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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Sep 04. 2022

새로운 시작이다

나만의 퇴임식 

2022년 8월 31일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다. 23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퇴임하기 때문이다. 평생 일했던 곳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늦게 학업을 다시 이어 사십 대 중반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교수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시간강사’였다. 강사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강사’가 되었지만. 올해로 대학교원의 퇴직 연령인 만 65세가 되었다. 이제 세상이 달라져 퇴임식이라는 행사는 없다. 그래도 그냥 슬그머니 물러나는 건 아무래도 아쉽다. 그래서 ‘나만의 퇴임식’을 하기로 했다.        


마흔 살에 대학에 입학하여 쉰 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잘하던 일을 접고 학업을 잇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 과정에 남편이 아프게 되어 가정경제와 두 아이 그리고 나의 학비를 책임졌다. 그래도 학업을 놓지 않았다. 난관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고 고단했던 것을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공부하는 내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저러냐고.    

            

나는 23년 동안의 대학생활에 만족한다. 그 일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내 일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졌다. 본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3개 대학에서 일주일에 수십 시간 넘은 강의를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아이들도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인의 길을 잘 가고 있다. 이제 나만의 시간을 앞에 두고 있다.        


‘나만의 퇴임식’을 앞에 두고 서운한 게 있는지 또는 후회되는 게 있는지 점검했다. 다행히 없다. 이만하면 괜찮은 선생이었다고 생각한다. 휴강하거나 강의 준비를 안 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무척 사랑했으니.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상하게 아쉬움이 전혀 없다.        


먼저, 나에게 퇴임 선물을 하기로 했다. 아주 통 큰. 자동차다. 20년째 타고 있는 차를 이제 놓아주고, 새 차를 사기로 했다. 몇 달 기다려야 한다던 차가 8월 31일을 기점으로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춰서 나오는지 놀랐다. 대리점으로 가서 차를 끌고 오는데, 설레고 긴장되었다.        


다음은, 커다란 꽃바구니를 하나 맞출 생각이었다. 우리 집에 남편의 이름으로 배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꽃을 주문하기 전에 내게 자동차를 판매한 딜러가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어쨌든 꽃다발이 준비되었다.     

                

마지막은,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나에게 사줄 주기로 했다. 새 차를 찾으러 가며 맛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혼자 또 다른 나를 앞에 두고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옛날을 떠올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생각했다. 고마웠던 일, 아쉬웠던 일, 행복했던 일을 소환했다. 쉬는 시간에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놓아주던 아무개, 만학도 누구, 밤새워 강의 준비하던 날들, 개강할 때 설레던 마음들.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그 소중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음미했다.         

            

식사를 하고 자동차 판매장으로 가는데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차 사용법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서류를 작성했다. 나와 긴 여정을 함께 할 새 차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프린’이다.  차가 자그마하고 우아한 것이 공주 느낌이 났다. 그래서 그렇게 지었다.


8월 31일 밤이 깊어간다. 이제 나는 자유다. 새로운 나의 삶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설렌다. 더욱 빛나는 날들일 테니까. 자,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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