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물었을 때, 도리질했던 이야기 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외울 게 많았다. 역사나 생물 거기다 국어책에 실린 시. 나는 무엇보다 시를 잘 외웠다. 우리 국어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시를 암기해서 읊도록 했는데, 언제나 내가 일등으로 외웠다. 그때 암기했던 시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을 때 요긴하게 써먹었다. 김소월, 한용운, 청록파, 신석정의 시를 암기하고, 세계의 명시도 제법 여러 편 암기했다. 미라보 다리, 초원의 빛 등 말이다. 청소년기에 그렇게 외운 시가 가르치는 데뿐 아니라, 창작하는 데에도 자양분처럼 쓰였다. 객지생활 할 때도 외로움 달래는 수단으로 시를 외웠다. 


성인이 되었을 때, 교회에서 성경암송대회에 참여한 적 있다. 산상수훈을 외웠다. 초신자 때여서 그게 그렇게 유명한 말씀인지 몰랐다. 성경 읽다가 하도 마음에 닿아 그냥 암기했을 뿐이다. 그걸로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어른들은 참가하지 않고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암송한 것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참여했다가 상까지 받았다. 그만큼 암기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기도 했다. 


유아교육 기관을 운영할 때, 칠팔십 명 되는 원아들의 집 전화번호를 모두 암기했다. 일부러 암기하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차 운행할 때, 미처 원아어머니가 나와 있지 않으면 갖고 있던 휴대전화로 전화 걸어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동승한 교사들이 어떻게 그 많은 전화번호를 다 외우느냐고 했지만 난 그게 별스럽지 않았다. 관심이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원아번호가 몇 있을 정도다. 


친척들이나 친구들 전화번호도 웬만한 건 암기하고 있었다. 남편은 쓸데없는 건 잘도 외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친척 누구의 전화번호를 물었을 때, 수첩 안 보고도 척척 대답하는 걸 보고, 대통령도 시험 봐서 뽑는 거라면 됐을 거라고 느물거렸다. 그럴 때 툭 한 마디 하곤 했다. 내게 한 서운한 행동이나 말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테니 잘하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암기한다며. 모두 흰소리였다. 


학교에 있을 적엔 수강하는 학생들 이름을 두 주 정도 지나면 금세 외우곤 했다. 학생이 많으면 특징을 연결해 외웠고, 많지 않을 땐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외워졌다. 학생들이 어떻게 이름을 아느냐 반문할 정도로. 내 강의에 들어오는 제자들의 이름을 암기하는 건 선생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한 학기가 끝나가도 학생들 이름을 암기하지 못하는 선생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오만이었다. 


서당에 다닐 때 송독대회가 해마다 열렸다. 기초반일 때 그 대회에 참가했다. 격몽요결의 <독서장>을 모두 암기해서 참가했다. 송독은 암기해서 읊는 거다. 우수상을 받았다. 7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것만큼은 암기하고 있다. 그 후 고급반일 때 시경의 <관저장>을 암기해 대회에 참가했고 그땐 최우수상을 받았다. 암기하는 대회에는 빠지고 싶지 않았다.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이만하면 암기력이 나의 특기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도 벌써 3년 전이다. 지금은 건망증이 특기라면 특기다. 뭘 그리 잘 잊는지. 친구의 이야기는 더 기막히다. 친구들 몇이 여행을 갔단다. 거기서 이 친구가 별명을 얻었는데, ‘또 없어’란다. 열쇠도 어느 곳에 두었는지, 모자도 어쨌는지, 장갑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려서 없다고, 또 없다고 하는 바람에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그 말 듣고 배꼽 쥐고 웃었다. 


지금 내가 그렇다. 손에 들고도 찾을 때가 있다. 업은 아기 삼 년 찾는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찾다, 찾다 못 찾고 있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올 때가 있다. 어머! 너 여기 있었구나. 내가 그렇게 찾았는데, 너 혼자 어디 돌아다니다가 온 거지? 혼잣말하다 웃는다. 그렇게 나오면 또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황당한 건 손에 들고 찾는 거다.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도 가방 뒤질 때가 있다. 이러니 예전에 암기력 좋았던 게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요즘엔 휴대전화 다이어리에 일정을 간략하게 메모한다. 겹쳐서 약속을 잡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 암기력을 이젠 보장 못한다. 조금 전에 하려던 말도 잘 잊고 텔레비전에 심심찮게 나오는 연예인 이름도 도대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러니 예전의 그 현란했던 암기력은 빛을 잃은 것 아닌가. 할 수 없다. 그 좋은 암기력은 어디로 가고, 그 자리에 건망증이 자리한 것인지. 인생무상, 암기력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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