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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Jul 08. 2024

불알만 두 쪽인 남자의 이혼

[연재] 95. 이혼 71일 차

95. 이혼 71일 차       


   

불알만 두 쪽인 남자의 이혼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맑음     


  한강 잠실 수중보를 걷던 중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휠체어 옆 의자에는 소니 DSLR 카메라와 간식이 놓여있고 맞은편에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중년의 얼굴이었다. 그가 그제야 알아보았다. 유명한 댄스가수였던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강남대로를 질주하던 중에, 불법 유턴한 차량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얻게 되었다. 보험사는 법정에서 ‘댄스가수의 정년이 몇 살인가’라는 문제로 싸웠다.    

  

  남자 곁을 지나 계속 걸었다. 파란 한강과 파란 하늘, 하늘거리는 하얀 바지가 풍경이 되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배도 고파왔다. 편의점에 들어가 우유와 김밥을 샀다. 한강은 빌딩과 아주 지척이므로, 운동하기로 마음먹고 답사 차 걷는 중이다. 잔디밭에는 끝없이 그늘막과 돗자리가 펴져 있고 외국인들은 아예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한 시간을 넘게 걷기를 했다. 어제 메일을 보낸 사촌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협의이혼에 내가 나가지 않았어. 종교적인 문제야. 우리 교회는 강제 이혼은 되지만 협의이혼은 안된다는 그런 교리가 있어.”

  “그러면 니, 목사에게 상담해라. 나 피곤하게 하지 말고.”     


  그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사촌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수신 거부’로 대응했더니 문자를 보냈기에 측은지심이 들어 풀어줬더니 이따위 소리나 지껄인다. 그러함에도 관대한 그가 “알았다. 일단 이혼을 원하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고 재산분할 등은 따로 적으마. 너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으면 적어서 메일로 보내라.”라고 말했다.      


  원고인 부인은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소송은 제기했지만 부랄 두 쪽인 남자가 줄 것은 없는지라 ‘이혼 합의’만 하면 조정은 성립될 것 같아서 그리 말했다. 한강 공원엔 더운 날씨에도 땀띠가 나라고 부둥켜안은 연인들이 이리 많건만 어떤 이들은 ‘이혼’을 하고 있다. 그도.      


    

  잠자리가 사나웠는지 새벽에 일어났다가 늦잠을 잤다. 건물이 상당히 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 날씨는 그냥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오월이다. 휴대폰을 들어 고 사장이 소개한 거문고 연주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침 먹을 건데, 일정 없으면 한 시간 후 반포 어떠실지요. 옷은 편하게.”     


  그는 파워 보트를 한강에 띄울 생각에 마린 패션인 하얀 바지와 파란 스트라이프 셔츠 차림이었다. 


  “짐..수업중이고여...전 집이 동탄이라.. 시간 약속이.. 오빠처럼 편하고..즉흥적일 없어여..”

  “악, 미안함 몰랐어요. 이젠 미리 할게여. 내일 일정 없으면 난 시간 된다능.”

  “몰랐으니 괜찬궁..낼은 오후에만 시간이 되는 데...”

  “내일 콜, 반포 낙찰! 도착시간 연락 주세요. 잠수대교 참고여.”     


  그렇게 되어 그들은 첫 만남을 하게 되겠다. 문자를 마친 그가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도 “라면을 먹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그가 할 일은 강변을 걷는 일이 고작이었다.     


  ‘두릅을 먹을까?’     


  걷기를 마치고 빌딩 지하 홀에서 드럼 연습을 한 후 맥주를 홀짝이던 그의 머리에 든 생각이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보트 매물 보고 싶은데요. 내일 시 운전, 가능할까요?”  

   

  어차피 거문고 연주자와 보팅을 해야 하기에 안될 일은 없다. 그래서 “4시경 잠수교 근처에서 띄웁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때, 버스 기사이며 자동차, 오토바이를 사고파는 준프로 업자도 “사장님 한 장에 줘요.”라고 앙망하는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내일 온다는 사람도 있고, 안 팔리면 영화 소품으로 쓸랍니다. 보트를 가진 남자의 이미지는 천만 원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답니다.”     


  낭만을 모르는 자다. 그저 좋은 물건 싸게 사서 실컷 사용하다 조금 남기고 팔려는 그런 족속이다. 자동차, 요트에 가슴 떨리는 것이 아니라, 이문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그도 그런 방식으로 남이 사용하다 싫증 나서 내다 버린 중고를 주워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이 파워 보트를 팔면 새 보트를 살 것이다. 씨레이 24피트로 가격은 1억 8천만 원이다. 그때는 빌딩이 매각된 후가 될 것이지만. 그러므로 지금 가지고 있는 파워 보트를 말도 안 되는 헐값에 처분할 생각은 없었다. 천만 원은 고무보트 가격도 안 되기 때문이다.      



  참, 처가 조카가 방문했다. 경매로 낙찰받은 수원의 토지 지분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 있어서였다. 그가 만년필로 쓱 몇 자 적더니 내밀었다. 조카가 “이모부, 판결문 재발급 및 송달, 확정 증명원 발급이요?”라고 물었다.      


  “응, 또, 한번 충격을 줘야 (공유 지분권자) 돈이 나오지 않겠니?”     


  이어, 조카는 이번에 만든 지하 홀을 꼼꼼히 구경했고 앰프 소리에 아주 감동하며 “저도 빨리 이렇게 살고 싶어요. 아니, 독립해 내 방에서 작은 프로젝터라도 켜 영화를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땅두릅은 [새마을 시장] 야채 가게에서, 브로콜리는 [할인마트]에서 샀다. 그런 후 고시텔 공동주방으로 가서 밥을 몇 수저 퍼 오려는데 처녀가 파전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씩씩하게 살자. 이거 두릅인데 먹어봐. 버리면 혼난다.”     


  그도 저녁을 두릅과 브로콜리를 먹고 잠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에 퇴근했다. 아마도 여자의 살결이 그리워서였을 것이다.      


  “뭐 해? 나 퇴근하려고.”

  “회나 사 와!!”     


  여자의 전화기 너머에서 딸이 “우럭!”하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횟집에 전화를 걸어 “우럭회 하나, 광어회 하나 포장해 주세요. 곧 갑니다.”라고 주문하고 마트에도 들려 소주와 맥주를 샀다. 그렇게 마주한 여자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공사비가 없으면 일단 나에게 준 1억 원을 사용해. 당신이 잘돼야 우리 가족이 잘 되지.” 

    

  득달같이 뜯은 돈을 빌려준다니! 그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사랑하는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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