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꾸준히 해야 할 것, 하나

by 최명숙


평생 꾸준히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학문이다. 하고 있는 만큼만 하면 현상유지는 되는데, 잠시라도 멈추면 퇴보하고 만다. 그만큼에서 멈추는 게 아니고 퇴보한다는 게 두렵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많은데 퇴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보나 지식을 모른다고 해서 답답한 노릇은 아니다. 컴퓨터나 *튜브만 열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요즘엔 챗지피티가 세상만사 알려주지 않는 게 없다. 그 지식들의 오류나 그 외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한 가수가 있다. 송창식 선생. 기타리스트 함춘호 선생과 가끔 나와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그는 하루에 7~8시간 기타와 노래 연습을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이만큼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젊은 시절과 다르지 않은 기타와 노래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게 재능뿐만 아니라는 사실에. 나도 조금씩이라도 진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의 경우는 기능적인 것이겠으나, 모든 배움이 그렇지 않은가.


물론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학문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곧 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으로 인격수양을 하는 공부다. 또한 이것과 병행해야 할 것이 있는데,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세상에 쓰이기 위한 학문이다.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이 조화를 이루어야 문과 질을 갖춰 빈빈(彬彬)이 된다. 이 둘 중에 먼저 해야 할 공부를 묻는다면 당연히 위기지학이다. 위인지학에 기울어져 있는 요즘 세상에 이런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느 시절 고릿적 이야긴가 하리라. 그래도 내가 지향하는 건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다.


그 가수의 이야기처럼 하루에 7~8시간씩 학문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일을 하면서 촌음이라도 아껴 쓰며 정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나아가려면 그래야 한다. 나아가서 되는 것이 무엇일까. 제대로 사람 노릇하는 것 아닐까. 인위적이지 않은 인간 본연의 속성, 이것이 밝은 덕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욕심을 멀리하고 선에 머물러 잠시라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추구하는 게 진정한 학문인데 그게 쉽지 않다.


내가 강의하는 한문 수업에 특별한 수강생이 있다. 나와 자리를 바꿔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한문 실력이 뛰어났다. 나는 이 강좌를 맡고 한동안 고민했다. 계속 할까, 사임할까. 사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지금 2년째 이어오고 있다. 고민한 이유는 강의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다. 또 문학이나 글쓰기처럼 전공이 아니기에 모르는 게 많았고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특별한 수강생의 말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저와 자리를 바꿔야 할 정도인데 왜 이 수업에 들어오시느냐고 물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안 하면 잊어버린다고, 또 많이 배우고 있다고. 그의 겸손한 태도에 감동받았다. 송창식 선생의 말에도 특별한 수강생 말에도 감동했다. 그와 같은 대화 후 그만 둘 생각을 접었다. 처음엔 명심보감, 다음엔 대학, 지금은 논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니, 배우고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르치면서 내 학문도 자라고 진보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그 강좌를 그만두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한 번 수학 후, 혼자 한문 공부를 하려고 몇 년 동안 노력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이러다 그나마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겠다 싶었을 때 강의 제안이 들어왔고, 고민 끝에 맡게 되었다. 현대문학을 전공한 내게 만만치 않은 강좌였지만.


그 강좌를 맡았다고 해서 큰 수입이 들어오는 건 아니다. 교통비와 식사비 정도밖에 안 되는 사례를 받지만 학문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대가와 상관없이 즐겁다. 지금까지 해온 문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면, 한문 공부는 더 근원적인 것을 수양하고 넓히는 학문이어서 둘이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당연히 글쓰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위기지학으로서 공부가 위인지학과 연계된다. 그러니 할 만한 게 아닌가.


평생 꾸준히 해야 할 것 중 첫 번째에 ‘학문’을 놓는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 그렇게 익히고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할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즐거우리라. 그게 함께 공부하는 동학들과 나누고 누리는 것이라면 더더욱. 거기서 더 앎의 영역을 넓히고 지극하게 한다면 이에 더 의미 있는 게 있을까. 마음 수양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양식도 잘 익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학문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를 여기에 꼭 묶어두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는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가. 쉽게 지식을 얻는 방법까지도. 손대지 않고 코풀 정도로 가볍고 쉬운 것들이, 진중하고 묵직하게 배우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비웃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리석어 보이는 쪽을 택한다. 내 성향이 그렇다. 글 읽기와 글쓰기에 염증내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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