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악이 아닌 새로운 최악일 뿐, 이 시국 환경 이야기
“코로나19 문제가 워낙 심각하니까요, 아무래도 천 마스크 대신 이걸 좀 써 주세요.” 그는 일회용 비닐을 미끈하게 찢어내어 빳빳한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들며 내게 말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한 행사장에서 들은 안내였다.
“아, 네. 그럴게요.” 그가 건넨 마스크에선 강한 석유냄새가 났다. 깜짝 놀라 허공에 마스크를 휘이, 휘이 서너 번 휘젓고는 다시 마스크를 썼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석유냄새는 조금씩 옅어졌다. 몇몇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또 몇몇은 코와 입을 타고 내 몸 안으로 퍼졌을 테다. 필터를 덧댄 다회용 천 마스크는 곱게 접어 가방 한 곳에 넣어뒀다.
우리는 살기 위해, 또 서로를 살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 그런데 살기 위해 쓴 마스크가, 또 다른 이름의 팬데믹이 되어 내 삶을 망쳐 놓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엔 자꾸만 확신이 든다.
정부는 최악(감염병)을 막기 위한 차악(쓰레기 대란)을 택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었다. 침체된 경기 부양을 위한다는 이유로 2만 원 이상의 음식을 4번 이상 배달시켜 먹으면 1만 원을 환급해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카페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완화했다. 작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투표하는 모든 사람에게 비닐장갑을 끼게 했다. 이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전시했다. 그러는 사이, 하루 평균 플라스틱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2019년 776t에서 지난해 923t으로 약 20% 증가했다.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그 무게는 800만~1200만 t에 달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풍은 사실 차악이 아니라, 새로운 최악이다. 결과는 이미 불 보듯 뻔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올여름에만 전 세계 미국, 유럽, 아시아 대륙 할 것 없이 걷잡을 수 없는 규모의 산불이 났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는 단어는 매번 새로운 지역 이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세 등등하게 언론사의 단골손님이 됐다.
마스크 끈에 발이 걸린 바다 갈매기 사진 덕분에 마스크 끈을 잘라 버리자는 소소한 움직임이 일었지만, 어쩌면 가위를 꺼내 든 사람들은 가장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석유화학물질을 이용해 만드는 일회용품, 제작과 사용 그리고 폐기라는 악의 굴레 속에서 온실가스와 폐기물은 천천히, 그리고 자명하게 우리 모두의 삶을 조금씩 파괴하고 있다는 걸. 마스크 끈 잘라 버리기로는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걸.
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전 세계적으로는 버려지는 마스크를 추산해보니, 매달 약 1290억 개다. 우리는 순진하게도, 약 1290억 개 마스크가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 매립해도 땅 어딘가에는 반드시 남고, 소각해도 남은 재와 대기 중 오염물질로 남는다. 그나마 제대로 매립 혹은 소각되면 다행이다. 문제는, 매립지와 소각지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줄을 선 것들은 비단 마스크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염병을 막아 보겠다는 인간의 발버둥은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텀블러를 들고 카페를 찾은 시민, 비닐장갑 사용을 하나라도 줄여보겠다고 겨울에 쓰는 털장갑을 가져간 시민들은 정확한 이유도 안내받지 못하고 “방역 원칙상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일회용 컵이나 비닐장갑 사용은 모두 물건의 표면에 붙어 있는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까운 것은, 미국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표면 접촉을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은 1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작은 위험 또한 규칙적인 손 씻기로 예방할 수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과 방역수칙을 잘 지킨 채 진행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아니다. 필요한 건 '방역'이다. 전염병과 같은 재앙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제발 좀 미리 막자는 거다.
생태계와 우리 삶을 망칠 더 큰 재앙은 이미 오고 있다. 코로나19는 재앙에게 어서 오라며 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우리는 '정부 지침'이라는 안일한 말 위에 올라타 재앙을 향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마중을 나가고 있다.
약자와 자연에게 더 가혹한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상황이 당장 끝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지만, 언젠가 대혼란처럼 여겨졌던 코로나19 시국을 그리워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고작 일회용 마스크로 죽음을 막을 수 있던 이 시기를, 인류 전체가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마스크'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