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섬유, 우리 집 주치의

식이섬유

by 최명숙


요즘 나는 건강박사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다. 아들과 나의 혈압과 혈당, 몸무게와 체지방 관리하느라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공부를 나름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튜브도 건강 관련 영상을 주로 보고, 책도 그렇다. 텔레비전 보다가도 건강에 대한 것만 나오면 온통 귀를 기울인다. 예전엔 휙휙 넘기고 말던 이야기가 꿀송이보다 더 달게 들린다.


며칠 전 아들과 함께 건강증진센터에서 검사를 받았다. 우리는 집에서 각자에게 있는 혈당계와 혈압계로 혈당과 혈압을 잰다. 혈압계는 같은 회사 제품이다. 아들이 전에 사준 거니까. 하지만 혈당계는 다르다. 두 기계의 수치가 다르게 나온다는 걸 센터에서 검사받으며 알았다. 기계만 믿었다간 큰일 날 뻔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혈당계를 만든 회사에 항의하고 싶었다. 내 기계는 오류가 없었는데 아들 것만.


아들은 체중이 23kg 줄면서 혈압은 지극히 정상이 되었다. 하지만 혈당은 아직 아니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때보다 엄청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았다. 집에서 쟀을 적엔 정상이었는데 말이다. 그걸 믿고 그대로 방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들은 체중 관리한 지 반년이 되었다. 체중과 근육은 지극히 정상이다. 혈압과 함께 그 부분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혈당이 문제다. 혈당은 그리 쉽게 잡히는 게 아니란다.


나는 혈압과 혈당 모두 정상범위에 있다. 체지방은 많더라도. 담당자는 체중관리를 권유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식이섬유를 충분하게 섭취해야 한단다. 그래야 혈당이 내려가고, 몸의 신진대사가 좋아져 체중이 감량된다고. 몸속 쓰레기 처리를 하는 데에 식이섬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아, 식단을 짤 때 식이섬유를 꼭 염두에 두어 왔는데, 그건 잘한 일이었다.


건강증진센터 다녀온 후로, 아들은 식이섬유가 더 강화된 식사를 하고 있다. 삼일밖에 안 되었는데,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 혈당이 내리는 건 물론이고, 몸속의 쓰레기 처리가 잘되는 거다. 우리는 왜 식이섬유의 중요성을 잊거나 무시했을까.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만 중요하게 생각해 좋은 고기를 먹으려고 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식이섬유였다는 걸 이제 확연히 깨달았다.


요즘 우리 집 밥상은 식이섬유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순서로 차려진다. 식사할 때 방울토마토, 사과, 양배추, 당근, 파프리카, 바나나, 양파 등을 한 접시 수북하게 썰어 먼저 먹는다. 생으로 먹거나, 올리브 오일 조금 치고 발사믹 식초 넣어서. 양배추와 당근 양파는 모든 요리에 들어가도록 한다. 고기는 눈에 보이는 기름기를 모두 제거한 다음 조리한다. 그래서 고기는 맛없는 고기만 산다. 앞다리 살, 닭 가슴살 등. 소고기는 마블링 때문에 잘 안 산다. 맛은 소고기가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야채 과일을 큰 접시에 가득 담아 먹은 후, 고기나 생선을 약간만 먹는다. 밥은 귀리와 현미 보리 콩 등을 섞은 잡곡으로 지어 평소의 삼분의 일 정도 먹고. 주스는 우리 집 사전에 없다. 생 과일 주스조차 먹지 않는다. 저작활동을 위해 과일은 껍질 채 그냥 잘라서 먹는다. 원재료대로 먹는 게 우리 집 요리의 첫 번째다. 될 수 있으면 모든 재료를 조리하지 않고 먹으려고 한다. 과일과 채소는 그래야 한다. 당근만 가끔 예외. 당근은 지용성 비타민이 들어있기 때문에 기름에 살짝 볶거나 익히는 게 좋다.


따지고 보면 내가 어릴 적엔 먹는 게 거의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들이었다. 오이를 밭에서 따서 우적우적 씹어 먹었고, 배추 겉절이, 무 생채나물, 풋고추, 가지나물, 호박나물 등을 주로 먹었으니. 고기는 제사 때나 명절 때나 먹었다. 생선은 고기보다 더 먹기 힘들었다. 산골이었으니까. 더구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 겨우 자반고등어나 겨울에 동태를 그것도 어쩌다 먹을 수 있었을 뿐이다. 주식이 식이섬유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때는 식이섬유가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흰 밥에 고기반찬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은 식이섬유를 일부러 식탁에 올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잘 살게 되면서 너무나 이것저것 잘 먹어서. 몇십 년 전에 법정 스님의 <먹어서 죽는다>는 글을 읽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 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그렇게 잘 먹던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스님은 앞을 내다본 거였다. 지금 그렇지 않은가.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병은 모두 많이 먹어서 생긴 현대병이다.


식이섬유는 우리 집 주치의다. 식이섬유가 충분한 식사를 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애쓰지 않아도 체중이 조금씩 줄고 있다. 혈당도 물론 내려갔다. 혈압은 안정적이다. 전부터 식단관리에 신경 써온 나는 콜레스테롤도 정상이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에 비해 특별히 나쁜 곳 없다. 아들은 밖에서 십 년이나 살다 왔으니, 반년 만에 이 정도 된 것도 기적이다. 앞으로 더 건강은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우리 집 주치의 식이섬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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