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ex,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뜬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앱이다. 퇴직을 3년 앞두고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우리 모두 그 시대를 건너왔기 때문에 얼마나 공포였고 심각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강의조차 비대면으로 하던 그때 학교에서 강의나 회의할 때 사용하던 앱이다. 다시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대면으로 강의나 회의를 하므로 웹엑스를 사용할 일은 없다. 특별한 경우에도 줌이나 웨일온을 사용한다. 학교에서 퇴직한 현재 웹엑스는 삭제해도 되는 앱이다.
엊그제 컴퓨터를 점검하다 깜짝 놀랐다. C드라이브에 빨갛게 표시된 게 아닌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시이다. 사용하지 않는 앱이나 문서를 지워야 한다. 웹엑스를 지우는 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인데 삭제하지 못했다. 꼭 필요한 문서를 D드라이브와 USB에 옮기고, 지워도 될 만한 것은 모두 지웠다.
나는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일까. ‘버리기’를 못한다. 잊어야 할 사람은 잊어야 하고, 버릴 물건은 버려야 하며, 안 해도 될 기억은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게 안 된다, 몰라서 아니라 알면서도. 알면서 못하는 건 괴로운 감정을 담보로 한다. 잊어야 할 사람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버리지 못한 채 물건을 쌓아둔 내가 한심스러울 때 있다. 기억하기 싫어, 억지로라도 꿈에서라도, 잊고 싶은 사람이나 사건이 생각나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빠질 때도 있다.
웹엑스는 내 컴퓨터에서 버려야 할 앱이다. 퇴직한 지금 그 앱이 필요 없다.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앱을 열고 로그인하면 재직하던 학교 사이버캠퍼스가 열린다. 그 안에는 학생들과 내가 수업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학생들이 올린 과제와 내가 해준 피드백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이. 그것을 읽다 보면 그 시간으로 나는 돌아가 있다. 지금도 그 강좌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느낀다. 학생들과 내가 교감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마치 추억이 현재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오래전 일기장을 들춰볼 때 감지하는 것과 유사하다. 70년대에 쓴 일기장을 꺼내 읽으면 오십 년도 더 전의 일이 어제 일인 듯 떠오른다. 일기는 하루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소재로 쓰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내가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일기장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80년대에 쓴 일기장에는 신혼시절부터 두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반목과 화해를 넘어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까지.
언젠가 두 상자나 되는 일기장을 버리려고 했다. 행복함보다 고뇌와 고단함이 기록된 그날들을 잊고 싶었다. 그 일기장을 가끔 읽다 보면 언제나 그때 그 감정으로 회귀되어 눈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그 시절을 내 삶에서 지우고 싶었다.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넓게는 사회, 좁게는 가족이나 남편에게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삭제하고 현재의 삶과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기장을 버리지 못했다. 어리석고 부족하고 나약하다 해도 내 삶의 궤적이므로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꺼내보며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주 싫지만도 않았다. 일기장을 버릴 수 없는 것이나 웹엑스를 지울 수 없는 것이 같은 맥락일까. 일기장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렇다 쳐도 웹엑스는 삭제해야 하는 게 맞는데. 무엇보다 컴퓨터 용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언젠가 일기장이나 그 앱도 버리고 삭제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일종의 저장강박증이라고 해도, 어리석은 일이라 해도. 왜냐하면 무엇보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므로. 옛날은 옛날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실수가 있고 부족함이 있더라도, 무모하리만치 치열하게 살며 미래를 꿈꾸던 날도 거기에 들어있고, 그건 모두 내 삶이므로.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이 형성되었고, 오늘은 또 내일을 만드는 근본이 되는 것이므로.
새벽에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열었다. 로그와 함께 뜨는 문자, Webex. 컴퓨터가 제대로 부팅되었다는 신호다. 화면에서 지우고 한컴오피스를 클릭한다. 하얀 백지 같은 화면이 새롭게 뜬다.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한 자 한 자 키보드에 입력하자 화면에 정확하게 박힌다. 이렇게 나만의 새로운 하루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