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최명숙

한 친구가 있다. 정이 많고 이웃에게 나누기 좋아하는 친구다. 나와 같은 반이었고 짝꿍일 때 많았는데 한 번도 다투거나 마음이 불퉁했던 적 없는 순하고 착한. 지금도 그 성정은 여전하다. 친구는 음식점을 운영한다. 그 지역에서 꽤 소문난 맛 집이다. 양념된 오겹살과 닭갈비를 오징어와 함께 숯불에 구워 파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다. 나의 사적인 견해다.


그 정 많은 친구는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 서너 사람에게 고기와 밑반찬을 해서 나눠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어르신이 친구가 해준 반찬을 먹고 탈이 났다고 했다. 가장 신선한 고기와 식품으로 만든 음식인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이 그러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더 신경 써서 가끔 음식을 만들어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게 되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한 일이고 노인들이 혼자 사는 게 안 돼 보여서 한 일이었는데,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해준 음식 탓을 하니 못하겠더란다. 음식 먹고 머리가 아팠다느니, 배가 아팠다느니, 싱겁다느니, 짜다느니, 파가 많이 들어갔다느니, 뭐가 덜 들어갔다느니.


친구는 이제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며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노인이니까 몸 상태가 안 좋은 날이 있을 테고 기분도 그럴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친구가 해준 음식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며. 처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입맛에 맞추려고 애를 써봤지만 이래도 저래도 서너 명의 비위를 맞출 수 없더라고. 그야말로 호의가 계속되니까 노인들은 그걸 특권으로 안 모양이었다.


그 일로 내 친구는 어지간히 시달렸다. 바쁜 중에 병원에 모시고 가랴 약 사 나르랴 살펴보러 가랴 친자식이라도 쉽지 않은 일을 음식 해준 죄로 기꺼이 감당했다. 더구나 노인의 자식들까지 전화하고 찾아와 왜 맘대로 음식을 해드렸느냐고, 누굴 거지 취급하느냐고 억지를 부렸고, 음식을 검사의뢰 해야 한다면서 괴롭혔다. 그러니 친구가 고개를 저을 만도 하다. 이제 누구에게 선을 베풀고 말고 할 것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크게 선을 베풀며 살지 못했다. 당면한 일 해내는 것만도 힘에 부쳤고 그것에 급급했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가족이나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해야 하리라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할까. 적어도 폐는 끼치지 말고 살자는 주의였다. 개인에게나 가족에게나 나라에도. 그래서 내야 할 세금은 꼬박꼬박 연체하지 않고 냈으며, 약속은 웬만하면 지키려 애썼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도 연체하지 않았다. 그거야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러겠지만.


사는 게 좀 나아져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누가 도움을 청했을 때 될 수 있으면 들어주려 애썼다. 금전 문제만 아니면. 먼저 세상에 태어나 배우고 익힌 사람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편이다. ‘금전 문제만 아니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는 수차례 돈을 빌려줘서 떼거나 마음이 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서 빌려준 것 아니고 남에게 빌려서 준 것이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말이다. 그 일로 지금은 빌려줄 것도 없지만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진 않는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그런 나니까 내 차에 사람을 동승시키는 게 크게 어려울 일인가. 함께 여행 다니는 모임이 있었다. 거의 내 차로 갔는데 그게 망설여지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당시엔 큰 차를 가지고 있었고 운전을 좋아하니까 자타가 당연하게 여겼다. 그게 계속되니까 가끔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예를 들어, 여행 전에 누가 전화해서 차를 점검하라느니 세차를 하라느니 할 때였다. 똑같이 회비내고 다니는데 월권이다 싶었고 마음이 상했지만 여행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 동행자들이 나의 호의를 당연한 특권으로 여긴다고 느꼈을 때 나는 가차 없이 그 짓을 그만두었다.


친구 A가 자기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게 영향을 끼친 것도 같다. 여행 다닐 때 주로 내 차에 동승해 다닌다는 걸 알고 A가 말했다. 아주 위험한 짓이라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돌변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모두 지인들인데 그럴 리 없다고 했더니 경험담을 말해주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동료인데 카풀을 한 달씩 돌아가며 하기로 했단다. 마침 A가 운전할 때 작은 사고가 났고 둘 다 조금 다쳤다. 그런데 그 동료는 A에게 합의금을 요구했고 결국 거액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고. A는 좋은 때는 다 좋은데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짓, 사전에는 몸이나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라고 되어 있다. 평범하다, 어떤 행동이니까. 이 글에서 나는 강하면서 부정적 의미를 가진 단어로 사용했다. 그렇다. 친구나, A나, 나나 선한 뜻을 가지고 한 호의가 상대에게 특권으로 인식될 때, 그건 짓으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그런 적 없을까, 깊고 자세하게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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