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목디스크 재발, 그 맛을 외면하지 못해서 초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고기 맛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했던가. 난 그 맛을 잘 안다. 몇 번 경험했으니까. 크고 작은 일에서 경험한 그 맛을 맛볼 때, 솔직히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쾌감을 느끼곤 한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할 때 간혹 있다. 목표에 다다르면 존재성과 함께 쾌감을 느낀다. 그 맛은 성취감이다.
성취감, 때론 상황에 따라 절제하거나 포기해도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달리는 건 내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꾸준히 가는 걸 누가 나쁘다고 할까. 절제하지 못하는 무모함이 문제다. 무엇이든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가려고 하는 게 때론 장점이 때론 단점이 된다. 이처럼 목디스크가 재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게 그 성취감인 듯하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고 지혜다. 누가 한 우스갯소리처럼 포기는 배추 포기를 셀 때나 쓰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혜가 부족하다. 아니 열정이 더 큰 건지도 모르겠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가고 싶다. 그 열망이 강해서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목표가 몇 개 동시에 생긴다면 결국 내 몸을 혹사하게 된다. 물론 즐겁고 재밌다. 몸에 문제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그러니 열정이 크다고 할까 지혜가 부족하다고 할까. 나를 폄훼하고 싶진 않다.
신혼 때 남편과 치악산 등반을 한 적 있다. 등산화나 등산복을 갖춰 입은 게 아니었다. 스틱도 물론 없었다. 평상복차림으로 무모하게 나선 치악산 등반은 쉽지 않았다. 물과 간식도 갖고 가지 않아 심한 갈증과 허기를 참으며 산에 올랐다. 중턱에 다다랐을 때 남편이 내 팔을 잡았다. 돌아가자고. 생명을 내놓고까지 갈 필요 없지 않으냐고. 그는 농담이 아닌 듯했다. 간절한 눈빛이었으니까.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거절했다. 혼자라도 가겠다고.
내가 앞장서고 남편은 뒤에서 묵묵히 따라왔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돌무더기와 맑을 바람, 하늘. 산 아래 펼쳐진 풍광을 무연하게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태고 적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 조금씩 차오르는 벅찬 감동, 그건 성취감이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고, 그대로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충일감으로 넘실거리는 그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아마도 그때부터 난 그 성취감에 매료되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그랬다. 삶의 동력이 떨어져 나른해지면 내 마음이 몸이 원했다. 힘껏 나를 밀어 올리며 온 힘을 다해 집중할 무엇을. 크고 작은 그것들이 그게 내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땐 새로운 변화였고, 일이었고, 배움이었고, 운전면허 취득 등이었다. 대청소일 때도, 산행일 때도, 목표 같은 무엇 때도 있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정하고 나면 앞만 보고 달린다.
이번에 목디스크 재발의 직접적인 동인은 바쁜 일정이겠지만 작은 또 하나의 계기는 제자들과 한 백일백장 쓰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완성도가 있든 없든 하루에 한 편씩 백일동안 매일 쓴다는 게 쉽지 않다. 요즘 소화해야 하는 하루 일과가 과부하 상태인 것을 감안할 때, 내게 심히 무리한 목표였다. 총무를 맡은 제자가 다시는 백일백장하잔 말 안 하겠다며 내 건강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제자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 선택은 내가 한 것이므로.
어쨌든, 오늘 이 글로 백일백장을 마치게 되었다. 보름 정도 늦어지긴 했으나 백편의 글을 썼으니까. 몇 명의 제자들이 시작했고 어느 정도 쓰긴 했으나 이번에는 성적이 저조하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참여한 제자들의 글쓰기 능력은 향상되었고, 글 쓰는 맛을 알게 되었다. 벌써 세 번째 한 백일백장 쓰기였으니 모두 참여해서 썼다면 삼백 편의 글이 모였으리라. 목표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시도한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본다.
속이 후련하다. 마라톤대회에서 늦게 들어온 선수처럼 늦어지긴 했으나 목적지에 이르렀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에 깊은 성취감을 느낀다. 그 맛에 취해 보면, 포기하는 게 용기이고 지혜라 해도, 그 맛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아, 그래도 이젠 조금 지혜로운 쪽을 택해야 하리라. 이번에 그것을 명확히 깨달았다.
그럼에도 제자들이 또 백일백장 쓰기를 한다면, 선생으로서 솔선수범해서 나서지 않을까. 그게 나의 성정이고 살아온 방법이니 어쩌겠는가. 그런 나를 알기에 제자인 총무가 다시 백일백장 쓰기 못하겠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백편의 글을 보면 함함하기만 하다. 이 성취감을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마치고 나니 후련함 뿐 아니라 뿌듯하게 차오르는 감동을 어찌 다 형언하랴. 그 맛에 오늘도, 나는 글을 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