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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09. 2024

글쓰기, 존재의 확인이다

존재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존재의 확인이 아닐까. 어떤 상황, 현상, 사물 등을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이 상황을 이렇게 보고 있고, 이 현상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으며, 사물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한 존재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알리는 과정이 글쓰기 아닌가 싶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상황과 현상 그리고 사물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고,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결국 글 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게 좋고 나쁘고 문제는 아니다. 성향이니까. 세계를 깊이 들여다본다고 더 잘 사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볍게 설렁설렁 산다고 잘 사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이만큼 나이 들어가며 느끼곤 한다. 나는 참 쓸데없이 진지하게 살았다는 걸. 조금 가볍게 생각해도, 조금 유연하게 처신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 일이 몇 떠오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제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원리원칙 따져가며 피곤하게 살았는지. 그 또한 내 성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가끔 생각한다. 내로라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로 불리는 건 함함하다고. 그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르긴 해도, 과제가 있어서 좋다. 그건 할 일이다. 대가가 있고 없고 떠나서 열중할 일이 있다는 건 확실히 행복한 일이다. 강제성이 따르지 않는 일이지만 과제는 나를 긴장하게 하고 신경 쓰이게 한다. 그것을 즐길 마음이 있다면 글쓰기는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좋은 일거리다. 


무엇보다 존재의 확인이 되지 않는가. 강아지들도 영역 표시를 하고 확인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존재성 없이 살다가 스러지는 건 아무래도 아쉽지 않은가. 글쓰기 외에도 존재의 확인을 할 수 있다. 후손을 남기는 것이 그 하나 아닐까. 또 그림이나 음악 건축물 등 유형무형의 산물을 남기는 것도. 어쨌든 사람은 고래로부터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에서 어떤 존재를 확인하고 만나게 된다.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 그게 글쓰기다. 나는 어릴 적에 쓴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읽어보았을 때, 그 시절을 더 이상 생각하기 싫고 구질해서 버리려고 했다. 한편으론 중학교 때부터 쓴 일기인데 버리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꽁꽁 싸서 깊숙이 넣어두었는데 얼마 전에 꺼냈다. 열다섯 살 소녀를, 스무 살 아가씨를, 스물다섯 살 새댁을, 그 일기장에서 만났다. 내 삶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그 시절의 나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풀리지 않는 내 의식의 저편 기억들을 일기장에서 확인하며, 그때 ‘나’라는 존재를 깊이 알게 되었다. 내가 꾸었던 꿈과 바라던 소망, 그것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좌절하는 것을 확인하며. 나를 여기까지 밀고 온 게 글쓰기, 내 존재의 확인 여정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성장했고, 새로운 꿈을 가졌으며, 그것을 이루어나갔다는 것을. 글쓰기의 위력을 다시금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삶이 나른해지거나 공연히 쓸쓸해지면 발간한 내 책을 읽는다. 책은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힘이 있다. 객관적으로 나의 삶과 생각을 읽으며 거기에 공감하고 재인식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 역시 존재의 확인이지 않을까. 때론 힘을 얻고 때론 연민에 나를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결국 나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또 나아가 다음에는 더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각오와 꿈을 갖게 된다. 


‘나’라는 존재의 확인은 물론, 타인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이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알리는 그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의 하나인 글쓰기에 관심을 두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존재의 확인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므로, 삶을 허투루 살게 되지 않을 테니까. 성찰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래서 강하다. 삶을 반성하고 살피는 행위는 지극히 고상한 일 아닌가. 


글쓰기, 존재의 확인. 나아가 삶을 책임지고 사는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흔적을 남길 바에야 선한 영향력 끼치는 것을 남겨야 한다. 어떤 형식의 글쓰기든 모두 해당된다고 본다. 하다못해 인터넷 댓글 하나라도, 지인과 주고받는 메시지 하나라도. 모두 ‘나’에게서 나온 내 존재의 확인이니까. 그렇다고 글쓰기에 너무 무겁게 접근하진 않아야 하리라. 쓰고 있는 왕관이 무거워 휘청거리면 안 되니까. 이래저래 생각해도, 글쓰기는 의미 있는 일이다.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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