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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젊은이의 앞날에 영광 있기를!

네가 행복하다면

by 최명숙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의미 있다며 열성을 다하던 일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유를 물었다. 작업만 하고 싶어서란다. 아참, 아들은 그림쟁이다. 내년에 전시회 계획을 하는데,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다. 그건 인정. 방법은 직장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니, 그것도 인정. 하지만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 아니다.


먼저, 그때까지 어떻게 생활할 건지 물었다. 내가 알기로 모아놓은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서다. 집에서 나가 독자적으로 산 지 팔구 년이지만 모으긴 쉽지 않았을 거다. 오피스텔 집세 내랴, 틈틈이 작업하느라 재료값 쓰랴, 나이가 있다 보니 이래저래 경조사비다, 뭐다, 나이 값 할 일이 한두 가진가. 거기다 가끔 나나 동생에게 아들과 오빠 노릇까지. 미혼 남자들 중에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들은 그런 류의 인간은 아니다. 낭비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밥값 때문에 운동화 끈 매는 류는 아니니까.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십 년 전부터 틈틈이 작업을 했는데, 별로 건질 그림이 없어, 집중해야 하니까 직장을 그만둔 거란다. 이해한다. 나도 오래전에 써놓은 글 보면, 허섭스레기 같아 건질 게 없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들은 들떠 있었다. 작업실과 사는 집을 따로 분리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작업실 따로 오피스텔 따로 얻어 이사할 거란다. 그것도 알아서 하라고 했다.


진정한 그림쟁이로 살 거면 직장을 그만두라고 한 사람은 나였다. 아주 오래전이다. 군대 갔을 때 말고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학원에서 입시미술을 가르쳤던 아들이다. 그때도 나는 공부만 하라고 했는데 듣지 않았고, 입시 전문 강사로 직장에 다닐 때도 작업만 하라고 했는데, 듣지 않았다. 남의 자식 가르치다 정작 네 인생은 남는 게 없을 거라고, 제발 그림이나 그리라고 사정을 했었다.


아들은 고집을 부렸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제자들이 원하는 대학에 붙으면, 그게 보람이라고. 그 세월이 20년 다 된다. 그러더니 이제서. 학생 가르치는 재미를 모르는 내가 아니다. 그 재미도 인정. 군자삼락 중의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를 교육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권한 거였는데, 그때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고집을 부리더니.


아들은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고, 오피스텔에 돌아와서 글을 쓴다. 동화 쓰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란다. 그것도 오래전에 내가 권했던 거다. 그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그림이야 그렇다고 해도, 어렸을 적부터 글을 잘 쓰는 아이였다. 내가 글을 쓰라고 권한 게 15년 전이다. 그때는 그림만 그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책 낼 때마다 표지와 삽화를 그리더니, 글을 쓸 것 같은가 보다. 동화를 쓰겠단다. 동화를 써서 내게 보내 읽어달라고도 했다. 발상은 신선한데, 뭐 별로 잘 쓰는 것 같진 않다. 내가 혹평을 해도 히힛 웃으며 꾸준히 써서 보내고 있다. 그러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과 글만 해보겠단다. 아무튼 저, 젊은이의 앞날에 영광 있기를!


모든 예술가들의 바람일 거다. 자기가 하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은 것.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작업만 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용단을 내리면 가능하겠지만 쉽지 않다. 그런 바람이 있으면서도 망설여지는 게 있다. 전업 작가로 살만큼 내가 특출 날까, 지금 하는 일들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데 그만둘 수 있을까. 양면성을 가진 나다. 퇴직 후 나는 더 일이 늘어난 형편이다. 그것을 나름대로 즐기기도 하고. 그러니 대단한 작가가 되긴……음……내 입으로 말하긴 싫어 그만둔다.


아들에게 말했다.

“너, 무엇보다 결혼 안 하길 잘했다. 결혼했다간 이런 짓 해볼 수도 없고, 만약 아기라도 있다면, 아기 떼놓고 마누라가 도망갈지도 몰라.”

“하하하…… 맞아요.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속없는 인사. 호탕한 웃음이 어이없다.


아들이 아껴 쓰긴 하나보다. 얼마 전 내 생일에 축하금도 안 보냈다. 수입이 생기면서부터 일 년에 두 번 어버이날과 생일날에 흐뭇할 정도로 주던 건데. 아무 말 안 했다. 긴축재정인가 보다 하고. 밥도 해 먹는단다. 사 먹는 게 생활이었는데, 한 끼 사 먹을 것으로 두 끼 해 먹을 수 있단다. 전에는 반찬 좀 해줄까 하면 극구 말리더니, 좋단다. 괜히 입에 담았다. 나도 실은 귀찮다. 하지만 아들인데 어쩌랴. 거기다 대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 중이라니, 대문호가 되기 틀린 내가 협조할 수밖에.


무엇보다, 행복하단다. 전화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밝다. 그래, 너 행복하면 됐어. 혹시 엄마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공연히 끙끙대지 말고. 앗! 실수! 아들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래요? 하하하. 염치 불고하고 그럼. 한, 천만 원만 후원해주세요.”

“뭐야?”

“아니, 아직은 아니에요. 정 부족하면 말씀드릴게요, 정말로.”

“그래, 어디서 빌리지 말고. 고쟁이 쌈짓돈이라도 내줄 테니, 말해.”

“역시 우리 엄마! 예술가라 다르세요. 예술가의 어려움을 아시니. 하하하.”

아들은 그렇게 나를 추켜올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예술가는 무슨. 하긴 저 좋으면 되는 거지 뭐. 인생 뭐 있다고. 장가를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애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내가 일할 만하니까, 가능성 있는 저 인간을 밀어줘야지, 어쩌겠나. 그래도 장가는 좀 가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먹여 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중얼중얼. 그러다 나도 픽 웃고 말았다. 이 무슨 되지도 않는 넋두린가 싶어서. 아무튼 저, 젊은이의 앞날에 영광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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