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명숙 Nov 08. 2024

양지꽃

  

그렇다. 백두산, 그 높은 곳에도 양지꽃이 피었더랬다. 얼마나 신기했던지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양지꽃은 서두는 내 모습이 우스운지 몸을 약간 흔들었다. 우리나라 야산 어디나 흔히 볼 수 있는 양지꽃은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느새 양지바른 곳에 피어 그 맑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래서 ‘양지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걸까. 노랗고 앙증맞게 작고 고운 꽃이 여기도 저기도 방긋, 방긋, 피기 시작하자 다른 봄꽃들도 다투어 피었는데, 백두산엔 유월 중순이 다가오고 있을 때 피었다. 


“우리 다리 성성할 때, 다닐 만할 때, 백두산에 가자!” 대전에 있는 친구가 전화를 한 건 2018년 봄이었다. 아직 현직에 있었고, 딸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심신이 분주한지라 다음에 가겠다고 했는데, 친구가 자꾸 졸랐다. 누가 조르면 넘어가는 게 내 성격이다. 줏대 있어 보이는 듯해도 사실은 썩 그렇지도 않다. 마음 약하기론 날 따라올 자가 없으리라. 지금 생각하면 그날 친구 말에 마음 약해진 건 잘한 일이다. 


백두산, 영산(靈山)이 맞다. 멀리 백두산 봉우리가 보일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기 시작했다. 거의 민둥산처럼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산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선조들의 활동무대였기 때문에 그럴까. 그러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듯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 거무스름한 산 중간중간에 희끗희끗한 것이 보였는데, 뭘까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보았을 때, 그건 녹지 않은 눈이었다. 유월 중순인데도 눈이 녹지 않았다. 그만큼 높은 산이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신비로움 등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안고 천지를 보기 위해 승차한 작은 지프차 창밖으로, 잔잔한 꽃들이 불긋불긋 피어 있는 걸 보았다. 앵초 같았다. 차 안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진 못했다. 하얗고 큰, 작약만 한 꽃, 담자리가 가끔 보였다. 나무는 거의 없었고 아주 작은 꽃들이 핀 게 보였으나 달리는 차 안이어서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걷고 싶었다. 걸어서 천지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저 들판 잔잔한 꽃들을 만지고 향기를 맡으며 이야기하고, 산바람을 맞고 싶었다. 하지만 흔들리는 지프차 창밖으로 보이는 들꽃에게 안타까운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선조들이 뛰고 놀고 생활하던 산인데, 겨우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만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직접 저 백두산 구석구석 걷고 만지며 숨을 토해내고 싶었는데, 또 교감하고 싶었는데.


그 모든 욕망을 가슴에 욱여넣으며 속으로 조금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는데 친구가 물었다. “울어? 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하품해서 그래.” 너무도 진부한 핑계를 대며 살며시 웃었다. 후에 그때 왜 눈물이 났는지 말했더니 친구는 문학가는 역시 다르다며 웃었다. 글쎄, 문학하는 사람이어서 그럴까. 마음이 약한 사람이어서 그럴까. 그것과 달리 내 세포 속에 웅크리고 있던 어느 선조의 유전자가 부스스 털고 일어나 백두산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아, 저곳 내가 뛰어다니며 심신을 단련하던 곳, 하면서. 


지프차에서 내려 천지를 보러 가는 길까진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다리 성성할 때 가자던 친구는 나보다 더 성큼성큼 올라갔다. 나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걷기가 힘들었다. 일시적인 고산병인 듯했다. 다리 성성하기론 친구보다 내가 나았다. 친구는 몇 번 무릎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으니.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간신히 걸음을 내디뎠다. 배낭에 넣어온 사탕을 하나 꺼내 물고. 


천지 앞에 섰을 때 그 감동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천지는 반쯤 얼음이고 반쯤 녹아 있었다. 녹은 부분은 파란빛을 띠었다. 다시 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 멋지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모습을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비애가 섞인 눈물이었다. 옆에 서 있는 친구의 볼에도 눈물 자죽이 나 있었다. 나와 유사한 감정이었으리라. 천지 앞에는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 손으로 눈을 집어 뭉쳐보았다. 촉감은 여느 눈과 똑같았다. 가슴이 자꾸 서늘해졌다. 


그렇게 천지를 보고 금강협곡에 가기 위해 조붓한 산길에 들어섰을 때, 노랗게 피어 손짓하는 양지꽃을 보았다. 함께 갔던 사람 중에 양지꽃에 시선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그 웅장하고 멋진 금강협곡을 보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열에서 이탈하여 잠시 숲 속의 꽃을 살폈다. 연보라색 제비꽃, 앵초, 양지꽃이 드문드문 보였다. 지프차 안에서 보았던 붉으래한 꽃은 앵초가 맞았다. 제비꽃이나 앵초는 조금 다른 듯했지만 양지꽃은 흔히 보던 여느 꽃과 같았다. 잠시, 고향 어디쯤에 서 있는 듯 착각했다. 


날 찾고 있던 친구가 뭐 하느냐고 말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꽃을 찍었어. 양지꽃이야. 어쩜, 우리나라 것과 똑같아.” 민망해서 너스레 떨었다. “당연하지, 여기 우리 거잖아.”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이 왜 그렇게 든든하던지, 난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백두산 산바람이 아직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 훈풍을 담고 있었다. 친구의 말에 깃든 긍정적 사고처럼. 언제 우리 것으로 되찾을 수 있을까. 멀어지는 양지꽃을 한 번 돌아다보고 금강협곡을 향해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