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한 어미였다. 지금도 그런 축에 속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더욱 엄했다. 오죽하면 아들이 “우리 집은 엄모자부예요.”라고 했을까. 엄마는 엄하고 아버지는 자애롭다는 의미로. 남편이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오냐오냐 하니까, 나라도 가르쳐야 했다면, 변명일지 모른다. 나는 본디 엄격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게 맞다. 그게 아이들이나 제자들에게도 다 적용되었다. 먼저는 나에게다. 안다.
그건 핑계를 대자면 나의 어머니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므로, 훈육을 담당한 사람은 어머니였고, 유교사상이 강한 어머니는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들을까 봐 늘 경계하며 우리를 키웠다. 이상한 일이다. 동생들은 어머니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은 듯한데, 나는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하다. 맏이여서 그런지 그건 모르겠다.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게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게 되자 그런 성향은 더욱 짙어졌고, 그게 선생이라는 직업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화된 듯하다. 글쎄, 핑계일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동생들만 해도 그렇지 않으니까.
남편은 아이들 야단치는 일이 없었다. 뭐든지 오냐오냐, 눈 한 번 부릅뜨지 않았다. 착한 천사 역할을 도맡아 하고, 나는 악역을 도맡아 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 단속하는 소리를 현관 밖에서 들을 때 자주 있었다. “얘들아, 얼른 치워. 네 엄마 오면 혼난다, 어서어서!” 밖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멈칫하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면 그럴까, 엄모자부가 맞긴 맞나 보다 싶었다.
그렇다고 회초리를 자주 드는 나는 아니었다. 몇 번 경고한 다음, 그래도 말 안 들을 때 들었다. 몇 대 맞을 건지 스스로 정하게 하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이성적으로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자신 없지만. 감정이 안 들어갈 수 없는 일이므로. 내가 만든 회초리를 남편은 꺾어버리곤 했다.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아이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 엄격하게 가르치려 드냐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나 꼭 맞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딸이 온이를 키우는 걸 보면, 회초리가 뭔가. 말도 부정적으로 못 하게 한다. 안 돼, 하지 마, 못 써, 그런 말을 하면 질색한다. 평생 교육 현장에 있었다는 분이, 더구나 국문학을 전공한 분이, 이렇게 비교육적일 수 있느냐고 타박한다. 내가 널 이렇게 안 가르쳤는데, 어른 되었다고, 자기 새끼라고 무조건 오냐오냐 하는 건 또 뭐냐고, 눈을 흘기지만 내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딸의 교육관 내지 양육관은 그렇다. 영유아 때까진 혼내는 건 하지 않고, 대화로 설득하는 걸 우선순위에 둔다는 거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사는 게 전보다 나아서 그런가, 교육과 양육에 관심이 많아 그런가,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와 다르긴 많이 다른 듯하다. 딸을 보면, 웬만해선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가만가만 설득한다. 열불 날 정도로 화가 치밀어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화가 치미는 경우는 온이가 또온이를 밀쳐 넘어뜨릴 때다. 그 외에는 사실 화날 일이 거의 없긴 하다. 딸은 동생 밀면 안 되는 이유 열거하며 다시 안 그러겠다는 답을 얻어낼 때까지 설득한다. 시간도 참 많다.
어머니는 아기를 예뻐만 해 주세요,라고 며느리들이 말한단다. 양육 태도와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하는 말인 줄 안다. 딸은 친정엄마에게 직설적으로 다 말해서 요즘엔 딸과 친정엄마 사이가 아이 양육과 교육 문제를 놓고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고도 한다. 그걸 알기에 나도 웬만해선 외손자들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디 그런가. 저희들 자식만 되나 내 손자도 되는 걸.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 못지않게 크지 않던가. 요즘엔 나도 상당히 절제하고 있다. 손자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 공연히 있는 게 아니다. 아이 양육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회초리 들어 아들딸을 가르친 게 미안해서 언젠가 말한 적 있다. 내가 너희들 키울 때 너무 엄하게 한 거 미안하다고.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좀 무서웠지,라고 했고, 아들은 그랬기 때문에 어디 가서 나쁘다 소리 듣지 않고 산다고 했다. 딸은 이어서 말했다. 아직도 엄마는 너무 엄격하다고. 이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하여간에 딸들은 어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종족인 듯하다.
시대가 변했다. 한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고, 집안에서도 위계질서보다 인권이 먼저인 시대가 되었다. 위계질서와 경로효친이 먼저라고 하면 전근대적이라고 비난받을 내 의식, 자꾸 구겨 넣어 가라앉힌다. 회초리가 아직 유효한 시대일지 모른다고 하면, 나와 대화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의식이 변하고 문화가 변했다. 이제 회초리를 놓아야 할 시대라 해도, 가끔 따끔한 회초리도 필요할지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