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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n 17. 2024

너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연재] 85. 이혼 61일 차

85. 이혼 61일 차  


        

너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2014년 4월 30일 수요일 맑음     

 

  “우리 존재에 확고한 뿌리가 없다고 해서 결코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괴로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지금과는 또 다른 사람, 혹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축복 말이다...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한때 기쁨을 주었던 그 사람에게 결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굿바이!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날 거야! 너도 좋은 사람과 만났으면 좋겠어.’”

                                              [강신주 - 철학이 필요한 시간]     



  그는 며칠째 가지고 다녔던 책을 오늘에야 다 읽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랑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강신주는 공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탓에, 전통적 철학자는 아니지만 행동주의적 철학을 말한다. 그는 어설픈 힐링은 ‘사기’라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그가 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다고 그가 종일 편안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새벽에 잠들었다가 모닝콜 음악 소리에 일어났다. 샤워하고 아침은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것이 없었다. 경매 입찰 사건을 프린트하고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납부하다 보니 9시가 넘었다.      



  지하철을 지루하게 타고 목동역에 내렸다. 몇 년 만에 오는 남부지방법원이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했다.      


  “아, 미안합니다. 잊었습니다.”     


  오늘 입찰할 물건은 32억짜리 빌딩이다. 처가 먼 친척뻘인 남자가 “회사 사옥으로 쓰겠다”라며 ‘경매 물건을 입찰하겠다’라고 권리분석을 요구하더니 정작 입찰일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거 뭔 시추에이션인가. 그가 분노를 누르고 말했다.      


  “밥이나 사세요.”     


  다시 지하철에 올랐고 책을 펼쳐 들었다. 전동열차가 잠실철교를 지날 때였다. 파란 하늘을 보았다. 청명한 하늘이 펼쳐있었다.      



  빌딩으로 돌아가는 길에 [77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렀다.    

  

  “사장님, 건물을 보여줄 사람이 있어요.”     


  스스로 “얼굴이 타면 감자가 된다”라며 농담하는 실장의 말에 앞장섰다. 빌딩 옥상부터 지하실까지 꼼꼼히 보여주고 “명함을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니, 그건 안돼”라고 막았다.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빌딩 등기부등본을 출력해 신협으로 향했다.      



  대출은 2층에서 이뤄지고 있었는데, 블로그를 방문하는 김 과장은 여신부에 있었다.     

 

  “선생님, 어쩐 일이십니까?”  

  

  김 과장이 그를 보자마자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그가 서류를 내밀며 “후순위 대출도 하나요? 한 5억이 필요해서요.”라고 말했다. 김 과장이 “네. 오후에 감정하고 늦어도 내일까지 답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그러세요. 그런데 신협 돈이 얼마나 있어요?”라고 물었다. 김 과장이 “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며 농담을 알아듣고 “경락잔금도 대출합니다”라며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얼마 후, “20억이 넘어가 탁상 감정은 힘들어 감정업체에 감정을 하라고 했습니다.”라고 알려왔다.    


  

  아침을 건너뛴 그는 1층 식당으로 가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밥을 먹는 도중에 밖에서 서성이는 베드로를 발견하고 전화로 불러 밥을 한 공기를 추가했다.   


  

  건물 청소도 했다. 계단을 시작으로 고시텔 복도 또한, 걸레로 닦고 청소기로 밀었다. 그러자 기분이 한껏 좋아졌기에 지하 홀로 내려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도 한 곡 뽑았다. 금영 유선 마이크는 무선마이크의 증폭을 따라올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기 힘들 정도였다. 이래서 또 품질의 차이를 실감했다.    


  

  아버지의 전화도 있었다. 어른들의 말씀이야 늘 그런 것이지만,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네가 그렇다면 나는 말리지 않으련다”라고 말했다. 자신 또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번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대화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방송대 스터디에는 6명의 학우가 참여했다. 공부하는 동안 졸음과 싸우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스터디를 마치고 뒤풀이도 마다한 채 빌딩으로 돌아와 베드로와 지하 홀에서 맥주를 마시며 인천 채권 문제를 논의했다. 베드로가 “인천 채무자들이 부동산중개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보아, 조만간 채권을 변제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월이 갔다.

  한강 반포지구에 묶어 놓은 파워 보트를 한 번도 띄워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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