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수 줄기가 하나 둘 누렇게 변하더니 모두 죽어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사람도 살다 죽는데 식물이 죽었다고 해서 뭐 대수인가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도 속상했다. 생명을 가진 존재의 죽음은 언제나 그렇다. 하찮은 식물이라 해도 그러한데 사람의 죽음에야 거론할 여지가 없다. 오늘은 금전수 이야기다.
돈을 부르고 집안에 두면 복이 굴러들어 온다고 해서 금전수라고 했다던가. 돈나무라고도 하니 이름 한 번 재밌다. 인간치고 돈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어느 집이나 사무실에서 흔히 보는 식물이 되었다. 의미로만 본다면 개업이나 이사 선물로 이만한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관엽식물로 타원형 잎사귀가 싱싱하고 생기 넘쳐 보이므로.
그뿐 아니라 키우기도 까다롭지 않다. 가끔 물을 주고 통풍 잘되는 창가나 복도에 놓아두면 파란 잎사귀가 어찌나 실하고 윤기 반질반질하게 자라는지 모른다. 가끔 촉 하나가 올라와 굵어가고 잎이 푸르러 가는 걸 바라보는 재미 또한 그만이다. 꽃이 피지 않으나 사철 싱싱한 초록 잎을 볼 수 있다. 식물 키우기는 걸 좋아하면서도 관리가 부실해 죽이는 일이 자주 있는데, 금전수를 키울 때는 특별히 관리할 게 없다. 물을 너무 자주 주어도 안 되니 나 같은 사람에겐 잘 맞는다.
기운이 빠지거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 나는 한참 들여다보며 힘을 내기도 했다. 그 초록 잎사귀는 심드렁한 일상을 깨우고 지친 일상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힘을 가졌다. 줄기는 강인한 느낌을 주고 의지적이어서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다스려지기도 했다. 조용하지만 내면이 강한 어떤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는 식물이 바로 금전수였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나에게 반려식물이었다고 할까. 그만큼 나는 애정을 가지고 7년여 세월 동안 키웠다.
잎사귀가 누렇게 변하고 줄기가 허물어지는데도 금전수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한둘쯤이야 그렇더라도 여섯 줄기가 모두 그렇게 병든 것처럼 시름시름하다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허무했다. 모두 그렇게 죽고 나자 망연자실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렇게 싱싱하던 초록 잎사귀가 한두 달 사이에 다 죽고 말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이 가혹해서 가슴이 쓰렸다.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새로 살까, 그래도 내가 키우던 그 금전수는 아니잖은가,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죽은 자식 뭐 만진다는 격으로 나는 소용없는 일에 매달렸다. 사람도 죽고 사는데, 이깟 식물 하나에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 그동안 관리 못해 죽인 식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는 무심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성격이 변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게 흐르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식물이 죽고 나면 나는 바로 화분을 처리한다. 버리든지 다른 식물을 심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도저히 화분에 다른 식물을 심지 못하겠고, 버리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그것도 반년 가까이나. 다른 식물에 물을 주며 가끔 한 번씩 물을 조금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절로 나오는 한숨 속에 아쉬움이 섞여 나왔다. 왜 갔어, 내가 무얼 잘못한 거니, 혼잣말도 함께. 그러다 한숨을 또 크게 내쉬며 한심한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집안 어른들을 여럿 보내드렸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보냈으며, 좋은 친구를 보낸 내가 이 무슨 짓인가 싶기도 했다. 식물 하나 죽었다고 이렇게 상심하다니, 사람과 식물을 동격으로 두는 건 절대 아닌데 마음이 그렇게 내달리기만 했다. 이러한 성정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기억 깊은 곳에 내재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미성숙한 게 틀림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마치면 자괴감까지 들곤 했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다른 식물에 물을 주고 금전수 화분에도 물을 주려다 눈이 번쩍 뜨였다. 연초록 뾰족한 잎사귀 하나가 쌀눈만큼 보이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만져보았다. 아! 금전수 싹이었다. 보드라우면서도 꼿꼿한 자태를 그 작은 싹에서 느낄 수 있었다. 너, 너 맞지? 아니 아들이나 딸이니? 다 좋아! 좋아! 너여도, 네 후손이어도 다 좋아! 뛸 듯이 기쁘다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금전수는 다시 싹이 나왔고 지금은 제법 자랐다. 죽은 것 같았는데 죽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소 습관대로 화분을 바로 처리했다면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아쉬워서 미처 버리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 이걸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해야 하나, 게으른 사람도 한몫 부지런한 사람도 한몫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얻은 결과여서 딱히 교훈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지금 금전수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