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무병장수하자

질병

by 최명숙


생로병사, 사람 삶의 보편적 과정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보통 이 과정을 따른다. 그러니 질병과 무관할 수 없다. 살아가는 순간마다 아프기도 한다. 심지어 아기도 태어나 백일만 지나도 한 차례씩 질병에 시달린다. 어른들은 크느라고 그런 거라고,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한 번도 아프지 않고 평생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비교적 건강하게 102세까지 사신 우리 할머니도 질병에 걸린 일이 있다. 할머니 새댁 적에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걸려 죽다 살아났단다. 그 후 거의 아프지 않고 살았는데, 돌아가시기 전 삼 개월 심하게 편찮으셨다. 그 정도만 해도 평생 건강하게 살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흔치 않다. 일주일 심하게 아플 때도, 사람을 제대로 알아볼 정도로 정신은 말짱했다.


요즘 할머니의 평소 생활습관을 떠올리곤 한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앞으로 삶을 살고 싶어서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다. 그때는 무엇이든 실컷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고기와 생선 같은 건 명절이나 제사 때 아니면 거의 먹지 못했다. 산골에서 흔한 건 나물이었고, 농사지은 곡식들뿐이었다. 지금은 뭐든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너무 먹어서 걱정일 정도로.


할머니는 평생 소식했다. 어머니가 진지를 주발에 담아드리면 꼭 삼분의 일 내지 반을 덜어내고 드셨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반만 담아드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너무 적은 양이므로. 이해한다. 할머니는 나물 반찬을 좋아했고, 콩으로 만든 건 다 즐겨 드셨다. 콩밥, 콩죽, 두부, 된장 등이다. 특히 콩죽을 자주 끓였다. 죽을 싫어하는 어머니가 외가에만 가면, 꼭 콩죽을 만드셨다. 나는 할머니가 끓여주는 고소한 콩죽을 잘 먹었는데, 그걸 무척 함함해하셨다.


할머니는 해 넘어가면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 있어도 어두워지면 밀쳐 놓았다. 가장 야속할 때는 이웃집에서 떡이나 별식을 해서 갖고 올 때다. 저녁 후에 갖고 오면 절대 안 드셨다. 할머니가 입에 대지 않으면 우리도 못 먹었다. 이웃에서 가져온 떡을 다락이나 윗목에 밀어놓고 안 드시면, 고문당하는 것처럼 괴로웠다. 막내가 “할머니, 한 입만 드셔요, 응?”하면서 졸라도, “할미는 어두우면 안 먹어.” 하면서 꿈쩍도 안 하셨다. 우리가 음식에 눈독을 들이면 어머니가 어찌나 호령을 하셨던지.


할머니는 잠자리 들기 전까지 자리에 눕지 않았다. 102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허리가 꼿꼿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계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무리 할 게 없어도 절대로 낮에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누워 뒹굴 거리는 사람을 보면, 눈을 흘겼다. 허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낮에 누우면 안 된다고. 뭐라도 하라고. 젊은 놈이 왜 대낮에 누워 있느냐고.


대신 저녁엔 일찍 주무셨고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광에서, 마루에서, 마당에서, 뒤란에서 할머니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새들의 지저귐에 섞여 들려오던 그 정겨운 소리들. 때로는 키 까부는 소리가 들렸고, 나무 쪼개는 소리도 들렸다. 앉아서, 작은 손도끼로 참나무 우죽을 쪼개고 자르던 모습, 부지런함의 표본을 보여준 우리 할머니. 사람은 죽기 전까지 몸을 놀려야 심사가 편한 법이다, 하면서 움직였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 생활습관을 따르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소식, 나물과 콩 음식 먹기, 늦게 먹지 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부지런함 이 정도다. 이걸 평생 해야 한다는 게 어렵다면 어려울까. 이제부터라도 실천해 봐야겠다. 숱한 삶의 질곡을 건너오면서도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었던 건 생활습관 덕분이 아닐까 싶다.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전쟁 등 사회적 질곡뿐 아니라 할머니 개인적인 생활사도 지난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걸 감내하면서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온 할머니의 삶은, 생활습관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 덕분이었던 듯하다. 개인의 아픔과 슬픔을 견뎌내면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가해자까지도.


요즘 나도 부쩍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몸에 나타나는 질병의 징후들 때문이다. 아직은 병으로 발전하지 않았으나, 방심하면 질병이 찾아올 확률이 커진다. 소식과 간헐적 단식을 가장 먼저 실천하고 있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만 소식한다. 늦게 먹지 않는다. 저녁을 4시 전에 끝내서 16시간 이상 단식을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건 아직 못하고 있다. 아들이 늦게 오기 때문이다. 수면부족 현상이 일어나곤 하는데, 가끔 낮잠으로 충당한다. 할머니가 옆에 계셨다면, 젊은것이 무슨 낮잠이냐고 한마디 하셨을 것 같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사는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최소화하는 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건 물질보다 질병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현대인들은 건강에 관심이 높은지 모른다. 건강과 관련된 사업이 얼마나 큰 시장으로 발전했는지 우리는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고령사회 문제를 들먹여도, ‘무병장수’는 예나 지금이나 축복이다. 오래 살아도 ‘유병장수’는 모두에게 고통이다.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건 우리의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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