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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28. 2024

나는 엉뚱한 데가 있다

엉뚱한 행동


나는 엉뚱한 데가 있다. 아무도 그럴 거라고 생각 못하지만. 그게 더 재밌다. 엉뚱한 또 다른 내가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엉뚱할 데가 있단 말이다. 안 믿어진다고? 믿거거나 말거나. 솔직히 나를 들여다보면 그렇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걸까. 사람은 신비로운 데가 좀 있어야 더 매력적인 건데. 솔직한 면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보면, 나는 매력 있는 사람 아니다.


내가 엉뚱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면 일화를 소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어릴 적 일이다, 그때만 해도 고정관념이라는 게 팽배했던 시절이다. 고정관념은 전근대적 사고에서 오는 것이므로, 지금은 웬만큼 깨인 사람은 고정관념에 얽매여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랄 적엔 그 관념이 팽배했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뭐 그런 거 말이다. 사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층하받고 자라진 않았다. 하지만 행동에 제재를 받은 건 많았다. 


저녁이 되면 집안에서 나가지 못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낮이고 밤이고 자유롭게 나다니는 것에 비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 흔하게 들어오던 이동극장도 마음 놓고 가본 적 없다. 겨우 두세 번 근처 사는 친척 언니가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데려간 적 있어도. 그러니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늦게 오는 게 용납되었을까. 놀다가 자는 건 더더욱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 내가 아랫집 오빠에게 저녁에 기타를 배우기로 했다. 엉뚱하다 못해 생벼락이 칠 일이었다. 그때나 이때나 나는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기타 배우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그 시절에 기타를 배울 생각을 하다니, 엉뚱 발랄한 생각이 아니고 뭔가. 어머니가 마실 온 이웃 아주머니들과 이야기 장단이 늘어질 때쯤, 나는 살금살금 나가 기타를 배웠다. 아랫집 오빠가 처음 가르쳐 준 곡은 ‘로망스’였다. 코드 잡는 법을 배우느라, 손가락 끝이 말랑하고 아파질 무렵, 어머니가 어떻게 아셨는지 생벼락을 내렸다. 감추어두었던 아랫집 오빠의 여벌 기타를 마당에 내동댕이쳤고, 기타는 산산이 부서졌다. 


또 한 번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쳐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권도, 얼마나 매력적인가. 태권도를 배우기로 했다. 무료였고, 누구라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진학을 못하고 집에서 빈둥거릴 때였다. 딱 하루밖에 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아시고 또 생벼락을 내렸다. 우리 어머니 특기는 생벼락 내리는 거였는지 모른다. 무슨 여자애가 태권도를 배우느냐고 야단이었다. 얌전하기 그지없는 요조숙녀 같은 어머니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짓을 한다며,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혼해서 남편이 백수로 일 년이 넘도록 놀았다. 답답했다. 시어머님께 말했다. 어머님과 같이 칼국수 장사를 하자고. 어머님은 엉뚱하다며 웃으셨다. 엉뚱한 게 아니라고, 고모네 칼국수 가게에서 배달하고 설거지하며 비법도 다 터득했다고, 못할 일 아니라고 우겼지만 어머님은 엉뚱한 말로 치부하고 대꾸도 안 하셨다. 그럼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미용실을 할 테니 아기를 봐달라고 했다. 어머님은 그 말에도 들은 척하지 않고 엉뚱하단 말만 하셨다. 


결국 나는 다음 해에 패물로 받은 반지 목걸이 다 팔아, 혼자 도시로 와서 가게 하나를 계약하고 내려갔다. 그 사실을 안 남편과 어머님은 세상에 엉뚱하다, 엉뚱하다, 이렇게 엉뚱한 사람은 보느니 처음이라며 생벼락을 내렸다. 내 편이 되어준 시아버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그 산골에서 콩밭 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도 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말이다. 


도시로 살림 나서 살다가 남편이 하는 가게도 신통치 못해 이것저것 내가 일을 벌일 때에도 남편은 엉뚱하다고 야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밀고 나갔더니 나중엔 그러려니 하고 본척만척 체념하고 말았다. 단, 자기에게 또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거야 당연하다. 남편이 체념하니 내 엉뚱한 생각과 행동은 날개를 달았다.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딴지 걸거나 제재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지금 내가 이만큼 사는 건 나의 엉뚱한 행동 때문이다. 남들이 안 된다고, 엉뚱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고정관념도 버렸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마흔 살의 나이로 정작 하고 싶은 문학에 발을 내디뎠을 적에도 주위사람들이나 남편은 엉뚱하다며 헛웃음을 웃었다. 고정관념을 깼다고 외친 사람은 아들과 딸이었다. 그랬던 아이들도 실은 날 닮아 엉뚱한 면이 있다. 그래도 나는 우리 어머니처럼 생벼락을 내리진 않는다. 아이들은 나를 닮았더라도 나는 어머니를 닮진 않았다. 시절이 달라졌으니까. 


신기한 건 외손자 온이가 엉뚱한 부분이 있다. 행동이나 말이. 그게 귀엽고 어린이답게 보인다. 엉뚱한 데가 있는 사람이 재밌는 사람이다. 아니 그런가. 틀에 박힌 듯 사는 건 권태롭다. 에디슨을 비롯하여 위인들 중에는 엉뚱한 행동과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아무튼,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엉뚱한 데가 있는 사람이다. 겪어본 사람 말고는 내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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