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에서 『시경』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송독 대회가 열렸다. 송독이란 한문 문장을 외우는 것으로, 외우는 문장에 음률을 넣어 읊어야 제격이다. 예전에 참가하여 우수상을 받은 전적이 있긴 하지만 워낙 열심히 외운 사람들이 참가하는지라 상을 받기 쉽지 않다. 6년 과정인 서당 수업을 거의 이수한 상태여서, 나에게는 마지막 참가 기회였다. 훈장님은 짧은 거라도 좋으니 모두 참가하라고 하셨다. 순전히 그 분부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의미로 참가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상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시경』에 처음 나오는 시가 ‘관저’ 장이다. 배울 때부터 적어도 이 첫 시만이라도 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저 장은 아주 짧다. 1장은 4구, 2장과 3장은 8구로 모두 20구밖에 안 된다. 글자로도 80자이다. 1분 남짓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그것에 음률을 붙여 외우기 시작했다. 틈틈이 혼자 흥얼거리며 외우다 보니 이틀 만에 다 외웠다. 그만큼 짧은 시이고 반복되는 글자가 많아 외우기도 수월했다. 그 ‘관저’ 장을 가지고 송독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가 열리는 날,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실시되었다. 서당에서 수학하고 있는 사람들 100여 명이 접속해 들었고, 24명이 참가했으며, 네 분의 훈장님이 심사를 했다. 나는 14번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대회 참가자들이 송독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 문장을 어쩌면 그리 정확하게 잘 암송하던지, 거기에 비하면 내가 준비한 것이 너무 미미한 것 같았다. 그만둘까 싶을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차례가 되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감색 정장으로 복장을 갖추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준비했던 시를 송독했다. 연습할 때보다 조금 못한 것 같지만 그런대로 실수하지 않고 끝냈다. 다른 참가자들이 한 것에 비하면 1/4이나 1/5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목청을 돋우었고 감정을 넣어 발표했다. 마지막 구를 송독할 때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일단 참가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 거니까,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모든 참가자들의 송독이 끝나고 발표하기까지 잠시 휴식시간이 이어졌다. 초조했다. 막상 발표하고 나니 상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라앉았다, 다시 두근거리기를, 반복했다. 송독한 분량으로 보면 내가 한 것이 가장 짧았다. 그러나 외운 양을 보고 상을 주는 건 아니니까 결과를 기다려보자 싶었다. 최종 성적을 내는 시간 15분이 참으로 길었다. 이상하게 자꾸 기대가 커졌다.
다시 훈장님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고 발표를 시작했다. 다른 때와 달리 최우수상을 먼저 발표했다. 최우수상, 고급반 …… 이 부분에서 가슴이 막 뛰었다.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최 o o. 나였다. 나도 모르게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내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다음 수상자들의 이름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너무 기쁜 나머지 깊이 취해 있었다. 눈물이 조금 흘렀다. 상을 타려던 욕심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이렇게 감동스러울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내 마음을 날 같이 알아주는 분들에게 대한 감동이었다. 사실, 짧은 그 시를 나는 천 번도 더 읊었을 거다. 시도 때도 없이 산책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에 읊었고, 남들 앞에서도 읊었다. 음률을 넣어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외웠고,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날부터 시에 대한 분석과 시적 화자의 감정 등을 연구했다. 짧은 시지만 그것을 아주 익숙하게 읽어 몸에 배어들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시를 읊으며 간절한 감정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것이 좋아 자꾸 읽고 또 읽다 보니 꼭 시적 화자가 나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거기다 음률을 넣어 나만의 것으로 만들다 보니, ‘관저 3장이라’ 하는 제목을 읊는 것만도 수백 번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자연스럽지 않으면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가 다시 하고, 자다가도 깨면 다시 했다. 밥을 먹다가도 안 될까 봐 또 해보고,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읊고 또 읊었다.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만큼 짧은 시였다. 그런데 나의 그 노력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다는 게, 눈물 나도록 감동적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내가 송독한 분량이 가장 짧았고, 쉬운 내용이었다. 보통 다 그렇지 않은가. 숨겨진 것보다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 말이다. 얼마나 많이 버는가, 얼마나 좋은 집에 사는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듯. 그 사람이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삶에 임하는지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물론 그게 다 나쁜 것도 아니다. 내가 감동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을 날처럼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서였다.
가르침을 받은 훈장님들께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답변이 왔다. 이제 스스로 자기만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정성스러우십니까? 발표 마치고 네 분 모두 이구동성으로 최우수다! 외쳤답니다. 이런 과찬의 문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기쁨은 배가 되었다. 잠자리에 누워도 자꾸 미소가 지어졌다. 준비하는 과정을 본 듯이 알아봐 준 훈장님들, 내 무늬를 읽어준 분들이라는 것에서.
나도 다른 사람의 삶과 마음의 무늬를 읽어주고 싶다.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내 가족들과 친구들의 그 무늬를 깊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