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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y 14. 2024

상량식[上樑式]

[연재] 73. 이혼 49일 차

73. 이혼 49일 차         


 

 상량식[上樑式]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맑음      


  막차로 돌아와 [효탄참치]에서 술을 더 마셨으니 아침은 엉망이다. 

  거의 정신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인천 채무자 염 사장의 방문까지 있었다.      

  채무자는 중년 남자를 대동하고 왔는데, 빌라를 건축할 ‘시공사 대표’라고 소개했다. 그보다 몇 살 아래로 보였다. 채무자는 장황하게 자기 회사를 이야기하며 경매 진행 중인 토지에 대해 협상안을 제시했다. 한참을 듣던 그가 두 줄로 정리했다.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은 회사를 담보로 보증하고, 분양권도 다 맡길 테니 준공 때 7억 3천만 원을 가져가란 말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읍소를 합니다.”

  “저도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놈 아닙니까? 그러니 준공 때까지 경매를 진행하지 않고 기다린다면 나에게도 뭔가 플러스알파가 있어야지 않겠어요? 그러니 이삼일 내로 빠른 결정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들을 돌려보내고 외출준비를 서두르다 한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방송대) 출석 수업 때 앞에 앉은 이ㅇㅇ입니다.”     


  그가 여인의 향기에 목마를 때 앞에 앉은 그녀의 블라우스와 브래지어의 끈이 매우 섹시했다. 그때, 그녀가 “블로그를 하세요?”라고 묻기에 작업 겸해서 명함을 건넸더니 연락이 온 것이다. 내용은 ‘시험내용 요약본을 메일로 주실 수 없습니까?’였다. 그에겐 완성되지 않은 초안이 있었기에 메일로 보내고 안양으로 출발했다.          



  안양에 건축 중인 빌딩 상량식에 가는 길에 여자에게도 보여주려고 외출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 서울고 지났어. 안양에 가려면 준비해. 봉투 두 개 잊지 말고.”     


  이는 여자에 대한 배려였다. 건물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기에 혹여 생길 상실감을 막아주려는 베려!     



  상량식[上樑式]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으로 안전을 기원하며 제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제상이나 절 따위는 하지 않으므로 일꾼들을 위해 봉투나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다 막판에 마음을 바꾸었는데 그것은 ‘상량문’을 쓰는 것이었다. 옛 조상들이 썼던 의식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리고 자신의 스타일로 이렇게 썼다.     


 “땅을 주관하시는 지신에게! 이 건축물의 이름을 ‘ㅇㅇ하우스’로 명명하며 ㅇㅇ호텔 소유주가 되는 교두보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형제의 약속을 들어 먼저 세상 여행을 끝낸 아우의 소유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하오니, 본좌보다 더 오래 남아 있을 건축물의 안녕과 복을 빌어 주시길 바랍니다. 2014. 4. 18. 부활절 하루 전에 건축주 김경만 고함.”     


  여자가 ‘상량문을 보자’라고 했으나 “이것은 후일 누군가에 의해 건물이 헐리거나 리모델링될 때 발견될 것”이라며 보여주지 않았고 5만 원 지폐 열 장이 든 봉투와 함께 현장 소장에게 건네졌다. 현장엔 [야촌주택] 추 대표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함께 계단을 올랐다.      


  “5층 주택도 들어가 보시죠?”     


  전 소장의 안내로 주택으로 건축되는 5층으로 들어갔다. 거실의 크기가 대단했고,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나쁘지 않았으며, 벽의 두께에 대해서도 전 소장이 “감리의 요구로 더 두껍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4개의 방도 모두 큼직큼직했다.    

 

  옥상에 오르자 안양역사와 롯데백화점이 옆집처럼 가까웠다. 그가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고정하며 일행에게 “상량식 기념사진을 찍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추 대표가 “그렇지 않아도 김 사장님 덕분에 큰 건도 하나 계약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듣기 좋은 말을 했다.     

 

  이들은 다시 일층으로 내려왔다. 그가 계단 아래 공간을 보고 전 소장에게 “여기에 세탁기 3대를 놓읍시다.”라고 말할 때도 이때였다.      


  “그러면 칸을 여기까지 막아야 하는데요?”

  “거기까지 하면 입구가 답답하니 여기에 세우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고시텔 전용 세탁실을 주차장 쪽에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쓸모 있는 공간을 발견했기에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차장 한쪽엔 고정식 빨랫줄을 설치할 기둥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는 “횟집으로 가시죠?”라고 말하며 밥을 사려고 앞장섰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주꾸미 샤부샤부를 광고하기에 주문했다. 알이 탱글탱글한 주꾸미 다섯 마리가 나왔다. 밥값은 추 대표가 냈다.    


  그가 여자를 아파트까지 바래다주고 빌딩 아지트로 돌아왔다. 바람난 남녀들처럼 질펀한 대낮의 정사를 치른 직후였다. 베드로에게 인천 채무자와의 미팅 상황을 알려주었고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피곤이 몰려오지만 미룰 수 없었기에 프린트한 예상 답안지를 한 번 더 필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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