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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l 12. 2024

"애인도 아니면서"

[연재] 98. 이혼 74일 차

98. 이혼 74일 차      


    

“애인도 아니면서”    

 

2014년 5월 13일 화요일 맑음      


  진토닉을 많이 마신 탓인지 새벽에 일어났다가 잠들었다. 

  어제 하루가 매우 길고 스펙터클 해 그런지도 모른다. 일기를 다 썼을 즈음엔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아침이 되어 파워 보트와 트레일러를 양도하기 위한 서류 준비를 위해 집으로 향했다.   


   

  여자가 “콩나물국 있는데 먹을랑 가?”라고 말하며 식탁을 차렸다. 엉덩이가 탐스러워 쓰윽- 만져 주었다.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얻어 마시던 그가 “왜 이러시나?”라고 앙탈하는 여자의 가슴에 손을 쑤욱- 넣으며 “한번 하자.”라고 말했다.     


  그는 뻔뻔스럽게 안방 침대로 가서 옷을 완전히 벗고 누웠다. 보드라운 실크 이불과 라텍스 매트리스가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수컷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잠시 후 여자가 샤워하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서로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서로의 성감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순간 한순간을 기억하려는 듯이 꼼꼼하게, 섬세하게 자극을 느끼며 몸을 틀기 시작했다.      


  “허-억.”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얼마 후 여자가 엉덩이를 톡톡 쳤다. 내려오라는 것이다. 현관을 나서는 그에게 여자가 말했다.     

 

  “애인도 아니면서.”

  “밤에 오면 남편이고, 낮에 오면 애인이지. 애인이 별 건가.”     


  랭글러에서 구명조끼와 자동 바 등을 벤츠 SLK 로드스터로 옮겨 실었다. 작은 트렁크가 꽉 찼다. 빌딩으로 와서 트레일러 양도용 인감증명서도 발급받았다. 매수자와는 오후 3시 30분에 반포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장님, 안양세무서 한 번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세무법인 정상의 최 실장이 전화했다. 안양 빌딩 공사비 부가세 환급금 중 주택 부분은 환급이 안 되는 것이라서 토해내는 것도 모자라 가산세까지 물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뭔 짓이래요. 내가 들어가서 가만 안 둘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세무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50만 원의 가산세인데, 정정 신고가 가능하므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해도 8억 원의 공사비중 3억 원만 지급한 상태이기에 나중에 주택 부분 공사비를 따로 지급하면 간단할 것 같았는데, 세수가 부족하다더니 세무서가 무리수를 두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일로 반포지구에서 요트 매수자에게 서류를 건네주고 안양 세무서까지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니 요트 매수자의 “시동도 걸어보고, 시 운전도 하고 싶었습니다.”라는 꿈도 깨졌다. 벤츠에서 꺼낸 자키로 트레일러 앞을 높여 보트갑판 아래 가득한 물을 빼내고 있으니 매수자가 도착했다. 이것저것 확인하고 묻더니 “돈은 국민은행에 가서 송금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겁도 많은 남자였다.    

  

  “타세요.”

  벤츠 SLK 로드스터 옆자리에 태우고 고속 터미널 방향으로 나오니 바로 국민은행이 보였다. “여기 있을 테니 혼자 들어가 입금하고 입금증 가져오세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 돌아온 남자가 “*백만 원 입금했고요, 나머지는 인터넷 뱅킹으로 해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남자는 한강으로 다시 오는 사이에 입금했다. 날씨는 29도를 넘어 여름 날씨다. 함께 온 아내와 아이들이 남자를 기다렸다.      


  “여기에 사인하세요.”     

  돈도 입금되었겠다 여분의 장비도 줬겠다, 사용법도 대충 알려줬으니 안양세무서로 달려야 할 시간이었다. 계기판에서는 연료 경고등이 들어오며 속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거칠게 가속 페달을 밟으며 남태령 입구 주유소에서 주유했다.      


  보트, 남자의 로망이다. 보트에 애인을 태우고 무인도에 가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오직 두 사람만의 휴가를 즐기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파워 보트를 구매했으나 바다는 겨우 두 번 도전했고, 무인도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또, 보트에서 섹스해 보겠다는 시도는 했으나 지붕이 없는 탓에 못 했다. 그러함에도 3년 동안 한강을 맘껏 즐겼다. 그가 아쉬운 마음에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더 이상 가슴 설레지 않기에 방출한다. 마음먹은 김에 랭글러 루비콘도 방출하기로 했다. 그에게 있는 중고품들은 모두 이런 운명이 될 것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더욱 성공적인 투자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안양세무서 부가세 과를 방문했다.      


  “카메라를 챙겨 가야지.”     


  여름 재킷에 커다란 캐논 카메라, 노란 가죽 커버의 다이어리를 든 폰세는 영락없는 기자였다. 그가 이렇게 가는 이유는 민원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

   

  “현장에 가 보셨다면 납세자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겠지요?"    

 

  당돌한 그다. 세무 공무원 앞에 두고 구라 신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골조만 올라갔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주택이 완성되려면 한 참 남았지요. 공사비 8억 중 3억 집행했습니다. 도둑으로 치면 담에 고개를 내민 정도이지요. 그런데 지금 주택 부분을 기계적으로 공사 면적으로 분할해 가산세를 물린다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납세자가 탈세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택 부분 공사를 마치면 그때 끊으려고 했던 것이지요.”     


  담당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네. 그 부분은 세무사와 이야기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그가 “그 어두컴컴한 거리에 아름다운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니 도와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고 세무서를 나와 최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될 것 같습니다. 세무사에게 전화한다고 하네요.”

  “말은 그래도 우리에게 그렇게 안 하니 문제지요. 하여간 내일쯤 연락이 오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피렌체로 핸들을 돌렸다. 새벽잠과 모닝 섹스, 요트 매매, 세무서 방문의 긴장감이 피로의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다.      


  “쏴-아--”

  그가 샤워하고 옷을 입었다. 피곤하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 없는 이유는, 내일 스터디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대 학습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런 후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메뉴는 김치볶음밥이었다. 공동주방에서 밥을 한 공기 퍼 오더니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김치를 투척했다. 또 달걀도 넣었다. 야채는 두릅 남은 것을 데쳐서 내놓았다. 근사한 저녁상이 되었다.    


  

  신 부장은 게스트하우스 포맷을 A4 한 장짜리로 만들어왔다. 여행객 공유 사이트와 여러 가지 아이템이었다. 그가 “먼저 뭐 문화 관광부? 아무튼 거기에 게스트하우스 신청 조건 확인해 보고 다음으로 홍보 부분 생각해 보자고.”라며 지하 홀 입구 열쇠 하나를 건넸다.      


  “사장님, 내일부터 여기서 사람들을 좀 만나겠습니다. 지하는 그냥 두기 너무 아까워서 바 정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하는 내가 뜻하는 바가 있으니 다른 생각 안 해도 돼. 어차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려면 아침 식사 정도는 제공해야 하니 이 공간이 필요해.”     


  그러고 보니 지하공간을 만든 이유가 불분명해졌다. 그는 이곳을 방송대 영화관계자들의 아지트로, 대부업 사무실로 이용하고자 만든 곳인데 신 부장의 현란한 애드리브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탓이었다. 게다가 내일 스터디 발표 자료도 만들지 않았다. 보조 교재인 워크북으로 공부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카페에 그렇게 공지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처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방출하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새 출발 해 보자’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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