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큼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도 드물 거다.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 유행을 따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고, 좋지 않게 말하면 고집이리라. 또 나름대로 갖고 있는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세태를 거스르며 살고 싶은, 포말처럼 휩쓸려 살고 싶지 않은. 그게 맞고 그르고 떠나 그냥 내 생각이다. 옷이나 가방도 그렇지만 가구나 생활용품도, 다 해지거나 망가질 때까지 입고 쓴다. 꿰매거나 고쳐서 입고 쓰기도 한다.
딸은 질색한다. 제발 새로 사서 입고 쓰란다. 엄마 품위에 맞게. 꼭 ‘품위에 맞게’라는 말을 하는데, 뭐가 품위에 맞는 건지. 옷은 깨끗하게 빨아 다려 입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딸은 한 철에 옷 한 벌씩만 새로 사란다. 있는 옷이 멀쩡한데 왜 새로 사겠는가. 유행에 뒤처진 옷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뒤처져도 입을 테지만. 살 때 유행을 타지 않는 옷으로 샀기 때문에 몇십 년 된 옷도 잘 입고 있는데, 딸은 타박이다. 이면에 감춰진 그 마음을 모르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옷을 못 입느냐, 절대 아니다. 현직에 있을 적에 학생들이 내게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을, 자기들도 나이 들면 나처럼 멋스럽게 입고 싶다고 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딸은 새로 사지 않는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 같다. 옷이나 가방을 거의 사지 않으니까. 유행한다고 해서 사지 않는 게 내 생활태도다. 유행 따라 살지 않는 것도 제멋이다.
유행은 보통 십 년 주기로 돌고 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잘 입고 있는 옷 중에 이십 년도 훨씬 넘은 게 꽤 있다. 처음에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니까 오래 입는다. 선생들 옷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유행 타지 않고 무난한 디자인과 색상을 선택하는 것 말이다. 자연히 오래 입게 된다. 또 요즘 옷이 떨어지고 해지는 게 어디 있던가. 드라이클리닝만 하면 새것 같다. 구입할 때도 유행을 따르지 않고 사는 쪽을 택한 사람이, 새것 같은 옷을 두고 새로 구입할 리 없다. 딸이 뭐라고 하든지 귓등으로 흘리고.
태생이 그런 사람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나도 유행을 따른 적 있다. 열여덟 살 때다. 당시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는데, 단속이 심했다. 장발을 단속했고, 미니스커트를 단속했다. 걸리면 경범죄 처벌을 받았다. 70년대 중반이었으니까. 이제 막 소녀티를 벗고 처녀가 되어가고 있을 즈음, 미니스커트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통과제의 같은 거였을까. 나도 입고 싶었다. 입었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나만 입은 건 아니었다. 거리에는 미니스커트 입은 처녀들이 넘쳐났다. 무릎 위 20센티 길이면 단속 대상이었다. 경찰이 보이면 치마 길이를 최대한 내리고 경찰이 없는 곳에선 허리에 맞춰 입곤 했다. 나도 그랬다. 방심하면 경범죄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으나, 입어보고 싶었다. 동질감 같은 걸 느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멋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기억이 안 나지만 약간 반항심 같은 게 작용했던 것도 같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내게도 그런 심리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하나의 엉뚱한 나의 모습이리라.
입고 나간 첫날 단속에 걸렸다. 파출소로 연행되었다. 함께 있던 친구가 울상을 지었다. 나는 오히려 담담했는데. 파출소에서 경찰이 치마가 짧다고 경범죄인 줄 모르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했다. 처음으로 입어 본 거고, 내 것도 아닌 친구 거라고. 빌려 입었으니까 돌려주고 안 입겠다고. 경찰관이 살짝 웃었다. 자로 재봐서 무릎 위 20 센티면 봐줄 수 없다며. 마음이 놓였다. 그 정도로 짧지 않았으니까. 경찰관은 엄포만 놓고 길이를 재지도 않은 채 풀어주었다. 파출소에서 나올 때 울상을 지었던 친구가 환히 웃었다. 겁쟁이 순진한 내 친구.
그 후 나는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았다. 파출소에 다시 끌려가고 싶진 않았으니까. 내 사전에 파출소로 연행돼 간 건 그때 그 사건이 유일무이하다. 미니스커트 이야기만 나오면 두고두고 회자되는 내 경험담이다. 친구는 객지에서 만나 잠시 함께 지냈는데, 헤어지고 소식을 알 수 없다. 그 친구도 미니스커트를 보면 그때 그 기억을 떠올려보려나. 나는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사람만 봐도 경찰관 앞에서 울상 짓던 그 순진한 친구 모습이 떠오르는데.
내가 그 사건 때문에 놀라서 유행에 무심한 건 아니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사느라고 바빴다. 유행을 좇아 살기엔 모든 게 빠듯했다. 그러면서 유행에 관심 두지 못했고, 그보다 더 하고 싶은 것들이 내 앞에 자꾸 생겨나 아예 멀어졌다. 또 나만의 삶의 철학이 확립되면서 유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게 된 듯하다. 옷뿐 아니라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 삶의 방식도 그렇다. 오히려 불편한 것을 잘 견디고, 유행을 의식조차 하지 않으며 산다. 어떤 것에도. 그게 유행에 민감하지 않게 된 이유다.
유행 따라 살지 않는 것도 제멋이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고. 아니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