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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ug 19. 2024

의기소침, 아! 의기소침

말 한마디 

     

나는 잘 터트리는 편이다. 순전히 일의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입으로 말해놓지 않으면 자꾸 망설이고 망설이다 일의 진행이 마냥 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로 터트리는 건 아니다. 그래도 웬만큼 해낼 자신이 있을 때 그런다. 그러다 보니 말해놓고 공수표 날리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의 말은 중천금이고 말만 좋은 건 나도 질색이니까. 이번에 단편소설집 퇴고 운운한 것도 그래서다. 


엊그제 지인과 통화하다 말이 나왔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해서 소설집 퇴고해서 출판사에 넘겼다고 했다. 그게 소설이 될지 어쩔지 모르지만 일단 넘기긴 했는데 걱정이라고. 내 말을 들은 지인이 말했다. 언제 소설을 배웠어요?라고. 아,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고 문창과와 국문과에서 수학했으며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20여 년 넘도록 했다고 하니, 그것과 다르단다. 개인지도를 받아야 한다며. 자기는 유명 소설가 아무개에게 배웠다고. 


이 무슨 말인가. 황당했다. 그런가요?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이게 소설이 되는지 어쩌는지 고민한 게 얼만가.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고 가르치고 써온 세월이 있는데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거리를 해봤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잘랐다. 그걸로 안 된다고. 사람들은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쓰나 보다 싶어 의기소침해졌다. 용감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산 나였는데. 


내게 소설 창작을 배운 제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윤 군이 늘 구상만 한다던 게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런 것 같고, 잘 쓰는 학생들은 타고나서 잘 썼던 것 같다. 자꾸 자신이 없어졌다. 의기소침, 아! 의기소침. 퇴고할 때보다 더 피가 마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잠까지 설쳤다. 아무리 용기를 내려해도 안 되고 힘이 빠졌다. 다음 날엔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다. 잠이라도 깊이 자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되지 않았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날 의기소침하게 만든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남의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쓰던 내가 왜 그 지인의 말에 이렇게 신경 쓰는가 말이다. 내 글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게 틀림없다. 노벨상을 탈만큼 훌륭한 작품은 아니겠으나, 최선을 다해 쓰고 고친 글인데, 말 한마디에 이렇게 의기소침해지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앞으로도 글을 쓰며 살 건데 이 정도에서 잠 못 이룰 정도로 영향받는다는 게 속상하기도 했다.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나다. 그러니 힘내야 한다. 출판사에 발송한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기다려보자, 어떤 반응이 나올지. 내 가슴을 다독여주었다. 결국 이렇든 저렇든 나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 보았다. 출판사에서 더 수정하라고 하면 고치면 된다. 아직 책으로 나온 건 아니니까 여지는 있다. 그 유명한 장군의 말처럼, 신에게는 아직……. 그렇다 아직 내겐 시간이 있고 여력이 있다. 


일어나 밥 먹고 산책하며 또 곱씹어보았다, 지인의 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니까. 꼭 이것이 정답이고 저것은 틀린 게 아니니까.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이 내게 요구되리라.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데 안 될 일은 없지 않은가. 산책하는데 땀이 줄줄 흘러 옷을 다 적셨다는 걸 집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더위를 느끼지 못한 채 깊은 생각에 빠졌던 듯하다. 


이제 나도 조심하리라. 말 한마디에 나처럼 의기소침할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잊었다. 이 나이 먹고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가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난 유치원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런가. 이렇게 생각하다 쿡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의기소침한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남의 말에 영향받지 말아야 한다. 배울 것은 배우고 아닌 것은 잊자. 


다독다독, 자꾸 가슴을 다독거렸다. 어제부터 아침바람이 조금 시원해졌다. 내 마음도 시원해지기를 바라면서, 의기소침에서 벗어나는 길이 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절거린다. 솔직한 내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 가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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