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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May 17. 2024

가슴에 청진기 대고 말 것도 없었다!

[연재] 74. 이혼 50일 차

74. 이혼 50일 차         


 

가슴에 청진기 대고 말 것도 없었다!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맑음     


  “형님 매우 늦은 시간에 실례를 무릅쓰고 문자 드려요. 지ㅇ이랑 낼 시험 얘기하는데 한국사 문제가 2번이 있고 발해에 대해 쓰는 게 문제라고 했다는 거예요. 지ㅇ이 반에서는. 그날 저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지만 다른 반에선 그렇게 이야기했다니까 혹시 모르니 아침이라도 문자 보내시면 발해 부분 읽어보시면서 오세요 ㅠㅠ 한국사가 1교시 시험이라. 다시 한번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ㅠㅠ 내일 봬요!”   

  

  그가 잠을 청하려고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릴 때 문자가 계속 왔다. 일어나 휴대폰을 열었다. 새벽 2시 10분이었다. 아이들끼리 공부하며 카톡 하다 시험 범위를 알려주기 위해 문자를 한 것이었다. 그가 “발해는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알았다. 잘 자라.”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당 [전주집]으로 가서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뛰 따라 들어오던 사내들이 “검은 머리 짐승은 구해주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네.”라고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식당은 이른 아침인데도 제법 손님이 있었다.     



  학교에는 30분 일찍 도착했고 [한국사] 시험 범위로 옥신각신하다, ‘가야국에 대해서 나온다’라는 확실한 제보를 듣게 되었다. 그러니 부랴부랴 교과서를 펼쳤다. 다행히도 가야에 대한 언급은 3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주한 시험문제는 “가야의 성립과 멸망에 대해 쓰시오”라는, 10점짜리가 문제였다. 그가 푸른색 잉크가 든 만년필로 ‘가야 6국이 어쩌고, 가락국 김수로왕이 어쩌고, 당나라가 내려와 어쩌고’ 하며 서술했다.     


  두 번째 과목은 [대중영화와 문화비평]이었다. 시원스러운 성격의 장 ㅇ 교수답게 예상 문제에서 출제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사이버커뮤니케이션] 과목은 좀 까다롭게 답안이 작성되었다.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학교 정문에서 5학년 학우를 기다렸다. 이 학우는 “시험출제 답안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커피 살게요.라고 약속한 학우로, 마흔 중반쯤 나이로 추정되는 여성으로, 메일로 자료를 보내줬었다. 시험을 늦게 마치고 전화를 걸어와 “어디 계세요.”라고 물었다.     


 

  “보신탕 좋아하십니까?”     


  그가 난데없이 보신탕 타령을 했다. 물론,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어떻게든 시험을 마쳤고, 게다가 자신의 부활 3주년(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날을 부활절로 여기고 기념한다) 기념일이기에 보신탕에 소주 한 잔 찌크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 학우가 ‘못 먹는다’라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돈가스 드실래요?”라며 앞장섰다. 50이 다 되어가는 남녀가 돈가스와 비빔밥을 앞에 놓고 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이미 구글링을 통해 여학우가 사는 집까지 확인한 상태였다. 그래도 모르는 척 질문에 응했다.      


  “제가 여러 가지 일해요. 주부에 엄마에, 보험에...”     


  청진기 댈 것도 말 것도 없었다. 그래도 낯선 여자와 살짝 떨리는 인터뷰를 하는 기분을 느껴 보기로 했다. 밥값은 여학우가 냈기에 커피를 사기로 했다. 커피는 피겨가 가득 진열된, 아우들과 일전에 들렸던 그곳이었다.      


  시금한 커피를 마시며 이혼, 외도, 철학에 대해 말했는데 그리 생산적이진 못했다. 다만, 여학우가 상당 기간 ‘가족들과 독일에 거주하다 왔다’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구글에서는 [문화교양학과]로 나오던데 [미디어영상학과]라고 하는 것을 보니 중간에 과를 바꾼 것으로 보였다.      


  “살아있으면 기말고사 때 봅시다.”     



  그렇게 여학우와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잠실 빌딩으로 돌아오던 중에 졸업생 정ㅇㅇ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 코엑스에서 영상 기자제 전시회를 합니다. 저에게 표가 있으니 코엑스로 오세요.” 

    

  그가 아지트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삼성동 무역센터로 향했다. 초청장을 받고 접수를 한 후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엔 사진, 동영상, 액자, 프린트 등 영상에 관한 것들과 캐논, 니콘, 삼성, 펜탁스 등 카메라 관련 부스로 가득했다.      


  그는 이런 복잡한 곳은 딱 질색이지만 ‘새로운 영상 장비 기술을 확인해 보겠다’라는 생각에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 제품을 구매했는데 하나는 카메라에 장착하는 작은 LED 조명, 하나는 삼양광학의 반사식 500mm 망원렌즈였다. LED 조명은 드럼 칠 때 악보용 조명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구매했고, 삼양광학의 500mm 렌즈는 25만 원에 불과했기에 ‘500mm 망원 단렌즈라면 영화도 만들고 재미있게 놀 만한 가치가 있다’라며 지갑을 열었다. 또, 캐논 부스에서는 ‘캐논은 부자이니 쇼핑백 하나만 주세요’라며 빨간 종이 백을 얻어 구매한 렌즈와 조명을 넣었고, ‘블로그 흥하겠네’라며 도우미 처녀들의 모습을 메모리에 담기도 했다.  

   

  그런 후 만난 정ㅇㅇ군에게는 동행자가 있었다. 서른 살 청년으로 “피디 모집에 응모하려고 준비 중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사진은 정말 못 찍었다.   

   

  “하긴, 피디는 사진을 못 찍어도 돼.”    

 

  청년에게 카메라를 주고 사진을 부탁한 그가 한 말이었다. 그런 후, 함께 택시를 타고 잠실 빌딩 1층 삼겹살 식당 앞에서 내렸다. 부활절 기념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어디야? 나 잠실을 지나가는 중이라서.”  

  

  여자가 전화를 걸어올 때도 이때였다. 그래서 “그러면 이리 와!”라고 수작을 부렸다. 그렇게 만난 여자는 노란 윈드 재킷을 걸치고 들어왔는데 ‘골프 연습을 하고 오는 길이라 저녁도 먹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배가 부르면 가야지. 알았어. 밤에 갈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여자가 “내일 삼향동 ㅇㅇ이 결혼식이야.”라고 처가 행사를 고지하며 식당을 나섰다. 

    

  ‘어쩐지 뭔가 있을 듯했는데 허전하더라~’ 

    

  그가 혼잣말하다시피 하며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들이켰다. 그러나 앞에 앉은 두 사내는 젬병이라 일찍 자리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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