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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집에 피아노가 들어온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

by 최명숙


오늘 오후 1시경 딸의 집에 피아노가 들어온단다. 엊저녁 설레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나도 들떴다. 그 기분을 알기 때문에. 더구나 사고 싶었던 브랜드의 피아노를 사니 오죽하랴.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침 휴무일이어서 집에서 피아노를 받을 수 있단다. 어머! 잘됐다. 대면식 멋지게 해. 또 맞장구를 쳐주었다. 딸이 히힛 웃었다.


딸은 작곡을 전공했다. 피아노를 치다 작곡으로 바꾸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려면 손가락 찢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이 작아서. 끔찍했다. 아니면 작곡으로 바꿔야 한단다. 딸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기는 처음부터 작곡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고. 음악이라면 무조건 피아노를 먼저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반성했다.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렇게 딸은 작곡을 전공하게 되었다.


작곡과에 가려면 할 것이 많았다. 피아노는 기본이고, 작곡, 시창, 청음, 화성학 등을 공부해야 한다. 다행히 딸은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했다. 시창, 청음을 잘했다. 중학교 때부터 작곡과에 갈 준비를 했다. 딸은 피아노를 대여섯 시간 동안 쳐도 싫증 내지 않고 즐거워했다. 그 바람에 어깨와 허리, 목이 늘 아팠다. 고등학교 때부터 병원에 자주 들락댈 정도로.


딸이 멋진 작곡가가 될 줄 알았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 나도 딸을 생각하며 많은 꿈을 꾸었다. 영화음악과 드라마 음악을 만들고 자막에 이름이 나오는 상상,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딸이 작곡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상상, 창작동요대회에서 대상 받는 아이와 작곡자인 딸이 무대에 오르는 상상 등. 그러나 딸은 너무도 평범한 수많은 전공자 중의 한 명이었다.


“언제 작곡가로 인정받는 거야? 발표회 해야 되는 거니? 너 이렇게 살라고 그 힘든 공부시킨 것 아니야.”

“문학은 등단 과정이 필요하지만 음악은 아니에요. 전공하면 바로 작곡가야. 졸업연주회 했잖아요. 그걸로 인정받는 건데.”

안타까워하는 내 말에 딸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곡을 써서 이름을 날리라고 하면, 인생 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딸은 이름 좀 알려진 사람과 몇 번의 협연을 조촐하게 했고, 결혼 전에는 직장 생활하면서도 음악에서 아주 손을 놓지는 않았다. 작곡은 아니지만 피아노라도. 직장은 음악과 상관없는 교육행정직에 있다. 그래도 집에서는 늘 피아노를 쳤다. 단 몇십 분이라도.


그러나 결혼하면서 피아노와 멀어졌다. 작은 신혼집에는 피아노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게 가장 속상했다. 딸은 연습실에 다니며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집에 오면 피아노부터 한참 치다가 쉬었다. 그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하는 딸이다. 그것을 아는 어미이니 안타까울 수밖에.


얼마 전, 딸은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입주 선물로 피아노를 염두에 두었다. 내 형편에 분양대금을 보태줄 수 없지만 그것은 해주고 싶었다. 물어보았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딸은 아니란다. 그냥 화장지나 한 박스 사달라고 했다.


“그건 당연하고, 갖고 싶은 거 말해 봐. 하나 사줄게.”

“정말? 그럼 냄비세트 하나 사줘요.”

“아니, 그런 것 말고 진정으로 갖고 싶은 거.”

“없는데요. 엄마 마음만 받을게요.”

“피아노 사줄까?”

“엥! 진짜? 좋아요. 사 주세요. 얼마 예상하세요?”

딸은 평소와 달리 선뜻 응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피아노와 딸이 갖고 싶은 피아노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컸다. 명품으로 치는 브랜드 피아노인데, 소리가 너무 달라 그걸 꼭 갖고 싶단다. 마음속으론 그것으로 정한 상태란다. 말을 꺼냈으니 집어넣을 수 없고, 솔직히 예상 밖의 가격에 놀랐다.


“다는 말고, 엄마가 예상했던 것의 반만 보태주세요.”

딸은 성격대로 경쾌하게 말했다. 그 피아노 소리가 얼마나 다를까 궁금했다.


딸은 지난달에 서초동에 가서 피아노 보고 계약을 했다. 12월 말에 받을 수 있다더니, 예상외로 빨리 받을 수 있게 되었다며, 피아노 들어오는 날을 알려왔다. 서둘러 피아노 대금을 입금해주었다. 전액이 아닌 80% 정도. 일반 피아노 한 대 사고도 한참 남을 만큼 큰 액수다. 딸은 너무 많다며 조금만 보내라고 했지만 그만큼은 해주고 싶었다. 딸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오늘 오후 1시경 딸의 집에 피아노가 들어온다. 이제 딸은 집에서 마음껏 피아노를 치고, 자기의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다. 그게 꿈꾸던 삶이었다니 작곡가로 이름 날리지 않아도 괜찮다. 저만 행복하면. 나도 같은 마음으로 설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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