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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걷기와 불면증

by 최명숙


맨발 걷기를 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매일 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여름과 초가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다. 요즘엔 더 바빠져서 그것도 힘들지만, 마음은 내 몸을 땅에 접지하고자 기회를 엿보았다.


잠시라도 맨땅에 발을 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과감하게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이제 그건 자연스러워졌다. 전에는 솔직히 내게 쏠리는 이목이 불편했는데. 오히려 흘깃거리는 사람들에게 한번 해보라고 권한다. 산에 오르거나 냇가 바닷가 등을 걷게 될 때, 산책로가 흙으로 되어 있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그러면 눈치 안 보고 벗는다. 그리고 걷는다.


요즘엔 맨발 걷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씩 거의 권했던 것 같다. 시답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질색하는 사람도 있으며, 바로 실행하는 과단성 있는 사람도 있다. 모두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마음이 끌려야 하는 것 아닌가.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 것을.


나도 산행 길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권유받고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말하는 거다. 좋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쉽게 생각을 전환하기는 어렵다. 무엇이든 그렇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사는 사람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삶의 변화가 온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는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잠에 인색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잠을 줄여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잠을 많이 자고 일어나면 억울해서 마음이 무척 상했다. 그런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마흔 살 넘으면서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는 날이 늘어갔다. 그것처럼 괴로운 게 없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양을 세고 잠자리를 세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좋아하던 커피를 끊고 녹차와 홍차까지 끊었다. 그래도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았다.


더구나 쉰 살이 되면서 불면의 밤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젊었을 적에는 잠을 못 자도 다음날 자면 피곤이 해소되곤 했는데, 이제 하룻밤만 잠을 설쳐도 사지가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며칠씩 힘들다. 그때부터 잠과 나는 전쟁 아닌 전쟁을 해야 했다. 여행을 가거나 집을 떠나면 그 증상은 더 심해졌다. 괴롭기 그지없었다.


첫날이었다. 함께 산에 오르던 동행자는 신발을 벗지 않았다. 그러니 나보다 한참 앞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잠시 갈등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그만 신발을 신을까. 이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정 안 되면 수면제 처방을 받지, 왜 사서 고생이야. 마음속에서 동요가 일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이 좋아졌다고 말하지 않는가. 혼자 중얼중얼. 아야, 아야! 소리도 질렀다.


30분 정도 맨발 산길을 걷는데, 발바닥이 아프고 머리까지 자극이 되는 것 같았다. 작은 돌부리에 차이고, 돌 부스러기를 밟을 때, 움찔움찔 놀랐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걸었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더한 것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그 괴로운 불면증이 기가 막히게 사라졌다. 첫날이었는데. 전에는 잠이 들어도 보통 서너 시간이면 꼭 깼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힘들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6시간을 잤다. 한 번도 깨지 않고. 그리고 깼다가도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기적이었다. 자다가 깨어 잠이 든다는 게 내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신기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4시간밖에 잠이 오지 않는데, 어쩜 이런 일이 있을까.


산에 자주 동행하던 지인에게 이야기했다. 믿지 않았다. 그러려니까 그랬을 거란다. 그 지인도 불면증에 시달린 지 오래라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수면제를 처방해 먹고 있단다. 밑져야 본전이니 맨발로 걸어보자고 했다. 싫단다. 그만두었다. 여전히 나는 맨발로 지인은 등산화를 신고 걸었다.


첫날 아프던 발바닥이 하루 이틀 계속되면서 걸을 만해졌다. 돌이나 나무뿌리를 밟아 통증을 느낄 때면, 지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많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통증도 괜찮았다. 아파서 아얏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내 뇌를 깨우는 거야, 내 뇌가 건강해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거야. 최면을 걸었다.


지금은 불면증에서 벗어났다. 매일 맨발 걷기를 하지 못해도 잠이 안 오는 날은 없다. 대략 6시간 깊이 잔다. 컨디션이 좋다. 불면 걱정을 안 해서 그럴까. 며칠 전에는 커피도 마셨다. 함께 산에 가끔 가는 지인은 이제 나보다 더 맨발 걷기 마니아가 되었다. 매일 30분씩이라도 걷는단다. 그랬더니 역시 불면증이 사라졌단다. 사람에게 있는 세 가지 본능 가운데, 수면욕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오늘 오후, 가을 햇살 받으며 뒷산 오솔길을 발밤발밤 걸어야겠다. 떨어져 누운 낙엽을 보며, 삶의 여정을 생각하고, 마음에 남은 쓸데없는 허섭스레기들을 싹 버려야겠다. 기대되는 늦가을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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