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꽃과 노화(老花)

by 최명숙

내 머리가 정신없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린 또온이가 뭘 안다고 그리 성화를 대는지 원. 어리다고 무시해서가 아니고, 만 네 살 구 개월 이십 일짜리 또온인데. 보름 전에 만났을 적에도 그랬다. 내 머리를 한동안 미소 띠고 바라보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씩 웃었다. 자꾸 물으니 그때도 그렇게 말했다. 어제 만났을 때는 아예 보자마자 대뜸 내뱉는 게 아닌가. 희한하다. 어린 게 뭘 안다고 자꾸 그러는지 원!


딸이 말한다. 또온이는 본래 패션이나 머리에 관심이 많다고. 그렇다고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만 쳐다봐! 나도 웃으며 큰소리하니 또온이는 입과 눈에 웃음을 가득 담고 같은 소리를 외쳤다. 거울을 보았다. 내 머리가 정신없어 보이긴 했다. 또온이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 십상이라 해도 그런 말까지 하다니, 어떻게 해서라도 내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또온이도 따라가겠단다. 두툼한 점퍼를 꺼내 입으며 나보다 먼저 나섰다. 딸네가 다니는 단골 미용실인데 또온이에겐 익숙한 곳인 모양이었다. 전에 나도 한 번 간 적이 있긴 해도 어사무사 길을 잘 모르겠기에 도움이 될까 싶고, 같이 걷기도 할 겸 또온이 손을 잡고 나섰다.


바람은 차가웠으나 하늘은 맑았다. 편의점 지나고 마트를 지났다. 또온이는 내 손을 잡고 가면서도 해찰 부렸다. 저기서 아이스크림 사요, 과자 사요, 형아 꺼랑 또온이 꺼랑 엄마 꺼랑 아빠 꺼랑 사요. 내 것은 안 사줄 거야? 아, 할머니 꺼도 사요. 씩 웃었다. 하늘보다 더 시리도록 깨끗한 이가 환하게 드러났다. 벗겨진 점퍼 모자를 씌워주었다. 또 웃었다. 아기 적부터 유난히 잘 웃는 또온이.


큰 개가 지나간다. 우와! 무척 큰 개다! 또온이가 크게 말하는 게 들렸나 보다 견주도 개도 우리를 쳐다보았다. 또온이는 약간 움찔하면서도 또 웃었다. 견주도 웃었다. 타박타박 저벅저벅 우리 둘의 발자국 소리가 맑은 하늘에 울려 퍼졌다. 또온이가 갑자기 나를 올려다보며 또 씩 웃었다. 왜? 다리 아파? 네! 목소리가 힘차다. 업어줄까? 네! 더 힘차다. 내가 등을 돌려댔다. 또온이가 업혔다. 이런, 일어나려는데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간신히 업고 다섯 걸음 걸었는데 내려 달란다. 왜 그러느냐니까 힘드셔서 안 된다는 거였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또온이.


우리는 다시 또 손을 잡고 걸었다. 미용실이 저만큼 보였다. 다 왔어요, 저기예요. 또온이를 길 안내자로 데리고 나서길 잘했다. 길만 건너면 되었다. 길 건너 중국음식점 앞을 지날 때였다. 맛있는 냄새가 나요, 우리 짜장면 먹고 가요. 또온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왕갈비를 배 두드리며 먹은 지 불과 삼십 분 지났을 뿐인데 무슨 소리냐며, 미용실 쪽으로 향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지라 딸이 한 말이 있다. 또온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먹는 것’과 ‘못 먹는 것’ 두 가지로 나누는 아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온이와 세 살 차이인데 몸이 전혀 다르다. 온이는 가느다란 나무젓가락 같다면 또온이는 오동통한 내 너구리 같다. 또온이는 외탁에 또 외탁을 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친정 쪽을 닮았다. 골격이 크고 통통하다. 그렇다고 뚱뚱하진 않다.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안 찌는 체질인 듯하다. 나의 인디언보조개까지 닮은 또온이니까, 골격이 닮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중국음식점으로 들어가자고 뻗대는 또온이 손을 끌고 간신히 미용실 계단으로 올라갔다. 중간쯤 오르자 포기했는지 순순히 올라갔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힘차게 인사해서 웃음이 나왔다. 점퍼를 벗고 나보다 먼저 의자에 앉는 또온이를 보고 미용사들도 웃었다. 저는 염색하지 않을 거예요. 열 살 되면 할게요. 미용사가 다가오자 대뜸 말했다. 얼마 전 온이가 염색한 게 생각나 그러는 것 같았다. 또온이의 말과 행동은 웃음을 자아냈다. 머리를 깎고 감고 다시 손질한 또온이는 깎은 밤톨처럼 야무져 보였다.


이젠 내 차례다. 또온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그냥 안 깎을래, 집에 가자. 또온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 돼요! 그럼 사람들이 ‘못난이’라고 해요! 깎아요, 어서요. 또온이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또온이 말에 미용실에 웃음이 넘실거렸다. 못 이기는 척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또온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았다. 득의에 찬 미소였다. 그 미소는 내 머리를 다 자를 때까지 지속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내가 머리 깎으니까 예뻐? 난 자르지 않고 기를 생각이었는데.” 또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안 깎으면 사람들이 ‘못난이’라고 한다니까요.”라고. 하, 일관성 있다. 나는 머리카락 정리가 안 되면 ‘못난이’로 보인다는 걸 또온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이제 못난이로 안 보여?” 내 물음에 또온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사람들 반응을 살필 줄 알고 미추를 생각할 줄 아는 걸 보니, 벌써 많이 자란 모양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과자를 샀다. 내가 들어주겠다는 데도 마다하고 가슴에 한 아름 안은 채, 또온이는 웃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잘 웃는 아기가 또 있을까. 나 역시 또온이 덕분에 하도 웃어 눈가에 주름이 늘었을 것 같다. 꽃보다 더 예쁜 게 ‘인꽃’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못난이에서 벗어났으니 나도 꽃일까, 노화(老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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