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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15. 2024

금계국

    

천변 산책로에 금계국이 다 졌다. 드문드문 한두 송이가 남아있을 뿐이다. 봄에 금계국 새싹이 뾰족뾰족 나올 때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기쁘게 해 줄까, 얼마나 또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까. 새싹이 올라올 적엔 꼭 망초 풀 같은데, 오월이 되면 벌써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해, 여름 내내 천변을 노란 꽃 대궐로 만드는 꽃, 금계국.


사십 대 후반, 완주군에 있는 모 대학에 강연 요청을 받고 갔다 오는 길이었다. 불현듯 중학교 때 각별하게 지내던 후배 ‘옥’ 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 ‘불현듯’이다. 그렇다곤 해도 그 ‘불현듯’이라는 게 전혀 마음에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수십 년 세월을 흘려보냈다. 가끔 전화를 통한 목소리로만 그리움을 서로 달래며. 마침 지나는 길이었다. 


옥이가 일하는 곳은 면소재지에서도 한참 들어갔다. 옥이는 마침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꼭 보고 가라는 거였다. 일하고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었지만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물어물어 찾아갔다. 몇 번 차를 돌렸고, 몇 번 이게 맞는 길일까 반신반의했다. 오로지 옥이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포기하지 않고 산속으로 난 조붓한 편도 일 차선 길을 오르고 내리며 찾아갔다. 옥이가 일하는 곳 앞에 다다라 차를 세우고 보니, 앞이 온통 금계국 꽃밭이었다. 


옥이는 중학교 1년 후배다. 면에 있는 작은 중학교여서 한 학년에 반이 두 개밖에 없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여섯 개 반이니 서로 잘 알았다. 옥이는 중학교 때 유난히 나를 따르던 후배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끔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갔다. 한 학년 아래인 옥이는 동생이 되고 나는 언니가 되어 자매처럼. 알고 보니 옥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생일이 두 달 늦었다. 친구로 지내자고 했지만 옥이는 안 된다며, 깎듯이 언니 대우를 해주었다. 


우리의 가정형편은 비슷했다. 나는 아버지가 안 계셨는데, 옥이는 어머니가 새엄마였다. 가족의 결핍된 애정을 서로 조금씩이라도 그렇게 채워 나갔던 걸까, 소녀 적 감성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우정은 주위 친구들이 모두 알 정도였다. 점심 먹고 난 후에 우린 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 있는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서로에게 있는 것을 나누기도 했으며,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이별과 만남은 필연적이지 않던가. 내가 졸업한 후 우리는 헤어졌고 편지로 우정을 이어갔다. 만나지는 못했다. 지금처럼 교통편이 좋은 게 아니었고 나는 벌써 객지로 나가 산업현장에서 일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허덕이느라, 가끔은 옥이를 잊기도 했다. 또 훌륭하게 되지 못해 떳떳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옥이가 보내는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모든 게 미숙한 나였다.


몇 년이 지나 간신히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옥이가 학교로 찾아왔다. 졸업한 후 3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옥에게 꼭 진학하도록 강권했다. 옥은 울었다.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니 같은 열망이 나는 없어. 꼭 공부를 해야 해?” 눈물 흘리며 말하는 옥에게 꼭 그래야 한다고 강력히 말하는 내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렸다. 갓 스무 살인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험한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다음 해, 옥이가 찾아왔다. 옥이도 우리 학교에 입학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진학 못한 학생들을 위해 고등학교에 부설된 학교였기 때문에, 누구라도 의지만 있으면 들어올 수 있는 학교였다. 옥이와 나는 손을 맞잡고 콩콩 뛰며 반겼다. 잘했다고, 이제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자고, 서로 격려했다. 우리는 학교가 파한 후 가끔 같이 풀빵을 먹었고 종로 거리를 걷기도 했다.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불과 반년 후, 내가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바람에 우리는 또 헤어졌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삼 년쯤 지났을까. 옥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혼식 날 본 옥이는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잘 살아야 한다며 손을 잡자, 언니보다 먼저 결혼해서 미안하다며 환하게 웃던 옥이. 가끔 전해주는 결혼생활은 행복한 듯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 삶이 지난해서 그랬을까, 나는 가끔 옥이를 잊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이십 년이 넘었다. 세월처럼 야속한 게 또 있을까. 편지에서 휴대전화로 소식을 전할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옥이를 기다리며 그 회사 앞 꽃밭에 핀 금계국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옛날 일이 하나 둘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옥이는 얼마나 변했을까. 나는 또 옥에게 어떻게 보일까. 노랗게 핀 금계국이 바람이 한들거리듯 내 마음도 한들거렸다. 그러다 금계국에 매혹되어 무념하게 꽃만 보고 있었다. 노란색은 마음을 순수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게 사라지고 오로지 노란 금계국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언니! 언니 맞지?” 옥이다. 우리는 둘이 얼싸안았다. 나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옥이지만 어릴 적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부득이 자기 집에 가자고 옥이 이끌었다. 옥은 네 명의 아이를 낳고 농사짓는 남편과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비라도 보탤 심산으로 근처 회사에 다니고 있단다. 짧은 만남 후에 긴 헤어짐, 우린 늘 그랬다. 어스름이 내렸고 나는 돌아가야 했다. 내 차에 갓 수확한 마늘과 감자 등의 농산물을 옥이 남편이 잔뜩 실어주었다. 


그 후 옥이를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전화는 주고받는다. 이제 회사도 그만둔 지 오래고 아이들도 결혼해서 다 잘 산다며, 언제든 놀러 오라고 옥이는 성화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는 꼭 한 번 만날 생각이다. 만나서 말하리라. 잊지 않았다고, 금계국을 볼 때마다 더욱 그리웠다고,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말하리라. 그리고 어릴 적 우정을 이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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