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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04. 2024

황매화

   

아직도 황매화 몇 송이가 말라가는 가지에 매달려 있다. 머리가 희어지는 나처럼 꽃송이마저 희끗희끗 생기를 잃었지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 비루하고 초라해 보여도, 꽃은 꽃이다. 시든 육체처럼 꽃도 그렇게 낡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흔적 없이 진다. 우리의 인생과 꽃이 무엇이 다를까. 모든 생명체는 다 같으리라. 나고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고 그러다 지는 원리가. 


황매화가 흐드러졌던 봄부터 여름까지 늘 그런 모습으로 있을 줄 알았다. 무심코 지나쳤다. 겨우, 참 예쁘다고 느끼며. 황매화 핀 천변 산책로를 걷다 발을 멈추었다. 희끗희끗 퇴색하고 있는 꽃잎은 저녁햇살에 비치어 신비로운 빛을 냈다. 황혼이 지나 죽음의 문턱에서 최선을 다해 빛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예의라고 해둘까. 


얼마 전, 어느 철학자의 부음을 들었다. 만난 지는 좀 되었고, 전화 통화를 마지막으로 한 건 작년쯤이었다. 몸이 안 좋다며 나아지는 대로 보자고,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철학자는 대학에서 퇴직한 후 한동안 내가 진행하는 시민대상의 강좌를 수강했다. 문학과 글쓰기를 좋아해, 내게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시며 원고뭉치를 내밀기도 했었다. 봐달라고. 수십 권의 철학서와 몇 권의 수필집, 심지어 장편소설까지 출간한 적이 있는데, 내가 문학하는 사람이라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인정하고 좋아하셨다. 


딸 내외가 손녀를 데리고 먼 나라로 이민 갔을 때, 그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하기에, 내가 모시고 드라이브를 한 적이 있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정원에 황매화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황매화를 한참 보면서 우리 손녀가 저 꽃보다 더 예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때 나는 삶을 누구보다 관조적 자세로 볼 수 있는 철학자가 이렇게 마음이 여리고 고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문학을 좋아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어릴 적에 살던 우리 집 울타리도 황매화로 되어 있었다. 싸릿대를 세우고 드문드문 심은 황매화가 번져 황매화 울타리로 보였다. 황매화 울타리는 마을에서 우리 집이 유일했다. 어머니가 꺾꽂이를 해서 그렇게 온 집안 울타리가 황매화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아니면 고모가 했을지도 모르고. 하도 어릴 적이라 그런 것을 난 기억하지 못한다. 그 집에서 열네 살까지 살았다. 


옛날 살던 그 집을 생각하면 황매화 울타리가 먼저 떠오른다. 황매화 꽃그늘에서 동생과 나는 소꿉놀이를 했고, 고무줄놀이를 했으며, 공기놀이도 했다. 황매화가 노랗게 온 뒤란을 밝히면 옆에 있는 두 그루 앵두나무에도 앵두가 붉어지고, 장독대 앞에 심은 쐐기풀도 잎사귀가 무성해졌다. 어린 나에게 그건 풍요로움이었다. 더 이상 어떤 것도 바랄 게 없는. 


이제 나를 좋아해 주시던 아버지 같은 철학자도, 옛집도, 사라졌다. 문상하면서 조금 울었다. 자꾸 눈물이 흘렀지만 참았다. 모두 이렇게 이별해야 하는 게 어쩌면 인생의 순리겠지만 슬펐다. 영정 사진 속에서 인자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하늘에서도 여전히 책 읽고 글 쓰시라는 말만 되뇌었다. 문상을 마치자 유족들이 어디서 오신 누구냐고 물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므로. 어느 대학에 있던 아무개라고 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고, 고인이 자주 말씀하셨다고. 


한쪽에 고인이 최근까지 저술한 책이 놓여 있었다. 한 권 외에 모두 받은 거여서 그 한 권을 챙겼다. 2021년에 낸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선생님과 만난 게 그렇게 오래되었던 거였다. 책을 출간하면 꼭 사인해서 먼저 한 권 주시며 감상을 부탁하곤 했는데. 나오다가 멀리 이민 갔던 딸과 그렇게 예뻐한 손녀를 보았다. 그렇다. 황매화보다 손녀가 예뻤다.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했더니, 딸과 손녀가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잡았다. 


언젠가 동생과 예전 살던 우리 집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동생도 황매화 울타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어느 땐 눈이 내려도 몇 송이 피어 있었다며 옛날이 그립단다. 익은 앵두를 그 동생 입에 쏙쏙 넣어주면 방긋 웃던 아기가 이젠 환갑이 지나고 손주를 본 지도 오래다. 나는 황매화만 보면 내가 따서 입에 넣어주는 앵두를 제비처럼 받아먹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사람은 추억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걸까. 추억이 많으면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리라. 인정한다. 나는 추억이 많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꽃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더 풍요로워진다는 걸 의미하는지 모른다. 기억에 담아 둔 것도 많으니까. 아팠던 것, 슬펐던 것, 행복했던 것까지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하나하나 꺼내보며 음미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산책로에 핀 황매화 앞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말라가는 가지에 아직도 매달린 황매화는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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