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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11. 2024

물봉선

꽃, 그냥 꽃이야

   

지금쯤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 물봉선이 다 졌겠다. 여름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꽃이었는데. 물가에 피어나고 봉선화를 닮아 ‘물봉선’이란 이름이 붙여졌을까. 산이나 들의 습지에 피는 봉선화 닮은 꽃, 물봉선. 진한 빨간 꽃을 따서 손톱에 올려놓으면 금세 물들 것 같은 꽃. 산자락의 골짜기 따라 노란색, 흰색, 빨간색 물봉선이 줄지어 피면 한여름 더위도 잊을 정도로 고왔다.


그날 나는 남편과 함께 운동 겸 더위도 식힐 겸 남한산성에 올랐다. 남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옛 모습을 재현하여 짓고 있는 행궁을 지나, 소나무 숲길로 접어들었다. 보행이 원활하지 않은 그는 몇 번이고 힘들다며 내려가자고 했지만 조금만 더 걷자고 독려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결국 그는 불평하다 하다 숲 속에 놓인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나는 땀을 닦았다. 그도 힘들겠지만 부축하고 걷는 나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때가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를 보살피며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학업을 놓지 않고 계속했기 때문이다. 병원비와 우리 셋 학비로 통장은 바닥이 나고 남편은 특별히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답답한 현실에서도 살기 위해선 걸어야 했고, 걸으면서 힘을 내야 했다. 더위 또한 기승을 부리던 팔월이었다. 몸에 척척 들러붙는 옷가지처럼 내게 붙은 암담한 현실을 떼어낼 재간이 없어 휘청거렸다.


그런 중에도 가끔 행복감을 느꼈다. 남편의 병세가 실오라기만큼이라도 나아진 듯 보일 때였다. 실제론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가족의 소망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걸까. 가끔 우리는 그의 병세가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환호하며 감격하곤 했다. 신기루 같은 것일지라도 그랬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환각인지 신기루인지 모를 그것에 기대어 남편이 나아질 것을 믿으며, 위태롭지만 강인하게 삶을 이어갔다. 그만 나으면 우리는 전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아픔을 알고 난 후니까.


의자에 앉은 그에게 물과 간식을 먹게 하고 다시 또 우리는 산 위를 향해 걸어야 했다. 걷기 싫다는 남편을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바로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물봉선이었다. 골짜기마다 지천으로 핀 빨간 물봉선. “저기 봐요, 예쁜 꽃. 이름 가르쳐 줄게요, 물봉선이에요.” 내 말에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이름을 외우면 중턱에 있는 국숫집에서 맛있는 잔치국수를 사주겠다고 설득했다. 그 말에 그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물봉선, 물봉선, 물봉선. 넉점반, 넉점반, 넉점반. 그가 잊지 않으려는 듯 걸으며 되뇌는 물봉선에 윤석중 선생의 동시 넉점반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말이다. 쓰러진 후, 서너 살짜리 아기가 된 그는 하는 행동마다 귀여움이 뚝뚝 떨어졌다. 힘들게 할 때가 더 많았지만. 골짜기마다 핀 물봉선을 감상하며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저 꽃 이름이 뭐지?” 물봉선이라고 말해주니 또 물봉선, 물봉선, 물봉선 되뇐다.


중턱에 있던 국숫집이 저만큼 보였다. 국숫집 앞에 핀 물봉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무슨 꽃이냐고.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봉선 이름을 벌써 잊었다. 그의 기억력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표정이 아주 슬퍼 보였다. 물, 그다음이 뭐냐고 해도 모르겠단다. 물봉, 다음이 뭐냐니까 그제야 환한 얼굴이 되어 외쳤다. “물봉선!” 그도 나도 박수를 쳤다. 그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을까. 나는 그렇게라도 기억해 낸 것이 대견했는데.


우린 국숫집에 들어가 잔치국수를 먹었다. 물봉선을 기억하는 기념으로 두부까지. 그는 유난히 두부를 좋아했다. 국수와 두부로 포만감이 든 우리는 더 즐겁게 수어장대까지 올라갔는데, 수어장대 근처에는 물봉선보다 노란 괴불주머니와 짚신나물 꽃이 피어 있었다. 물봉선은 습지에 피는 꽃이니까 그런가 보다. 산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고, 내려오는 길에 우린 네잎클로버를 여섯 개나 발견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니 또 물봉선이 보였다. 다시 물었다. 무슨 꽃이냐고. 아, 남편은 이미 그 꽃 이름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게 아닌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더니, “꽃, 그냥 꽃이야.”라고 했다. 맞다, 물봉선이면 어떻고 괴불주머니면 어떤가. 모두 그냥 꽃이다. 아픈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남녀노소도, 다 그냥 사람인 것처럼. 서너 살 정도인 사람이 이렇게 철학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 손을 꼭 잡고 내려오는데 그가 꼭 인생의 스승처럼 생각되었다. 내가 그를 부축하고 손을 잡은 게 아니라, 그가 날 잡고 있는 듯했다.


이제 중턱에 있던 국숫집은 철거되었고, 그도 부여된 세상의 시간을 다 쓰고 본향으로 돌아간 지 오래다. 하지만 물봉선이 잊히지 않듯 국숫집도 그도 내 기억 속에 영원하리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보이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사는 게 얼마나 협소한 사고인가. 이젠 좀 더 사고의 폭을 넓히며 오늘을 살고 싶다. 아프다 해도 추억은 그리움이고 내 삶을 말랑하게 하는 것이므로.


그날 따온 네잎클로버는 시집 속에 고이 끼워져 있다. 누렇게 변했지만 형태는 그대로다. 내 기억 속의 그가 그대로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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